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놓은 여문 씨에
한 해 소망을 덧 입힌다
옛 생각과 환한 꿈
함께 버무린 이랑마다
파란 깃발 둘러매고
힘차게 솟는 새싹을 그린다
실낱같은 풀포기도
아름드리나무들도
마음껏 뿌리 내리는
어머니 같은 흙 속에
굳은 살 박힌 나의 발도
같이 묻는 날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도 눈이 내리면 한 해가 쉬 지나감도 여실히 느끼게 했다. 일본 지진이다 중국 황사다 하는 세상일은 아량 곳 하지 않고 땅은 올해도 꽁꽁 얼었던 몸을 풀었다. 목련이 오리주둥이 같은 연노란 색을 내 밀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가지 끝으로 노릿 노릿 산수유 꽃망울이 돋았다. 오늘은 진달래가 성급히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가져 온 호미를 찾아 텃밭으로 갔다. 말라버린 채 그냥 서 있던 고추나무와 깨 나무들을 뽑아 후미진 곳에 정중히 쌓았다. 지난해의 폭풍우와 가뭄을 이기며 자라다가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불필요한 육질을 미련 없이 털어버린 것들이었다.
작년에 일어났던 일들과 엣 생각들처럼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들을 모두 걷어 내고 굳은 흙을 호미로 파 뒤집었다. 딱딱한 흙덩이는 맨손으로 잘 부셔서 골고루 폈다. 그러다가 흙 한 줌을 손바닥 위에 가만히 펴 보았다. 흙이었다. 모든 생물들이 언젠가는 이것으로 남게 되는 유적 물이었다. 이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다가 때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 돌아가는 그것이었다.
흙을 잘 고른 다음 이랑을 만든 뒤 가게에서 사 온 열무 씨앗봉지를 뜯었다. 사람의 품속에서는 조금도 꼼짝 않는 씨앗들이다. 그런데 맛도 냄새도 없는 흙속에 뿌리기만하면 영락없이 싹이 돋고 자라게 되는 그 비밀이 언제나 신기했다. 생물학적인 이치를 알고 있다 해도 모든 작용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본래의 원리가 오묘하기만 했다.
농부의 마음으로 정성 것 씨를 뿌리고 조심조심 흙을 덮었다. 캄캄한 흙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발아하다가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이랑을 따라 일 열로 돋을 것이다. 무공해의 이파리를 뾰족이 내미는 화초 같은 귀여운 자태를 처음으로 보게 될 때가 가장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