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꼭 100년 된 날…곳곳서 기념행사
`경술국치' 꼭 100년 된 날…곳곳서 기념행사
  • 월드코리안
  • 승인 2010.08.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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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1천여명 대규모 기념식…日 후손들 명성황후 참배도

 29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열린 한일강제병합 100년 행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한 국권 피탈이라는 큰 아픔을 겪은 지 29일로 꼭 100년을 맞았다.

100년 전인 1910년 8월29일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 념겨준다'는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되면서 치욕스런 일제 식민지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어느덧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경술국치의 상처는 우리 민족에게 아직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100년 전 슬픔을 되새기듯 이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린 가운데 한일 후손들은 서울 덕수궁과 탑골공원 등 `역사의 현장'에서 의미있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민간단체들이 힘을 모아 기념 표석을 세우는가 하면 일본의 평화사절단은 경기도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해 참배하고 사죄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방 곳곳에서도 경술국치의 치욕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는 행사들이 잇따랐다.

◇치욕의 현장서 기념행사 = 광복회는 이날 오전 10시 종로구 탑골공원 3.1 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와 공동으로 한일강제병합 100년 행사를 거행했다.

`그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라는 주제로 광복회원과 시민, 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의 약사보고, 광복회장의 개식사, 김양 국가보훈처장의 식사, 결의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양국의 시민단체 117곳이 참여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남산 서울 유스호스텔 앞 공원의 옛 조선통감관저 터에서 표석 제막식을 했다.

이곳은 1906년 이래 일본의 통감관저가 있던 곳으로, 100년 전 이날 대한제국의 이완용 총리대신과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현장이다.

오후 2시에는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강제노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식민지 범죄를 적시하고 해결방안과 구체적 실행계획을 담은 한일시민 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서울 덕수궁에서는 한ㆍ일 양국 지식인이 을사늑약과 강제병합 현장을 차례로 침묵 행진하는 행사를 가졌다.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20여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오전 10시 을사늑약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에 모여 늑약이 이뤄진 방과 고종황제의 집무실, 고종이 각국 정상에게 보낸 친서의 사본 등을 묵묵히 둘러보며 그날의 아픔을 되새겼다.

◇지방서도 행사 잇따라 =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하루 전날인 28일에는 일본 진보성향의 사회단체 회원과 지식인 등 13명으로 구성된 일본 평화사절단이 경기도 여주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해 명성황후 영정 앞에 참배했다.

평화사절단 대표 후가미 세이죠 목사는 "평화사절단이 방문한 한국의 곳곳마다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 여러분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었는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경기도 평택시와 일본 에히메(愛媛)현 지역의 시민역사교류모임인 '평택-에히메 시민단체교류회'는 같은 날 평택시립도서관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기념하는 한일역사교류회를 열었다.

광주에서는 28일 오후 7시 광주시청 야외음악당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국치 100년 기억 친일음악회'가 열려 현제명, 홍난파, 박시춘 등 친일파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기도 했다.

 

부산외고, 부산국제고, 부산국제외고 등 3개교의 `반크' 동아리 소속 고교생 80여명은 29일 오전 부산 중구 남포동 광복로에서 `100년의 간절한 외침-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한일 강제병합 = 1910년 8월29일 공포된 한일 강제병합조약으로 인해 한국이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것을 뜻한다.

일제는 이미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강탈한 데 이어 1910년 5월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3대 통감으로 임명해 본격적인 대한제국 식민지화를 단행했다. 같은 해 8월16일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했으며 8월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됐다.

조약 체결 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저항을 두려워해 발표를 유보하다 8월29일에야 순종으로 하여금 조약을 공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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