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기, 대통령궁, 5.25광장, 보카, 라 플라토, 평화통일기념비…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기, 대통령궁, 5.25광장, 보카, 라 플라토, 평화통일기념비…
  • 김동수 민주평통 OC샌디에고협의회장
  • 승인 2022.07.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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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민주평통 미주지역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갔다. 행사 후 일행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를 돌아보았다. 필자가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보내온 것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브라질 이구아수를 떠나 밤늦게 아르헨티나 EZE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김승준 간사와 정인기 부회장의 차에 나눠타고 숙박지인 인터콘티넨털 호텔로 향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약간 쌀쌀한 기온에다 비까지 내려서 인지 공항을 벗어나 40분간 운전해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 모습은 서울 시가지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평지가 대부분이라 길도 똑바르고 도시 계획이 잘 돼 있었으며, 거리도 훨씬 깨끗해 보였다.

긴 여행으로 꿀잠을 잔 우리는 이튿날 아침부터 시내 관광에 나섰다.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카사 로사다라고 불리는 대통령궁이었다. 도시 전체가 유럽풍으로 비교적 잘 지어져 있는 데 비해, 대통령궁은 규모가 작고 초라하게까지 느껴져서 약간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아르헨티나의 세종대왕 같은 제2대 사르미엔토(Sarmiento) 대통령 때 건축됐다. 된 회색 빛깔의 도시 건물들과 구별하기 위해 소피를 시멘트에 섞어 붉은색을 띠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청와대를 몇 번 가본 나는 청와대가 얼마나 멋있는 데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대통령궁 옆에는 아르헨티나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5·25 광장과 공원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호세 데산 마르틴이라는 장군의 지휘 아래 1810년 5월 25일부터 독립 전쟁에 들어가 1816년 7월 9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고 한다.

마르틴 장군은 거의 백전백승을 한 한국의 이순신 같은 장군이었다. 그의 장례식을 치렀을 때 같이 전투에 임했던 군인들을 초청했는데 겨우 7명만 살아남아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호세 마르틴 장군은 아르헨티나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같은 건국을 이뤄낸 장군답게 무덤은 성당 옆에 조성되어 있고 성화가 24시간 불타고 있었으며, 군인 7명이 교대하며 호위를 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만든 장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 아르헨티나 국기는 파란색이 위와 아래로 있고 중간에 하얀색이 들어간 사각형 모양이다. 그것은 하늘과 구름 그리고 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 태극기와 브라질 국기에 비하면 좀 단조롭다.

그 옆으로는 프란시스 교황이 대주교 시절 일한 대성당이 있었다. 프란시스 대주교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아르헨티나의 민주항쟁 시기,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잡혀갈 때 수많은 젊은이를 구해냈다고 한다. 나는 거기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렸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탱고의 원산지인 보카(Boca)의 카미노(Camino)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르헨티나의 축구 명문 중학교인 보카의 구장을 지났다. 아르헨티나는 이곳에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을 조기 발굴해서 훈련해 프로 구단으로 보낼 뿐만 아니라, 유럽 구단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천재 축구 선수 메시도 그러한 선수이다. 마라도나는 이 구장 출신은 아니라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BTS를 키워내는 것과 같은, 조기 재능계발 시스템이다.

보카(Boca)는 ‘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의 모든 길이 부채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아르헨티나 지방의 농축산물들도 이 길을 타고 유럽 특히 영국으로 수송됐다고 한다.

카미노(Camino)는 ‘길’이라는 뜻이다. 모든 열차 길이 이곳으로 오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항구 도시 보카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마치 미국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와 비슷했다. 이곳에는 미술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피카소도 휴양할 때 스페인에서 이곳으로 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우리는 코리아타운을 찾아 점심을 우리식 국밥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은 우리 일행은 오후에는 세계에서 너비가 제일 크다는 라 플라토(La Plato) 강으로 향했다. 이 강 하구의 너비는 자그마치 160km. 바다같이 느껴지는 강인데 지도를 보니 이 강이 왜 넓은지 알 수 있었다.

이구아수강을 비롯하여 모든 큰 강들이 이 La Plato 강으로 모여들었다. 내려오는 강물의 압력으로 강어귀도 대서양 바닷물과 섞이지 않고 민물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여기서 강너머 우루과이가 보인다고 하며, 37년을 이곳에 산 본인도 오늘 겨우 3번째 봤다고 말했다. 플라토(Plato)는 ‘은’이라는 뜻인데, 약 1600km 떨어진 내륙 지방에서 이곳으로 은을 수송해왔다고 했다.

넓은 강을 유심히 보고 있자니 허수아비로 아이 모습을 만든 유령이 바다 위로 보였다. 이것이 뭐냐고 안내자에게 물었다. 1970년대 학생 민주화 운동이 한참일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 수많은 젊은이가 이 강 위에 시신으로 떠 올랐다고 한다.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유령 허수아비를 만들었었다는 얘기였다.

강둑 옆에는 희생자 수천 명의 이름을 새긴 두 개의 벽도 길게 직각으로 세워져 있었다. 5.18을 겪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됐다고 한다.

그다음 날 안 사실이지만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모임이 국회의사당 가까운 곳에서 열린다. 하얀 스카프를 쓴 엄마들이 중심이 돼 모이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고 할까.

이어 우리는 민주평통 남미서부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사무실은 약 3년 전 현 정유석 회장 때 옮겨온 곳으로, 장소도 넓고 교실 강의실처럼 책상이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이 사무실을 산 후 월례 모임도 정기적으로 잘 개최하고 있다고 해서, 같이 MOU를 맺고 있는 우리 협의회도 덩달아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이날 저녁 우리 일행은 ‘아사도’라는, 아르헨티나 스테이크를 대접받았다. 현지 자문위원들도 참여해 서로 환담하다가 탱고 쇼를 보러 가자는 제의에 따라 가장 잘한다는 곳으로 따라나섰다. 탱고는 스텝이 빠르고 경쾌하다. 탱고의 탄생지에서 보는 이 춤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어떻게 탱고가 유래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어 아르헨티나 포크송과 뮤지컬 ‘에비타(Evita)’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들으며 에바와 연관된 아르헨티나의 꼬여진 역사도 새로 알게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평화통일 동산과 기념비를 보러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으로 갔다. 동산과 기념비는 한국인 소유 골프장에 만들어져 있었다. 남미대륙의 ‘땅끝마을’이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동포들이 합심하여 만든 아름다운 기념비였다. 백두산의 돌과 한라산의 돌을 한군데 모아놓은 의미깊은 동산이었다.

‘깨끗한 공기’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뜻처럼, 평화통일 동산 부근은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나는 지구 반대쪽에서도 평화통일의 염원이 불태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백두산에 직접 가보리라 다짐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금 보유량이 세계 1위일 정도로 부자 나라였다. 하지만 남미의 많은 국가와 비슷하게 정치의 부패와 교육 부재로, 그 넓은 국토(세계 8위)와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옛 명성을 못 찾고 있다. 군정 때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정치는 여전히 불안정해 보였다.

이번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면서 자유와 번영,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번영해도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조선이 을미 박해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쇄국정책을 펴고 있을 때였다.

이후 한국은 나라를 잃기도 하고 남북 간 전쟁도 했다. 전쟁 직후에는 세계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지만, 그 후 70년이 지나면서 한국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민주화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 하지만 한시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듯하다. 한때 세계 10위에 들었던 부국 아르헨티나의 역사가 거울이 되고 있다.

김동수 민주평통 OC샌디에고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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