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독선적 문화방위론에서 공생적 문화외교론으로
[정대성칼럼] 독선적 문화방위론에서 공생적 문화외교론으로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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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딸이 이화여대를 졸업해 졸업식(비대면)에 갔다. 사진 기사를 사서 딸에게 가운을 입혀 이래저래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가운이 미국식이지만 좋아 보이긴 하다. 근데, 문득 일본의 대학들의 졸업식 때 풍경이 생각났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래 시작된 졸업식 용 키모노를 여자졸업생들에게 입히는 풍습이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참고로, 시업식 때는 신입생 여학생들은 일반 키모노를 입기도 한다. 우리나라 한복이 개량한복 등으로 발전하고 있어, 쇠퇴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일상에 생활화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하겠다.

딸과 별거하고 있는 관계로, 오랜만에 식사를 같이하기로 해서 사시미 집을 찾았는데, 어쩌다가 해산물 포차 같은 집에 들어가게 돼, 술을 함께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너무 많이 나눴다. 이대 과목 중에 철학이나 한국사에서 리포트 숙제가 나오면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힌트를 써서 달랬고, 힌트를 써줬는데, 다 A+를 받았다고 한다. 근데, 대선 얘기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 중에 고민하고 있는데, 세 번째를 찍는다고 했다. 이유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신뢰와 여성정책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를 찍어야 한다고 길게 설명을 해줬는데, 납득이 안 가는 게 결국은 여성정책 때문에 그런 것이랬다. 즉, 이제 여성차별이 거의 없어졌다고 선언하고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여성에게 주어진 특권을 축소해나간다고 발언한 것이나 그런 정책들이 마음에 안 든단다. 딸이 속한 이화여대 동창회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의견이라고 한다.

그런 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단일화돼서, 잘 됐다고 했는데, 딸에게서 카톡이 와 첫 번째를 안 찍을 수 없게 됐다면서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이다. 첫 번째 후보가 립서비스로 늘어놓은 여성정책을 그나마 지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두 번째 후보 선거 캠프의 여성본부, 여성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등에 연락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봤다. 여성들은 왠지 나 몰라란 식으로 성의가 없었고, 국민통합위원회 남자분이 필자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남자만 징병제 의무가 있는 등, 여성 우선이 과하게 돼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남자들의 불만들이 있었고, 그것을 개선한다고 하니, 여자들의 불만이 생겼지만, 젊은 층의 지지자들이 늘어났다는 것. 그래서 표심 읽기 상, 여성정책 립서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고민이나 편법 등은 덜 중요하다. 혹평하면, 평화 치매에 걸린 소아병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의 위기이다. 생각해보면,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에 소련 브레주네프 정권이 바르샤바 조약을 내세우고 군사 개입하였을 때,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문화방위론’을 부르짖으며 대학생들이나 좌익문화인들과 대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미시마는 그러다가 1970년에 육상자위대본부 건물을 점령하고는 옥상연설을 한 뒤, 자결한다. 서울대 김윤식 교수 등이 그 사건에 관해 일찍이 썼지만, 지금 한국인들이 그 미시마의 죽음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필자가 동경에 살았을 때 그 건물 근처에 살아, 매일처럼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왔다 갔다 했는데, 필자 본인도 미시마의 그때 그 심정, 그 사상에 관해 깊이 있게 고찰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건물 옆에 아시아경제연구소가 있어 와세다 선배(이분은 정치외교학과 졸업)가 근무하고 있어서, 몇 번은 불려가서 술 마시면서 토론한 기억이 난다. 그때도 공부 부족인 필자는 불가지론, 비트겐슈타인 논리학, 촘스키 이론 같은 이상한 논법으로 그 선배를 괴롭히기만 했고, 제대로 된 토론을 못 했음을 인제 와서 부끄럽게 느끼며 반성한다.

필자는 그 당시, 남한, 북한에 대해 책으로만 공부했지,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 뒤, 몇십 년이 지났는데, 필자는 하나의 죽기 살기 모험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기를 선택했고, 그게 사르트르적인 투기라고 믿어왔는데, 최근 와서 겨우, 자기 반생을 후회하지 않고 돌아보며, 지금 자신이 이르게 된 지점을 어느 정도 스스로 인정하면서 앞으로 더욱더 노력할 의욕이 배가됨을 느낀다.

필자가 동경에 있었을 때, 사실, 황실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리적인 얘기가 아니다. 필자가 만나던 가쿠슈인대학 여학생(일본에 귀화한 재일동포)이 아키시노미야의 결혼상대로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였고, 필자의 어떤 아저씨는 나사레원 일본인처 문제나 이방자 여사에 관한 봉사활동 등을 많이 해서, 오늘날의 미치코 상황후(당시 황후)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후쿠자와나 춘원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의 황실중심주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강덕상 교수가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황실의 비화를 해준 기억도 나는데, 그 얘기는 유언비어 같은 것이었다.)

천황, 황실은 살아 숨 쉬는 일본 전통, 문화의 핵심이며, 일본 헌법에 있듯이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일본정치, 사회의 상징적 조정자이다(권력은 없지만). 약 55년 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 미시마가 ‘문화방위론’을 외친 것은 평화치매, 좌익소아병에 걸려 외래문화나 외세의 전략에 놀아나고 있는 국민들을 각성시키고 문화, 즉, 천황을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 나라를 방위하자고 호소한 것이었다. 그의 자결은 그저 그의 낭만주의적 성격으로 환원되어버리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사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시마는 일본을 구하기 위해 예수처럼 한 몸 바치고자 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평화치매, 좌익소아병은 어떠한가? 첫 번째 당이 그것을 여실히 체현해버린 형국이다. 진보파들이 제대로 감시했으면, 이렇게 타락을 하였을까 의아해지기조차 하다. 과연, 모두에 언급한 여성문제만 해도, 첫 번째 당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여성 편에 서는 철학을 제대로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윤미향 씨를 두둔하는 일 등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고, 결국은 반일감정을 섣불리 이용하고 여성문제를 어설프게 악용하고 사리사욕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추악한 행태를 허용하는 고질적 체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런저런 여성정책에 관한 문제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민주당 비판이 참고가 된다)

첫 번째 당의 악폐, 좌익소아병은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체제에서 비롯된다(나 자신과 내 자식 교육도 뉘우침). 지금 교육체제에서 성적이 좋게 우등생이 되면 될수록 그 병폐를 앓게 된다는 것이 유독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미국 민주당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 민주당에 책임이 없지 않은 것도 그런 문맥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라는 공통분모 위의 진보사상이라면 좋은 것이다. 나토에 가입 못 해 침략당하는 저 나라에 비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한미일 동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깨달을 때가 됐다.

동시에 약 55년 전 미시마 같은 인물이 한국에 나와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의 승리자는 미시마와 비슷한, 아니 더 한 각오로, 그 자신의 십자가를 매고 맑고 드높은 뜻으로 청와대 입성을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한류가 있다. 이것도 한미일 동맹이 밀어주는 덕분인데, 그런 외교관계를 무시하면, 그나마 이어져 온 한류도 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다. 홍콩을 삼켜버린 중국이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면 노릴수록 대만을 힘을 합쳐 지켜줘야 하는 시점에, 한국의 외교적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촉이 빠르게 잽싸게 눈치를 채며 잘 읽어야 하는 우리다.

아울러, 지금 한류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켜 문화외교라는 전략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일본 황실 못지않게, 아니 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법통을 되찾고 되살리는 노력을 아껴서는 아니 되리라. 그런 노력을 우리가 독선적이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로 공생적으로 지속할 때, 소련 붕괴처럼 러시아가 붕괴되고, 이어서 중국 분열이 현실화되는 데까지 가게 될 때, 그때가 우리가 미국, 일본과 함께 12환국(대조선 합주국)을 대륙에 다시 세울 때가 되리라.

그런 자긍심, 보람을 느끼면서, 우리도 일본 못잖게 대학 졸업식, 시업식에 한복을 입히는 문화운동을 일으키면 어떨까? 한복을 안 입고 양복을 입었더라도, 공화정 하에서 복벽운동을 일으킬 수는 없을지언정,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이에 천손강림족(9환족)의 후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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