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17] 씨간장
[아! 대한민국-217] 씨간장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02.25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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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22년 3월,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을 했다. 한국의 장으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간장은 그 종류가 다양해서 발효기간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용도 또한 달라진다. 발효기간에 따라 맛과 색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숙성 시킨 간장은 청간장, 3~4년 묵힌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푹 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 부른다.

간장의 특성상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색이 짙어지고 풍미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맑은 국물 요리에는 햇간장을, 나물이나 찌개에는 중간장을 달여서 맑게 거른 뒤에 사용한다. 색깔과 맛이 진한 진간장은 갈비찜, 불고기, 조림 등에 사용된다. 고추장이나 된장은 발효시키고 보존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인데 비해 간장은 몇백 년이라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간장은 특히 집안의 음식 맛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국빈만찬에 360년 된 씨간장으로 구운 한우갈비가 나와서 내외 귀빈들의 입맛을 돋운 바 있다.

간장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간장이 따로 존재한다.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았던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을 말한다. 씨간장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맛의 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색은 진한 흑색으로 부드럽고 강한 풍미와 단맛, 감칠맛을 낸다.

새로 담근 간장에 일정량의 씨간장을 첨가해 햇간장의 풍미를 깊게 하거나, 기존의 씨간장이 줄어들면 새로 담근 햇간장을 섞어 씨간장을 보존하는 것을 겹장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장독대에 보관된 씨간장은 수백 년이 지나도 동나지 않는다. 이 같은 겹장의 문화는 같은 두장문화권이라 할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겹장에는 과학적인 원리도 숨어있다. 콩을 발효시키면 자연의 미생물들이 콩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효소를 분비한다. 우리의 전통 간장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맛이나 향 역시 미생물이 분비하는 여러 효소의 작용 때문이다. 효소는 뜨거운 열을 가해서 달이면 사멸하지만, 적절한 환경 아래서는 발효 미생물이 다시 효소를 분비한다. 씨간장의 맛이 풍부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에도 끄떡없는 그 깊은 맛이 더해지고 또 유지된다.

메주로 장을 담그면 그 집안 안의 고유한 균이 간장에 들어간다. 맛이 균일한 공장식 간장과 집에서 담근 간장 맛이 다르고, 집안별로 각각 그 간장 맛이 다른 이유다. 겹장을 하면 간장 안에 있는 건강한 균과 가장 좋은 향미가 살아남는다. 오랜 세월 풍미를 이어가는 씨간장은 장독대에서 옹기째 훔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높게 평가되어 왔다. 씨간장은 종갓집에서도 한 항아리 정도씩만 보관해 왔기 때문에 상품성이 높아 부르는 게 값이다.

단순히 오래된 간장이 씨간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간장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맛이 있어야 한다. 숙성될수록 짠맛은 줄어들고 단맛을 비롯해 풍부한 맛을 자아낸다. 절에서는 스님들이 천연 소화제로 간장에 물을 섞은 간장차를 마신다. 씨간장은 감칠맛을 내는 천연 조미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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