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칸쿤의 댄스파티
[Essay Garden] 칸쿤의 댄스파티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2.08.08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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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해 전쯤이었던가. 어느 날 초청장이 날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여 피아니스트로 기대되었던 여 조카. 대부분 삶이 뜻대로 안 흘러가듯이 박사학위 최종 심사위원 중에 한 교수가 자기 제자가 안 된 것에 불만을 품어 심술 놓았기에 조카는 결국 학위를 포기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하여 전공과는 다른 세상인 외국산 자동차회사에서 일한다. 거기서 만난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단다. 시어머니가 초청장의 우편 발송을 도왔다는 기다란 사각형 봉투의 디자인도 이채롭다. 친구들이 멕시코의 칸쿤으로 날아가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또 손이 큰 시아버지는 집을 살 돈을 선물로 주면서 신부를 대환영했다 한다.

우리 쪽 친척들이 누가 가나 알아보니 모두 멀어서 못 간다는 소식이다. 멕시코에 가본 적이 없던 나도 참가 여부가 고민되었다. 한국에 살 적부터 서울에 갈 적이면 이모네 집이라 밤을 지새우며 재잘대던 내 이종사촌의 딸이었다. 오래전 나의 친정 모친 장례식 때 샌디에이고에 왔기에 우리 집에서 보고는 못 보았다. 용기 내어 내 딸과 함께 참석하기로 작심하고 축의금도 보냈다. 나는 이른 아침 출발 때문인지 기운이 없어 넓은 달라스 공항에서 휠체어를 탔다. 핸드백을 들고 딸이 함께 달려서 겨우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멕시코에 도착하니 경계해야 할 야바위꾼도 보여 나는 여권을 손에 꼭 쥐었다. 다행히 비행장 밖에는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사촌이 기다리고 있어 안심했지만, 조금 긴장된 시간이었다. 공항을 나오니 어두워진 저녁이라 사방은 볼 수 없어 알 수 없고, 꽤 큰 골프리조트 같았다. 아담한 콘도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전등 불빛 아래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핑크빛 자전거를 여러 개 대기해 놓은 골목 풍경이 참 특이했다. 우리 숙소는 거실도 넓고 방이 세 개인 콘도였다. 들어가니 진한 모기향을 피운 냄새로 가득했다. 창문이 닫혀 있으니 맑은 공기도 마시지 못했다. 여행 좋아하는 지인들이 해마다 칸쿤 여행을 겨울에 가는 까닭을 알겠다. 바쁜 조카가 자기 사정대로 계획했기에 우린 따라가야 했다.

식당으로 가니 각지에서 날아온 수십여 명의 친구들로 왁자지껄했다. 미국에서 하면 친구가 너무 많아 감당하기 어려워 이곳으로 택했다는 야무진 조카는 여전히 성격이 활달했다. 둘째 날 결혼식 전야제는 신랑의 계부가 한턱을 내었는데 하늘색 파란 재킷을 걸치고 우리가 즐겨 부르던 ‘스윗 캐롤라인’ 등의 노래를 가수처럼 멋지게 불렀다. 돈을 쓸 줄 아는 사돈이 멋져 보였다. 노래를 잘하는 우리 딸애도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미국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모두 엉덩이를 흔들며 잔을 들고 대화하고 흥얼거리니 우린 서로 친해졌다.

다음날은 신부가 화장하는 동안 여자 가족들은 마사지를 받으면서 쉬지만, 나는 휴게실에서 책을 읽었다. 드디어 석양이 물들고 하얀 모래밭 위엔 결혼식 꽃 아치가 세워졌다. 하얀 제복을 입은 멕시코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으로 하객들을 맞이했다. 호텔 측에서 준비한 여성 주례가 들고 온 분홍과 파란색 모래가 들어 있는 시계를 탁상 위에 올려놓고 식은 간결하게 진행되었다. 야자수와 맑은 하늘빛, 드넓은 진초록의 바닷물과 어울려 신비로운 풍경이 탄성을 절로 내게 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 친구들이 멀리서 비용을 쓰며 이렇게 모여들었나 보다.

저녁을 먹은 후엔, 수영장 옆에 준비해 놓은 댄스 파티장이 화려하다. 원래 의상 디자이너인 내 사촌은 딸의 웨딩드레스는 만들었다. 내 결혼식 때도 그랬다. 지금 사촌은 미국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다. 가게에서 우리를 위해 드레스를 골라 가져왔는데 천이 두껍거나 색깔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의 신부보다 언니인 내 딸이 다음엔 결혼할 순서라며 화려한 드레스를 입혔다. 살 빛깔의 드레스가 좀 야해서 딸은 조용히 내 곁에서 댄스파티를 구경하고만 있었다. 갑자기 신랑의 동생인 사둔 청년 ‘스펜서’가 불그레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요, 함께 춤을 춥시다”라고 하면서 강하게 우리 모녀의 손을 붙들어 끌려나갔다. 얌전해 보이던 스펜서가 와인 한 잔 마시니 그렇게 활발해졌다. 스펜서 부부랑 손을 잡고 추니 다른 젊은이들도 내 주위로 하나둘 모였다. 마치 내가 인기스타처럼. 구슬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한참 추었다. 구두 발굽도 아마 꽤 달았을 정도로. 이런 엄마의 모습에 놀란 딸이 계속 까르르 웃었다. 정열적인 젊은이들과 춤을 추던 칸쿤의 밤, 댄스파티.

결혼식장으로 신랑을 안내했던 들러리 남자친구들도 흥분하여 6명이 나란히 서서 옷을 입은 채로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어 폭소를 자아내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은 아름다운 호숫가를 보며 조각배에 함께 앉아 유람했다. 커다란 도마뱀과 특이한 새들과 인사하며 유명 배우들이 머문다는 별장들도 멀리서 보았다. 매일 아침 가지가지 색깔의 과일 주스와 맛깔난 호텔의 뷔페 음식들은 종종 지금도 그리워진다. 하지만 매서운 모기가 무서워 밤 산책도 못 했던 멕시코 땅, 칸쿤의 여름은 “아니올시다”이다. 몇 해 전 결혼식 핑계로 간 여행이었지만, 참 즐거운 추억이었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날아라 부겐빌리아Ⅱ>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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