[유주열의 동북아談說-72] 람스테트 대사와 우랄 알타이어 문화공동체
[유주열의 동북아談說-72] 람스테트 대사와 우랄 알타이어 문화공동체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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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로 북유럽의 핀란드가 손꼽힌다고 한다. 혁신의 아이콘 30대의 산나 마린 여성 총리의 핀란드는 60대 중반의 남성 총리를 둔 일본과 비교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핀란드 하면 글로벌 통신회사 노키아가 생각난다. 제지공장에서 출발한 노키아는 2011년까지 휴대전화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였지만 그 후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이 중심이 된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후발주자 삼성전자 및 애플 등에 시장점유를 내주고 휴대전화사업부를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에 매각하면서 점차 이름도 사라지게 되었다. 핀란드의 대표 기업 노키아의 몰락으로 경기침체와 함께 대량 실업이 늘어나자 산나 마린 총리가 30대 각료를 중심으로 혁신을 통해 핀란드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일본 도쿄대사관 근무 시 알고 지내던 핀란드 외교관이 있었다. 그는 지정학이며 언어학적으로 한국과 핀란드는 유사한 점이 많고 두 나라 국민의 정서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20년대 10년간 일본에서 초대 대사로 근무한 헬싱키대학의 람스테트 교수를 한국어 전문가로 소개했으나 당시에는 큰 관심이 없이 잊고 지냈다.

최근 어느 대화방에서 람스테트 대사가 소환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 내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미 국방부는 미군 파병과 함께 한국어 전문가 양성을 서둘렀는데 마땅한 교재가 없어 겨우 찾아낸 것이 핀란드 출신의 언어학자이며 외교관이었던 람스테트 교수가 쓴 ‘한국어 문법’이란 책이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초기 미군들의 한국어 기초교본으로 긴요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구스타프 폰 람스테트(1873-1950) 대사는 어릴 때부터 각종 언어에 관심을 가졌는데 헬싱키대학의 핀란드어 학과를 졸업하면서 은사 오토 도너의 권유로 핀란드어 기원을 찾고 우랄 알타이어 연구를 위해 중앙아시아 및 몽골 지역으로 답사 여행을 했다. 당시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핀란드에서는 핀란드의 언어가 스웨덴어나 러시아어와 다른 우랄 알타이어 언어계통임을 입증해 언어를 통한 독자성과 정체성으로 독립의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1850년대 크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핀란드어의 지위가 향상됐다.

“아, 핀란드여, 일어나라/ 노예의 흔적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라”

요한 시벨리우스(1865-1957)의 핀란디아(Finlandia)가 작곡되고 뜻 있는 젊은이는 핀란드어와 고고학을 연구 뿌리 찾기에 열중했다.

핀란드 민족은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진출, 우랄산맥을 넘어 에스토니아를 거쳐 바다 건너 빙하호가 많은 지금의 핀란드에서 농업과 수렵 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스웨덴에서 볼 때는 이교도(pagan)에 불과해 13세기 스웨덴은 이교도에 대해 그리스도교로 개종코자 북방십자군을 조직 핀란드를 침공 식민지로 만들었다. 핀란드는 600년 이상 스웨덴에 동화된 소수민족으로 살아왔다.

18세기 후반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는 친위쿠데타를 통해 귀족세력을 몰아내고 계몽전제군주로 국력을 모아 인근의 러시아와 전쟁(1788-1790)을 일으켜 영토를 확장 스웨덴의 중흥 군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혁명 전 프랑스의 브루봉왕조와 교류하고 계몽사상을 좋아해 루소 및 볼테르의 사상에도 심취했다. 그의 아들 구스타프 4세 때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 1세가 집권하는 등 유럽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었다. 영국이 주도하여 프랑스 타도 목적으로 결성된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한 유럽제국이 아우스터리츠전투 등에서 연이어 패배하자 동맹에서 이탈하고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국가가 늘어났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도 전세가 불리해지자 동맹에서 이탈하여 나폴레옹을 지지했으나 스웨덴의 구스타프 4세는 부왕의 영향으로 나폴레옹을 반대하는 유럽국가로 남았다. 나폴레옹은 이에 대한 응징으로 베르나도테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북벌군을 출정시키는 한편 알렉산드르 1세에게 스웨덴과 개전할 경우 전리품으로 핀란드의 자유처분권을 주겠다고 밀약을 했다. 베르나도테 사령관은 나폴레옹의 마르세유 시절 첫사랑 데지레 클라리의 남편이다.

1808년 알렉산드르 1세는 조모인 예카테리나 2세가 구스타프 3세에 의한 전쟁 패배의 설욕을 위해 대군을 핀란드 남부에 상륙시켰다. 프랑스와 러시아 연합군의 협공에 처해진 구스타프 4세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핀란드로 건너가 싸웠다.

그 무렵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왕의 부재를 틈타 귀족들이 정변을 일으켰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구스타프 4세의 폐위와 함께 그의 숙부 칼 13세를 즉위시키고 프랑스의 점령군 베르나도테 사령관을 왕세자로 영입했다. 베르나도테는 자녀가 없는 칼 13세가 죽자 1818년 칼 14세로 왕위를 계승, 현 스웨덴 왕실의 베르나도테 왕조의 시조가 된다.

전쟁에 승리한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과의 밀약대로 1809년 핀란드 대공국을 세우고 자신이 대공을 겸임하여 핀란드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핀란드는 100여년간 제정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독립의 근거를 우랄 알타이어인 핀란드어에서 찾았다. 당시 핀란드 지식인은 “우리는 더 이상 스웨덴인도 러시아인도 아니다. 우리는 핀란드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페노마니아(Fennomania) 운동으로 핀란드어를 보급 사용하고 언어투쟁(language strife)을 통해 독립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17년 제정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으로 핀란드 대공이기도 한 니콜라이 2세가 퇴위되는 등 어수선한 정세를 이용 핀란드는 재빨리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도 가만있지 않았다. 핀란드 내의 사회민주당을 선동해 적백(赤白) 내전으로 발전시켰다. 신생 핀란드 정부는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아 내란을 진압하자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자신의 매제 프리드리히를 핀란드 왕으로 즉위시켜 핀란드인을 배신했다. 다행히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이 패배, 빌헬름 2세가 강제퇴위 됨으로써 왕정은 두 달 만에 무너지고 1919년 공화정부가 다시 태어났다.

핀란드는 소비에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러일전쟁에서 승리 열강의 반열에 오른 일본과 수교하고 우랄 알타이어 언어권의 일본에 주재할 초대 대사로 헬싱키대학의 람스테트 교수를 임명 장기 근무시켰다.

람스테트 대사는 1920년 2월 도쿄에 부임 10년간(1920-1929) 외교관으로서 활동과 함께 언어학자로서 일본어 연구와 동시에 저명한 동양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교수의 소개로 도쿄제국대학의 초빙교수가 됐다. 람스테트 대사는 학생들에게 일본어와 한국어(조선어)가 우랄 알타이어(Ural-Altaic language)임을 강조하면서 두 언어의 깊은 관계를 일깨워주었다. 그의 강의를 들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는 한국어연구를 계속해 후에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서 신라 향가를 연구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람스테트 대사는 한국어도 배우고자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는 재임 중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방문해 한국어를 접하고 싶었지만 일본 외무성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조선의 독립 분위기와 함께 람스테트 대사가 젊은 시절 몽골 답사를 갔을 때 알게 된 몽골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중국(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제정러시아의 지원을 얻는 데 관여한 사실이 일본 정부에 포착됐는지 모른다.

람스테트 대사는 다행히 도쿄에 유학 중인 경북 안동 출신의 류진걸(柳震杰)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2년에 걸쳐 한국어를 연구했다. 그 결과 도쿄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헬싱키대학 교수로 복귀한 후 1939년 ‘한국어 문법’이란 영문 저서를 발간할 수 있었다. 람스테트 대사는 한반도 땅을 결국 밟지 못했다. 다만 일시 귀국 시 시베리아 열차를 타기 위해 승차한 한반도 종단열차의 차창을 통해 당시 조선을 본 것이 유일하다고 알려졌다.

수년 전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멀지 않은 람스테트 교수의 고향 라세보리(Raseborg)에 그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사각기둥에 그의 생전업적이 핀란드어 스웨덴어 한국어 및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람스테트 교수는 몽골과 터키계 중앙아시아를 수차례 답사하고 일본 대사로 근무하면서 일본어와 한국어를 연구해 헝가리 에스토니아 핀란드어와 몽골 한국 일본 터키어가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의 특징을 지닌 우랄 알타이어족임을 밝혀냈다. 교착어는 인도 유럽어족인 굴절어와 고립어인 중국어와 달리 조사를 사용하고 어근에 접사(affix)가 결합해 의미가 변하는 언어이다.

외교 전문가 사이에서는 람스테트 대사의 연구를 원용, 향후 ‘우랄 알타이어 문화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동언어권 국가들간의 유대를 강조해 왔다고 한다.

우랄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옛날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이웃으로 사이좋게 살았을 것이다. 그 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곳을 찾아 무리와 함께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오랜 역사를 통해 과거 이웃이었는지를 잊은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100여년 전 핀란드 독립을 견인한 우랄 알타이어가 오늘날에 와서는 동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된다면 역내 국가 간 문화적 유대강화는 물론 국제무대에서 외교역량과 입지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된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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