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성 전 달라스한인회 이사장, “청원군에 강제징용 전시관 만들고 싶어”
오원성 전 달라스한인회 이사장, “청원군에 강제징용 전시관 만들고 싶어”
  • 달라스=이종환 기자
  • 승인 2022.04.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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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 조선인광부 명부에서 선친 이름 찾아내… 문의면에서 카이지마탄광으로 10여명 강제징용돼
오원성 전 달라스한인회 이사장
오원성 전 달라스한인회 이사장

(달라스=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광복절에 불러보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글을 본 것은 3월 중순 달라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달라스한인문화회관에서 만난 오원성 전 달라스한인회 이사장이 현지 뉴스코리아지에 기고한 글을 꺼내 보였던 것이다.

“‘아버지를 찾았다, 찾았어!’ 누나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심장이 멈추는듯했다. 아버지 발자취를 찾을 요량으로 국가기록원, 군, 면사무소 등 생각나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중략) 아버지는 강제징용에 끌려가셨다. 그런데 큐슈 카이지마 탄광의 조선인광부 명부에 아버지 이름 석자가 있었다.”

오원성 이사장은 문인이다. 수필도 쓰고, 신문과 잡지에도 기고하고 있다. 그 때문에 훈련이 돼 있어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그의 기고는 술술 읽혔고, 흥미진진했다.

오 이사장의 선친은 오정호다.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서 일제에 강제징용돼 갔다. 그런데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유족들은 어디서 강제노동을 했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고,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희소식이 찾아들었다. 유학 시절 큐슈지역을 여행하다가 카이지마 탄광 6갱과 7갱의 조선인 탄광 노동자 2천400명이 적힌 명부를 확보한 광운대학교 이향철 교수와 연결된 것이다. 이 교수가 명부를 확보한 것은 1995년. 이를 공개한 것은 2005년 2월이었다. 이 교수는 KBS에 출연해 명부를 제공했고, 그후 노무현정부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신고정책'이 발표되자, KBS 2TV 아침마당 프로그램 담당자가 c청원군 문의면사무소를 방문해 강제징용자 후손들을 확인하면서 이 명부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원성 이사장도 이 교수와 연결돼 드디어 선친의 이름을 명부에서 확인했다. 정말 요행 같은 일이었다.

“명부에는 아버지가 ‘도주’로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인광부 명부에 보면 ‘도주’로 된 사람들이 무척 많아요.”

오 이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광부 명부 사본을 내보였다. 카이지마 탄광 6갱과 7갱에서 일한 조선인 명부에는 청원군에서만 77명의 징용이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그중 13명이 문의면 사람으로, 대부분 도주로 기록돼 있었다.

“아버지는 도주가 아니라, 반항했다는 이유로 죽도록 맞아서 피를 낭자하게 흘리고 실신하자, 거적에 말려서 쓰레기처럼 내버려졌다고 합니다. 이를 인근 조선인 부부가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가 간호를 해서 한달만에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 이사장의 선친은 탄광에서 중노동으로 심신이 지친 가운데도 저녁이면 선생님을 모셔와 사람들한테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 공부하던 몇 사람과 함께 월급에서 일정액을 내서 독립자금으로 부산의 모처로 비밀리에 부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탄광 감독한테 당한 것이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카이지마 탄광 기록에서 ‘도주’라고 쓴 조선인 강제징용 광부 상당수는 오 이사장 선친처럼 뭔가의 이유로 심하게 린치당해 버려지거나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견해다.

“자라면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간 적이 있어요. 어릴 때였지만, 아버지 온몸에 흉터가 있는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오 이사장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일제에 의해 큐슈의 캄캄한 막장으로 끌려가 린치를 당하고 숱한 고생을 했다”면서, “식민지에 태어난 청년으로서 너무 가슴 아픈 개인사”라고 말을 이었다.

오 이사장은 ‘광복절에 불러보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글에서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던 시대에 하루 하루가 지옥 같던 고된 노동과 굶주림 속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을 만큼 강인했던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의 황혼은 쓸쓸했다”고 적었다.

“수년을 두더지처럼 굴속에서 살았던 후유증으로 병마와 싸우고 계실 때 아버지를 부축해드리려고 손을 잡다가 무척 놀랐다. 가정의 대들보로 바위라도 부술 것 같던 아버지의 손은 반신불수로 너무나 여린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오 이사장은 “큐슈 카이지마탄광에서 아버지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청원군 문의면에서만 13가구에 이른다”면서, “문의면에 있는 고향집을 큐슈 탄광 강제징용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오원성 이사장은 1996년 SPC그룹 임원해외연수 대상자로 미국에 왔다가 1년 후 중국법인장으로 발령이 나자 가족을 미국에 남기고 혼자 귀국해 4년간 기러기 아빠 생할을 하기도 했다.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한 작가인 오 이사장은 틈틈이 쓴 글을 모아 회상록과 수필집 등 5권의 저서를 냈다.

오 이사장은 2015년 이래 매년 연말 달라스 남쪽에 위치한 무숙자 쉼터를 찾아 저녁 식사를 제공해 왔으며, 코로나를 맞아서는 의료기관·경찰국·소방국·교도소 등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 화장지를 전달해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그는 또 북텍사스 캐롤튼시에 건립된 전쟁영웅 기념탑 지원 한인사회 성금 모금에도 앞장섰고,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 유공자 49여명의 이름을 기념공원에 새기는 데 공헌했다. 또 달라스·포트워스 국립묘지에 세워질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달라스한인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오랜 기간 민주평통 자문위원과 부회장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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