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리뷰] 눈물로 본 이예림 피아노 독주회
[콘서트 리뷰] 눈물로 본 이예림 피아노 독주회
  • 탁계석<본지 논설주간>
  • 승인 2012.01.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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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간곡히 청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초라한 곳이지만 좀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달려간 곳은 강남의 국악고등학교 앞 ‘가곡마을’이란 곳(13일 저녁). 1층은 작은 의상실에 의자가 5개 량 의상 집 손님들을 배려한 커피숍이고 지하는 100석 가량의 이동식 의자를 놓을 수 있는 소극장 연주 홀이다.

이 주인의 옛 공간은 대치동 은마 아파트 건너 켠에 있을 때 들린 적이 있지만, 왜 장소 이동을 했는지 몰랐다. 사정은 이러했다. 지난해 여름 큰 물난리가 나 이곳이 물바다가 되어 아끼던 피아노와 오디오, 악보 등 일체가 물에 잠긴 집 주인인 부부는 망연자실했다.

그 자신이 성악가로 잊혀져가는 우리 가곡을 살리고 보급하기 위해 만든 공간에서 피아노가 물에 둥둥 뜬 광경을 바라 본 심정이 어찌 했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재기를 다짐하고 빚을 내 이 공간을 만들었다.

‘좋은 문화 가꿔나가기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영문도 모르고 찾아간 필자는 저녁에 음악회가 열리는 것조차 몰랐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서기 전에 ‘미리 해보는 연주’라고 했다. ‘이예림 피아노 독주회’의 리허설 콘서트인 셈이다. 가족은 없고 이 음악회를 알고 찾아온 매니아 관객이 전부다.

나는 이예림이 누군지 몰랐지만 그냥 가는 게 인사가 아니어서 기다려 이예림 연주를 보았다. 프로그램 전단지가 독특했다. 피아니스트가 비녀를 꼽고 正裝(정장)한 한복을 입은 컨셉이다. 손엔 굵은 쌍가락지가 끼어져 있었고 옆엔 베토벤, 슈베르트 악보가 놓여 對比(대비)를 이루었다. 직감적으로 획일성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객석엔 모두 6명의 청중이 앉았고 피아니스트는 評者(평자)가 앉은 지도 몰랐다. 일체의 과장 없이 연주가와 直面(직면)한 어둠속의 침묵에 눈초리만 빛나는 듯 했다.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일가친척의 음악예식장으로 변한 왁자지껄한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전혀 달라 마치 오디션을 하는 것 같았다.

미녀대회에 출전하기 전 화장하지 않은 미녀의 얼굴을 훔쳐 본 것이라고나 할까. 맨살의 시멘트 벽에 칠한 검은색 천정은 실험극장 분위기를 연출해 감정을 단순화시키면서 연주가의 몰입을 유도했다. 그러나 스타인웨이가 아닌 피아노는 때때로 느린 페시지에서 삐걱 소리를 냈다.

첫 곡 하이든(소나타 Es- 장조 49)에서 유머러스한 리듬과 장식은 오히려 영양과잉의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표현하지 못할 단순함이어서 작품과 어울리는 듯했다.

이어 베토벤 ‘소나타 제 30번 OP. 109’. 여름동안 빈에서 돌아온 베토벤이 꿀벌처럼 산을 헤매면서 모은 악상을 단숨에 쓴 곡은 아름답지만 매우 연주가 힘든 곡이다.

제1악장 E 장조의 2개의 다른 테마가 교차하면서 환상풍으로 발전하지만 이 피아노에서 톤을 만들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마치 잔디없는 구장에서 축구하는 선수처럼 맹렬했다.

제 2악장. 音(음)의 수는 적지만 음역은 넓고 하모니가 적지만 거친 템포로 역동적으로 끌어가는 악상 표출의 피아노는 강한 울림을 요구는 하는 것에서 피아니스트를 단련시키는 듯 했다. 바퀴 없는 수레를 끌고 달리는 열정은 어쩌면 베토벤이 요구한 技巧(기교)의 난삽함이었는지 모른다.

제 3악장, 폭풍은 사라지고 화사한 빛이 비쳐왔다. 俗世(속세)를 떠나 마음을 비운 베토벤의 심경으로 종교적 정화감이 감도는 프레지아선법(mode phrygian)으로 녹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것은 이 공간의 주인장을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水害(수해)로 모든 걸 잃은 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음악가들의 뒤를 봐주는 ‘무대 뒤의 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피아니스트와 작품, 공간의 입장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눈물이 난 것이다.

이들은 음악가 홍보를 위해 400개나 되는 카페, 블로그에 밤을 새워가며 죽기 살기로 홍보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매니지먼트, 설혹 부모형제라도 못할 지극 정성으로 연주가에게 매달리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 같았다. 한 사람의 음악가라도 더 구하기 위한 이들의 애절함....

이예림의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 (Sonata A 장조 D.959)다. 이 곡 역시 슈베르트가 전 생애를 통해 왜 이토록 슈베르트답지 않은 격렬함의 곡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슈베르트가 죽기 몇 개월 전에 쓴 D 958, 959,960의 連作(연작)이란 사실을 알면 답이 풀린다.

죽음 벼랑 끝 앞에서 솟는 생명의 마지막 절규다. 그러나 이내 다 내려놓고 마는 심경. 그것이 2악장 느린 안단티노에 들어 있다. 고독하고, 쓸쓸하고, 황폐해진 나그네로서의 슈베르트가 눈에 얼씬거린다. 가곡 겨울나그네 손풍금을 타는 걸인의 모습은 결국 슈베르트 자화상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예림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이 음악회를 마련한 것인지. 속으로 울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복을 정장하고, 그래도 끝까지 나는 조선의 절개있는 피아니스트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답이 풀리는 듯했다. 그가 藝高(예고) 당시 세계일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는 전력 때문이 아니라 그는 분명 총명하고 출중한 피아니스트다. 나는 그녀가 글로벌시장을 향해 나가는 K 클래식을 구현할 한국 피아니즘의 材木(재목)감으로 보였다.

가곡마을은 소중한 인연을 맺어 준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이제 그를 키우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다. 젊은 나이에 벼랑 끝을 볼 만큼 눈이 트인 피아니스트라면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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