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40년의 세월
[이영승의 붓을 따라] 40년의 세월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9.24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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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아장아장 걷고 있다. 마흔 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아들의 첫애다. 태어난 지 1년 반 되었으나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간 자라 걸음이 조금 늦었다. 어느 날 조마조마 발을 떼더니 하루가 다르게 발달했다. 요즘은 되똥되똥 잘도 걸으며 잠시만 방심하면 천방지축 마구 달아난다. 아들 부자가 아파트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며느리가 동영상을 찍어 보내왔다. 얼마나 신기한지 보고 또 봐도 한 폭의 그림이다.

나는 29세에 결혼해 첫딸을 낳고 32세에 아들을 낳았다. 첫돌을 지내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들이 그토록 귀엽고 신기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는 안동시 안기동 변전소 사택에서 살았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앞마당이 넓어 아이 키우기는 더없이 좋았다. 가끔 아들을 뜰에 내어놓으면 눈 깜박할 사이에 천방지축 달아났다. 하루는 달아나는 아들을 붙잡지 않고 뒤를 따랐더니 도로변까지 나가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나 주시하는데 이리저리 살피다가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나를 쳐다봤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산하려니 주인이 웃으며 돈을 받지 않았다. 아들을 안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진 양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으며, 우리 부부는 너무 놀라워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세월이 흘러 손자가 40년 전 아들의 나이가 되고, 나는 고희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꼭 한 세대가 흐른 것이다.

그때 사택에는 네 가구가 거주했는데 모두 나보다 5년 이상 선배였다. 우리는 이웃 사모님들의 많은 배려를 받으며 살았다. 여름이면 세 분 사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먼저 보는 대로 우물가로 안고 가 목욕을 시켰으며, 셋째를 낳으면 다 키워줄 테니 어서 낳으라고 재촉도 하였다. 당시는 국가에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으로 산아 제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때였다. 나도 그 국가 정책에 부응해 예비군 훈련 중에 용감히 시술을 받았다.

그 후 세상은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집집마다 나이든 자녀들이 결혼하지 않아 부모 애간장을 태우며, 우리 두 자식도 갖은 애를 태우다 늦게 결혼은 했지만 한 자녀씩만 낳은 후 더 낳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씩 낳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입을 봉하고 지낸다.

우리 부부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누구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살았건만 자식들은 그 마음을 아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결혼 후 자기 자식 귀여워하는 것을 보니 본인들도 더 없는 부모 사랑받으며 귀하게 컸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굽이굽이 부모 애를 태울 때도 있을 텐데 그 과정을 겪다 보면 부모에 대한 고마움도 가슴으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보답을 바랄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손주들의 재롱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다.

외손녀가 태어났을 때 기쁜 마음 실로 주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축하가 될까 고심하다가 아이 이름의 축하금 통장을 만들어 주고, 첫돌 때도 같은 금액을 넣었다. 하루는 아내가 “자식들이 가끔 주는 용돈을 무의미하게 다 써버릴 수 없어 외손녀 이름으로 매달 10만 원씩 5년짜리 적금을 들고 있는데 그 돈을 넣을 때가 너무 행복하다.”라며 혼자만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후 아내는 외손녀를 돌보기 위해 3시간 거리 지방에 사는 딸아이 집을 3년째 오르내리고 있으며, 나는 졸지에 주말부부 신세가 되어버렸다. 1년만 키워주겠다고 야무지게 계약서까지 썼으나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핏줄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손자 출생과 첫돌 때도 외손녀와 똑같은 금액 통장을 만들어 줬다. 손자를 처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기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아들 내외에게 “내 한 달 용돈의 반을 절약해 살아있는 동안 손자 교육비로 적금을 넣겠다”고 선언했다. 주말마다 반찬과 세탁물을 들고 혼자 사는 아들 숙소로 찾아가 집 청소를 하던 아내를 해방시켜 주었고, 나를 명대로 살 수 있도록 구제한 것에 비하면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통장 금액이 불어난다는 것은 내 수명이 연장된다는 사실이기도 하니 손해 보는 장사는 결코 아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말씀은 고마우나 너무 부담스러우니 5만 원씩만 넣어주세요”고 했다. 그 마음씨가 참으로 고맙긴 했으나 할아버지 체면에 한 번 뱉은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다만 외손녀와 차등 두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으나 딸은 일찍 직장 생활을 해 결혼 전에 집을 마련하는 등 아들보다 기반을 미리 잡았으니 이해하리라 믿으며, 외손녀가 취학하면 상황 봐서 학비라도 지원해 주면 될 일이다.

손주들 재롱을 보노라면 아들딸 어릴 적 키울 때 기억이 뭉게구름처럼 떠오른다. 나는 할아버지 살아오신 모습을 얼마간 지켜보았고, 아버지와는 긴 세월 함께했다. 자식들은 내 삶의 전부였으며, 손주 세대는 얼마나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남은 세월의 가장 큰 기쁨은 손주들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흘러간 내 인생의 40년 세월이 정말 꿈만 같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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