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세계의 중심에서 자유를 외치다: 독립·혁명선언 국제 비교
[정대성 칼럼] 세계의 중심에서 자유를 외치다: 독립·혁명선언 국제 비교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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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이라, TV로 영화 <밀정>을 봤는데, 필자에겐 좀 씁쓰름한 추억이 있다. 약 10년 전쯤, 시나리오를 쓰고 독립유공자협회에서 제작발표회까지만 해서 불발됐는데, 작가 이이녕 선생의 소설 <임정 특파원 36호>(동도문화사, 1980)를 바탕으로 ‘007’ 같은 액션 영화를 꿈꾼 것. 그러다 비슷한 컨셉인 영화 <암살>이 나왔다. 설마 필자의 습작이 유용된 건 아니라도 괜스레 홀로 서럽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임정 간첩’이라는 주제는 007로 끝나지 않는다. 현시대의 건국 신화와도 관련이 있어서다. 올해 2.8 기념일과 3.1절 사이에는 ‘재외동포청 신설’이라는 뉴스가 있었는데, 남북한은 모두 재외동포 귀환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소앙(素昻) 조용은(趙鏞殷),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등등. 국내에는 친일의 가면을 쓰다가 8.15를 경계로 반일의 가면을 쓰게 된 대중이 있었고, 회색지대도 있었다.

위장 전향, 위장 협력 문제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다. 프랑스는 대독 협력자에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했다. 한국은 반민특위가 흐지부지 유야무야됐다. 권력에 이용당하기 쉬운 문학, 예술 분야는 지금도 협력 사실들이 발굴되곤 한다. 반민특위 때 춘원 이광수는 <나의 고백>(춘추사, 1948)을 써서 자기변호, 변명을 했다. 육당 최남선은 눈물 흘려 사과했다. 한편 상해임시정부 건국이념인 삼균주의의 제창자이기도 한 조소앙(素昻)은 1948년 유진오(兪鎭午)의 제헌헌법 작성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했고, 납북돼 ‘선생님’으로 모셔져 사후에 춘원과 함께 북한 ‘혁명열사릉’에 안장됐다.

동학혁명이 좌절로 끝나고,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됨으로써 국호가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수구파와 위정척사파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선거권 요구 등을 불법 운동으로 간주했다. 영국형 입헌군주제를 실현치 못하고 반(半)봉건·반(半)근대적 전제군주제로 머물러있는 채로 강제적으로 ‘병합’이 이뤄져 무단정치 끝에 3.1운동이 일어났다. 고종 승하를 계기로 공화제를 지향하는 입장이 주류가 됐다. 1919년 4월 10일 상해 임정 의정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제창됐고, 그것이 오늘날 남한의 국호로 계승됐다.

타도해야 하는 권력의 자리에 전제적 일제 총독부가 들어서서 우리 선언서는 ‘반일’로 치우쳐졌다. 보통의 경우 각 나라들은 농촌부, 도시부 부르주아 신흥세력이 충분히 형성되면서 유혈 또는 무혈의 혁명을 일으키면서 근대국가를 건립했다. 그러나 후진 신흥국인 독일과 일본은 대표적인 예외에 속한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는 일본의 지배를 받아 혁명의 화살이 ‘이민족 지배’로 겨냥됐다. 동학혁명이 내부의 봉건적 모순을 온존(溫存)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성립도 그렇게 됐다. 심지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에서는 그 모순이 독재 권력의 세습구조로 현상(現象)됐다. 우리 근현대 이행기는 중국보다 덜 복잡하지만 특유의 비약과 단절, 근현대적 신화화 과정이 있었다.

우선 <대한독립선언서>는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 ‘신성한 평등 복리’, ‘민주국으로의 자립’을 선언하고, “반만년의 내치외교는 한왕한황(대한의 왕과 황제)의 고유권(고유한 권한)”, “고산려수(금수강산)는 한남한녀(대한남녀)의 공유산(공유재산)”이라 갈파한다. 다음으로, 극에 달한 ‘무얼(일본 무사 패거리들)의 작난(作亂)’들을 열거하여 “천의 인도와 정의 법리에 조하야(비춰) 만국 입증으로 합방 무효를 선파하며 피(일본 침략주의자)의 죄악을 응징하며 아의 권리를 회복하노라”고 천명했다.

“황황일신(皇皇一神)께 소고하오며 세계만방에 탄고하오니 우리 독립은 천인합응(天人合應)의 순수한 동기로 민족자보(民族自保, 스스로 보존함)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함이오. 결코 안전 이해에 우연한 충동이 아니며 은원에 유한(얽매인) 감정으로 비문명인 보복수단에 자족함이 아니라.”, “단군 대황조(大皇祖)께서 상제에 좌우하사 우리의 기운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의 복리를 조하는(돕는)도다. 정의는 무적의 인(칼)이니 차(이)로써 역천(하늘을 거스른)의 마와 도국(盜國, 나라 뺏은)의 적을 일수도결(一手屠決, 한 칼에 목을 자름)하라”고 성토한다.

상해에서 세계정세를 목도한 소앙은 대한제국의 ‘대한’을 채택하면서도, 민주공화제를 외쳤다. 그런데 우리 역사상 민주의 경험도, 사상적 함양도 부족했다. 또한 고조선의 유토(遺土)를 잃고 잃어 우리 반도 땅조차 우리 선남선녀 공유재산도, 자유민의 사적 소유도 아녔다. 그건 그렇고, ‘무얼’과 ‘하늘’을 분리시킨 논법은 근대 일본 보수 논객의 춘추필법(春秋筆法), 즉, “군측(君側)의 간신을 토벌한다”는 논법과 상통된다. ‘강도 일본’(단재)의 침략주의자를 ‘마’라고 명명하고, 단군과 함께 ‘상제’ 개념을 끌어들였다.

이는 위정척사파가 근대 서양 및 일본을 통틀어서 적대시한 것과는 달리 설령 제국주의 국가일지라도 선진 문명국으로 인정해주고 대화와 조화의 이념적 근거가 되는 개념들, 그 최고 개념인 ‘신’의 개념을 공유한 바탕 위에 침략주의만을 척결하자는 소앙다운 독실함과 배짱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상제에 좌우하사”라는 표현은 주역과 성경의 조합이다. 소앙의 육성교(六聖敎)를 참고하라.

만주의 신규식 등의 지시로 소앙이 동경으로 파견돼 동경 유학생들을 지도해서 나오게 된 <2.8독립선언서> 초고는 춘원이 작성했다. 춘원은 기초만 하고 상해로 바로 피신을 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위키백과를 보니 춘원이 일본 히비야 공원에서 낭독까지 한 것으로 돼 있다. 암튼 그 내용은 한일병합 부정, 민족자결권 요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일본과 혈전을 불사함이다.

천도교의 온건적 독립운동의 일환인 독립청원에서 비롯된 3.1독립선언은 하나님 보우하사 기적적으로 이뤄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한제국 고관을 지낸 김윤식, 박영효의 완강한 반대로 좌절될 뻔하다가 다시 급진전되어 종교계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는데, 유교계 대표 김창숙은 고민하다 간발 차이로 참가하지 못했다. 육당의 문장은 명문이지만 종교적, 정치이념적 미사여구로 장식돼 있다. 2.8, 3.1 두 선언서는 <대한독립선언서>의 요약이나 선정성이 짙어진 성토문이다.

물론 그 선정성 탓에 민중들의 희생이 확대돼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거족적 항거가 일어났거니와 그 소중한 희생 덕분에 상해 임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면서, 대한민국 건국으로 이어져 지금도 국가 이념으로 계승되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거사의 기본 철학은 단순한 ‘반일주의’도 아니요, 일개 ‘반일감정’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외교론과 무장투쟁론의 방법론적 모순이 노정(露呈)돼 있어도 제일 큰 모순은 반제국주의이면서 서양문명주의 추종인 데 있지만, 그것은 이른바 ‘계몽의 변증법’의 큰 틀 안에서 관찰되어야 할 사상적 과제이다.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자유헌장, 1215년)에는 “왕은 의회를 소집한다”, “잉글랜드의 자유민은 국법 또는 재판에 의하지 않으면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당하지 않는다”, “교회는 왕으로부터 자유롭다”, “왕의 직할령과 관련해 아무도 생명을 빼앗기지 않는다” 등의 내용들이 이미 들어 있다. 명예혁명 이듬해(1689년) 성문화된 <권리장전>에는 의회 선거의 자유, 의회 내 발언의 자유, 국민의 청원권, 의원의 면책 특권, 인신의 자유 등이 보장돼 있다. 청교도혁명 때 왕당파로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로버트 필머 같은 이들과 싸우면서 나온 존 로크의 사상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인간의 태어나면서의 자연권, 천부인권,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며 신앙, 출판, 결사의 자유 등을 보장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채택됐다. 당시 프랑스 학회에서 무시당한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이다. 미국에선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으로부터 1791년 <헌법권리장전>이 나오는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권, 자유, 평등, 무장권, 행복추구권, 정부개혁권, 혁명권 등이 규정됐다. 한편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봉환한 뒤 메이지 천황이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형식으로 1868년 <어세문>(御誓文)이 공포됐다. 여기에는 “널리 회의를 일으켜 만기 공론으로 결정”, “상하가 마음 하나 되어 성대히 경륜을 행할지어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인류 보편의 가치를 함양해준 서양은 한편으론 제국주의로 나아가기도 했었다. 대항해 시대, 세계 각지에서 약탈과 살육을 한 다음 식민지 분할, 지배까지 했다. 가톨릭, 개신교 모두 그 선봉에 섰다. 지금은 영국의 <자유헌장>마저 유엔 <세계인권선언>(1948년)에 비춰 뒤떨어졌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제 비로소 “내 자유가 소중하다면 남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진리에 도달한 셈이다.

임정은 상해 프랑스 조계지(租界地)에 들어섰는데(유적지는 코로나19로 폐관?), 조계지란 서양 나라, 그리고 제국주의와 청 제국, 중화민국의 ‘정치 역학 각축장’이었다. 우리 <독립선언서> 들도 서양 신학, 철학의 문맥에서 성립된 것이지만 기독교 제국이 모두 예수님 같지는 않았다. 헤이그 특사 사건(1907)의 전철을 밟듯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 소앙, 여운홍 등 대표단이 참석하는 것은 실패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건대, 일본은 천황제를 되살려 개혁을 일으켜 부국강병을 이룩해 나간 반면 한국은 고종 승하로 얼떨결에 허울뿐인 부르주아혁명이 되고 미국에 의한 일본 패망으로 독립을 거저 받게 됐다. 소련의 남하로 독립을 거저 받은 북한은 자본주의 발전도 없이 느닷없이 사회주의혁명으로 돌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한국은 구미 몇백 년의 문명사를 50년 사이에 따라잡은 일본의 ‘압축 근대’보다 더한 ‘초압축 근대’를 지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선진국 문턱에 섰다”고 말한다. 물질적으로? 그러나 정신적으로도 과연 그럴까?

그런데 필자가 어렸을 때 본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의 부친은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을 주도한 오카모토 도오키(岡本唐貴)이고, 그는 어렸을 때 재일조선인 부락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닌자 무예첩>, <사스케>, <카무이전>(カムイ伝, 1964) 등의 걸작들을 남겼다. 과학적인 설명, 자연 묘사 등 유물론적 관점, 아녀자도 난데없이 살해당하고, 칼날에 피가 터져 나오는 잔인함, 동양적 붓 터치, 민중사관(프롤레타리아 역사관) 등으로 유명하다.

이에야스로부터 미움받는 닌자 집단에 속하는 어린 천재 닌자 사스케는 아버지와 함께 키리시탕(에도시대 숨어살던 기독교도) 마을을 알게 돼 애니에서는 막부의 탄압을 피하여 민초들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원작 만화에서는 모조리 학살당한다. 카무이는 청부살인 일이 싫어져 닌자 집단을 빠져나가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고 자신을 쫓아오는 암살자들을 죽여야만 살아남는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현대 일본에도 무수의 사스케, 카무이가 있다. 즉, 정치 삼류 국가에서 인권유린 상황과 삶의 부조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괜찮은가?

김구의 지시로 움직이던 지사들은 닌자의 나라 일본의 육군나카노학교(陸軍中野学校) 등을 졸업한 우수한 스파이, 군경, 고등계 형사들과 잘 싸웠다. 얼떨결에 해방을 얻은 것은 아니었고, 한국 민주화 또한 군사독재의 압제를 잘 이겨냈다 한들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사색과 혈육화 없이는 설익은 민주주의가 언제 후퇴하고 떼법, 중우정치, 권위주의가 언제 창궐할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 국회의원 577명 중 해외영토 대표 27석, 재외 프랑스인 대표 11석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해외동포 대표 0명인 해방된 대한민국 자유인들의 ‘자유’는 괜찮은가?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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