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㊷] 우리나라 음악교과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홍미희의 음악여행 ㊷] 우리나라 음악교과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3.02.17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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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음악과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국악계와 서양음악계가 예민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 음악교과서 내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두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교과서는 교수학습활동에서 가장 중심에 있고 모든 교육활동과 평가는 교과서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 제작과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의 제작은 주관하는 곳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국가 주도형은 국가가 주도해서 저작과 발행, 채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국가가 관여하는 형태로 흔히 국정교과서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국정교과서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학교를 졸업했어도 “야~ 그거 교과서에 나왔던 거잖아” 하면 서로 말이 통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만들어지는 교과서는 민간이 자유롭게 교과서를 개발하는 형태가 많다. 저자 선택과 디자인, 발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민간에서 주도하여 제작한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의 교과서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혼용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목에 따라 혼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럼 민간에서 제작을 하게 되면 교과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 안 된다”이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 우리는 교과서는 잘 알지만 교육과정은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왜 중요한지도 모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기초가 되는 생각이자 지침이다. 교육과정은 각 나라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 그리고 나라가 추구하는 생각과 이념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도 같이 바뀐다. 나라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제작순서는 다음과 같다. 교육과정이 공시되고 그 내용에 맞게 출판사별로 교과서가 제작된다. 만들어진 교과서는 심사본을 제작하여 검정을 신청한다. 검정은 기초조사와 본심사로 이루어지는데 당연히 검정위원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는다. 수능 출제위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1, 2차 심사와 수정, 보완까지 거친 후 최종 합격이 결정된다. 이때 심사에서 떨어지면 몇 년 동안 만들어온 교과서는 제작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과서의 저자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교과서의 제작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저자뿐 아니라 교과서에 사용되는 사진, 그림과 같은 저작료, 디자인비용 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과는 특히 악보도 모두 그려야 하고 만화로 내용을 제작하는 경우엔 따로 만화가 참여해야 한다. 이외에 음악 감상을 위한 음악 파일, 동영상 제작 등 다른 과에는 없는 내용이 많아 제작비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 심사본이 각 학교에 보내지고 학교에서는 각 과목의 교사와 학교 내 운영위원의 심사를 거쳐 사용할 교과서를 정한다. 이때 회의록까지 하나하나 정확하게 기록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교과서의 선정내용은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하고, 과목별로 선정된 출판사를 기록하여 교육청에 교과서 권수를 신청한다. 각 출판사에서는 선정내용에 따라 교과서를 제작하여 학교로 배급한다.

초등학교 음악교과서

이렇게 교과서를 만드는 시기와 사용하는 시기는 4년 정도 차이가 있어서 교과서 내용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음악과의 경우 대중음악은 인기 있는 장르와 작곡자, 곡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뭔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AI나 인공지능, 컴퓨터 음악 관련 부분 역시 내용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은 교육을 위한 일임과 동시에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채택률에 따라 경제적인 이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 음악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예술적인 음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인가의 문제와 비슷하다. 하지만 많은 작곡가들이 예술보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도 막상 대중은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처럼 채택률을 위하여 교과서를 쓴다 해도 현장에 있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선호도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또 교과서를 쓰는 저자들 자체가 경제적인 것보다는 명예와 교육을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막상 교과서 회의에 들어가면 서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실 어느 것이 더 좋은 결정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교과서를 만드는 실제 시작은 팀을 꾸리는 것이다. 팀원끼리 서로 성격이 맞지 않을 경우 모이면 싸우기도 하고, 교육의 기본 방향에 대한 시선이 다를 경우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어 기초를 잡는 데만 많은 시간을 소요하다가 팀이 깨지는 수도 있다. 팀의 조직은 출판사에서 하거나 대표저자가 모아서 만들기도 한다. 대표저자가 직접 저자를 모아 팀을 꾸리는 것이 그래도 서로 마음이 잘 통할 확률이 높다.

중학교 음악수업

교과서 팀원이 모이고 출판사 쪽에서도 서로 팀을 만드는 것이 확정되면 계약에 들어간다. 이때 나중에 받게 될 지분의 퍼센트나 계약금 등도 같이 결정되어야 한다. 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다른 출판사로 옮기거나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 물론 사람 일에 100%는 없지만 말이다.

내 경우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교과서를 쓰기 시작했다. 교육과정은 이상과 목적만 제시할 것 같지만 사실은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박자, 박자의 리듬꼴, 말붙임새, 음계, 토리, 론도, 연음형식, 변주곡 등이다. 이러한 내용이 빠졌다면 검정에서 통과할 수 없다. 또한 교육과정 속에 들어있는 교육부의 의중을 잘 파악하여 글에 녹이는 것도 저자가 할 일이다. 그래서 음악과 교육과정의 변화를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한말의 제1차 교육령에는 창가는 일본어로 기술, 제2차에는 국가적 이념을 담은 기미가요 등이 적혀 있다. 해방 이후 제1차 교육과정은 형식적인 것과 체재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실제 내용은 일본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제재곡과 감상곡 같은 것은 일본과 동일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새롭게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2021년 11월에 발표되고, 1년간의 제고를 거쳐 2022년 말에 완성된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의 계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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