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오월은 축제의 달이다
[해외기고] 오월은 축제의 달이다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브리즈번)
  • 승인 2023.05.29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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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창을 통해서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밝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은 완벽한 푸르름이 눈에 스며들 듯하다. 맑고 서늘한 기운이 밴 오월 하늘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은근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 기운을 받아서인지 태양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오월은 역시 축제의 달이다!

- 축제 하나 -

브리즈번에는 매년 오월이 되면 국제 작가 축제(Brisbane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가 열린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개최되는 ‘브리즈번 작가 축제’는 올해로 61회를 맞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2023, 작가 축제(5월 10일~14일)가 열리는 올해의 ‘문학 주빈 국가’는 한국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놀라움과 반가움이 겹쳤다.

작년에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를 인터넷줌 화면으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저주 토끼(Cursed Bunny)>라는 단편 소설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는 정 작가의 능숙한 영어대담으로 진행되었으며 작품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에는 시드니문화원의 초대로 작가들의 대담프로그램에 청중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든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브리즈번을 방문한 한국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일하는 날이 겹쳐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정보라 작가와 최은영 작가와의 대담, 그리고,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의 대담 회에 참석해서 그들의 작품세계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호주인 청중은 “한국에서는 단편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최 작가는 “단편은 짧은 내용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작가들이 중편이나 장편보다 단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이영주 시인은 자작 산문시를 낭독했으며, 배수아 작가는 자신의 소설 일부를 낭독해서 청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어서 호주 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대담 회가 끝난 후에 잠시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호주에서도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대신 전해달라는 시드니 Y 시인의 부탁을 전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첫 한국인으로 ‘브리즈번 작가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은“엄마를 부탁해”로 200만 부 이상의 책이 팔렸으며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가 신경숙 씨였다. 한국의 K-Pop뿐만 아니라 K-문학도 세계로 뻗쳐나가는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흐뭇한 마음이 된다.

- 축제 둘 -

호주의 어머니날(Mother’s day)은 오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이날만큼은 자녀로부터 특별 귀빈 대우를 받아도 당당할 수 있는 날이라 여겨진다. 부모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에게 평생 무료 봉사를 제공해주는 일이 마치 의무처럼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올해 어머니날에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다.

딸의 절친이 딸과 어머니들의 의상 스타일을 바꿔주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우리 모녀를 초대했다. Styling Station Australia라는 이름의 지역사회 단체가 있는데 주로 여성들을 위한 비상업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행사로 생긴 이익은 지역사회의 불우한 여성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봉사자인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각 초청자 개인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골고루 입혀보고 (모자,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핸드백)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 세 벌을 무료로 증정해주는 이벤트였다. 의상은 라벨이 붙은 새것이며 모두 유명 브랜드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딸과 친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입어보며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는 평소에 즐겨 입는 캐주얼을 몇 벌 입어보고 쉽게 선택을 했다. 팀 대표는 우리에게 샴페인을 권하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주었다. “이 이벤트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축하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방법입니다”라면서 홍보를 부탁했다. 어느새 예정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가게 문을 나서는 우리의 손에는 묵직한 옷 가방이 들려있었다.

만약에 이런 옷들이 기증문화로 변환되지 않는다면 자연환경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옷을 많이 생산하는 대기업에서 팔리지 않는 옷이나 계절을 넘긴 옷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매립지에 버리게 되는데, 화학물질이 들어간 섬유는 썩지 않기 때문에 땅을 병들게 한다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세 벌의 옷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친환경 정책에 한몫했다는 자부심까지 덤으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적극적인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작은 일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이벤트였다.

- 축제 셋 -

시내 보타닉 가든에서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Botanica Festival)가 브리즈번 시내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5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는 조각예술가들의 작품을 야외에서 전시하는 예술조각품들의 전시회다. 매일 저녁 5시 이후,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으면 아름다운 색채로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공원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꿈의 파열, 땅의 휴거’라는 제목을 붙이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공연을 펼쳤다. 뻥튀기 기계처럼 생긴 검은 상자에서 비눗방울 같은 하얀 구슬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데 투명한 방울이 손에 닿으면 연기로 변해서 사라졌다. 오염되어가는 자연환경을 물방울과 사라지는 연기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 개의 작품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고 보타닉공원을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형광 빛을 발하는 색색 가지 실을 엮어서 동굴처럼 늘어뜨린 작품, 큰 나무에 화려한 레이저 조명을 비추며 음악과 영상이 뒤섞여서 춤을 추는듯한 환상을 만들어내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개성이 뛰어나서 보는 내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언덕(Hills)이라는 작품은 물 아래에서 솟아 나온 하얀 건축물처럼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조각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에서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창조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간혹 환상의 세계를 경험해보거나, 나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서 삶에 윤기를 보태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보다는 스스로 자기를 잃지 않는 자신감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웃는 날도 점차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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