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학교폭력의 실태조사가 부실했다니
[시론] 학교폭력의 실태조사가 부실했다니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4.24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릇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원인과 경과를 조사하는 것은 실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경과를 알면 어느 정도 해답을 유추해낼 수 있다. 지난 1월18일부터 2월20일까지 3일 동안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초중고생을 상대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전수(全數)조사인데다 학교조직을 통하지 않고 우편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실상을 털어놓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자그만치 25억이라는 예산을 투입한 사업(?)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일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천안의 C고교는 학생 1310명 중 고작 6명만이 설문에 응답했다. 그 중에서 4명이 이 학교에 ‘일진’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이로서 학교폭력서클로 악명을 날리고 있는 일진에 대한 인식비율이 66.7%라고 발표되었다.

교과부의 어처구니없는 일진인식 비율이다. 우리나라에는 요즘 여론조사라는 게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매스컴에서도 많은 돈을 들여 여론을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 비교해 보면 상당수가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통령선거 때도 그랬고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출구여론 조사조차 1위와 2위가 허다하게 바뀌었다.

이것은 응답자만으로 여론을 들여다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표본조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응답자만으로 비율을 처리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응답비율을 좀 높인 다음 통계를 내는 게 순서다. 그런데 이번 교과부의 전수조사는 그 틀에도 끼지 못한다.

앞서 예를 든 1310명 중 답을 한 6명의 비율은 불과 0.45%다. 0.45%가 그 학교의 대변자란 말인가. 이 학교의 설문은 폐기할 대상이다. 전수조사는 표본조사보다 훨씬 더 응답율이 높아야 하고 그래야만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 상당수의 학생들이 답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설문의 내용이 공허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식의 조사로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도 어렵고 자칫 자기 학교의 실태가 상부기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 학교당국이 고의적으로 나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아무리 무기명조사라 해도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겁이나 제대로 답하기 쉽지 않다”고도 한다.

일진출신의 학생조차 “피해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제대로 신고도 못하는 실정인데 이 설문에 응한다고 해서 도움을 받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알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학교폭력은 저만큼 먼 곳에 있는데 교과부는 형식적인 전수조사로 책임을 다한 양하고 학교당국은 쉬쉬하면서 폭력실태를 감추기만 하고 있는 실정을 우리는 이번 조사에서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학료폭력을 예방하려면 아주 구체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한 해 두해에 있었던 일이 아니고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내려온 것이 학교폭력이다. 현대와 같은 학교제도가 없던 시절 서당에서도 폭력과 따돌림이 있었다는 것은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오래된 것인지 알게 한다.

과거에는 단순한 구타와 폭행에 그쳤던 일이 요즘에는 그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가슴에 맺힌 유서를 통해서 우리는 몸서리친다. 폭력과 갈취에 못 이겨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 일종의 성폭행과 성희롱에 수치감으로 목숨을 버린 영주의 중학생, 집단 따돌림의 공포를 겪으며 세상을 혐오한 여고생 등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어째서 근본적으로 자체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할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니까 교과부는 전수조사라는 것을 한 모양이지만 0.45%의 응답율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기피현상 속에서는 아무 곳도 실체에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본란을 통하여 여러 차례 청와대 내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멀리 돌아갈 것 없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학생들은 집단폭력에 공포를 느낀다.

일진이 두드러진 예다. 이에 대해서 학교당국이 학생을 적극적으로 그룹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의무적으로 7~8명 정도를 한 그룹으로 묶는다. 같은 반 학생끼리 자연스럽게 한 동아리가 된다. 그룹스터디도 가능하다. 학력(學力)도 향상될 수 있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이 피해를 입으면 즉시 그룹회의를 열어 학교당국과 이 문제를 상의한다. 그룹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도 생긴다. 폭력학생도 그룹을 상대하기에는 벅차다. 곧 기가 죽는다. 많은 그룹이 생겨 서로 지존(至尊)을 다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善)한 그룹은 많을수록 좋다.

그룹의 배경이 있는 학생들은 폭력피해자가 되었을 때 학교에 신고하기도 편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을 때 학교생활은 한결 명랑해질 수 있다. 학교폭력의 근원적 해결책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