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허구와 기묘한 눈가림의 문화
[칼럼] 허구와 기묘한 눈가림의 문화
  • 이원재<전경기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 승인 2012.01.15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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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0시00분00초.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이 타종됐다. TV는 이 시각 병원에서 막 태어난 ‘임진년 흑룡띠’ 아기와 흐뭇하게 웃고 있는부모의 얼굴을 앞다투어 비추었다.

이 모든 것은 허구(虛構)이다. 갖은 명목을 붙여서 만들어낸 허구들에 의하여 순치(馴致)된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문화는 “2012년00시00분00초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는 캡션(caption:표제, 제목)의 의미를 굳이 천착(穿鑿)하려 하지 않지 않는다.

아니, 그 의미를 따지자고 하면 오히려 의아스러운 눈길을 던질지도 모른다. 2012년00시00분00초. 우리의 <표준시간>으로는 분명히 2012년 새해이다. 그러나 진실은, <서울>의 2012년 새해는 이 시각이 아니다.

이 시각은 <일본>의 새해이다(철자법에 밝은 사람은 일본을 일본발음으로 표기하지 않은데 대하여 시비를 걸겠지만 우선은 그냥 지나간다: 고유명사를 현지발음으로 적어야 한다는 발상도 허구의식이다). 우리나라의 표준시간은 <일본>의 중심부를 지나는 동경135도를 기준으로 태양이 남중하는 시각을 12시로 한다 서울지역은 동경 127도 30분. 1도에 4분의 차이가 생긴다.

<실제시간>으로 따진 <서울>의 새해는 30분 늦은 2012년00시30분00초이다. <표준시간>에 관한한 우리는 식민지시대와 달라진 것이 없다.(식민지시대라는 용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어떻게 표현하던 간에 우리의 표준시간으로 2012년00시00분00초는 <서울>의 새해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시각을 <새해>의 기점으로 알고 있다. 임진년 새해라는 말은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임진년이라는 간지는 이른바 음력(태음태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양력 2012년 1월1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임진년은 양력으로 2012년 1월 23일부터 개시되는 것이다. 2012년00시00분00초에 태어난 아기는 신묘생 토끼띠이다.

그런데도 매스콤에서는 이 시각에 태어난 아기는 임진년 흑룡띠라고소리높이 웨쳐대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는 까닭은 어디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더욱 기묘한 것은 2012년과 임진년을 병렬(竝列)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과 임진년은 문화의 뿌리가 서로 다른 기년(紀年)이다. 2012년 은 서기이며, 임진년은 동방문화의 기년이다. 그런데도 이 두 개의 기년을 나란히 놓고 있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서기와 간지를 함께 쓰는 것은 이른바 세계화에 부응하면서 전통을 살리는 절묘한 선택인가? 아니면 기묘한 눈가림의 문화인가?

문화적 혼란을 혼란으로 여기지 않는 뚝심 때문인가? 2012년과 임진년은 우리의 기년(紀秊)이 아니다. 우리의 기년으로 표기하려면 몇 년전 목청__ 외쳤던 <대한민국>, 줄여서 <대한> 몇 년(한참 계산해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다)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유구한 역사를 표현하고 싶으면 단기4345년으로 하면 될 터인데 대한 연호와 단군연호를 굳이 외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한을 찾고 단기를 찾으면 국수주의자가 되고 수구꼴통이 되고 임진년으로 적으면 전통을 살리는 것으로 되는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 우리의 의식은 이러한 허구를 토대로 하고 있다.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침묵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해야 할 더 큰 일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허구의식, 기묘한 눈가림의 문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 한,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올바른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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