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문학으로 풍성해지기
[기고] K-문학으로 풍성해지기
  • 김승복<쿠온출판사 발행인>
  • 승인 2012.05.16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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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으로 일본 서점의 잡지 판매대에는 한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이 실린 월간지, 무크지, 드라마 가이드북 등이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영상만화가 많이 눈에 띈다. 판매량이 높은 여성지에는 동방신기, 장근석, 이병헌, 박시후, 김현중 등의 톱스타들 얼굴이 가득하다.

이런 비주얼북만이 아니다. 드라마 ‘대장금’ ‘이산’ ‘성균관 스캔들’ 등 한국의 사극에 빠진 시청자들이 생겨남에 따라 출간된 ‘조선왕조 해설서’는 베스트셀러 자리에 등극했다. 드라마와 교육을 접목시켜 성공한 케이스로 보인다. ‘드라마 ‘아이리스’로 보는 남북관계‘라는 대학교수의 책도 보인다.

북적이는 한류 코너를 지나 안쪽의 문예 코너로 가보자. 일본 작가들 코너를 지나면 해외 소설, 미국 소설, 유럽 소설, 아시아 소설 코너가 나온다. 중국 소설과 한국 소설 코너를 따로 잡아주는 대형서점이 있긴 하지만 도쿄에서도 서너 곳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소설 코너에 진열된 소설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이곳 또한 한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드라마 원작 소설들이 자리를 잘 잡았다. 일본에서 드라마화되어 인기를 끌었던 조창인의 ‘가시고기’ ‘성균관 스캔들’ ‘동이’ ‘이산’ 등이 쌓여 있으며, 올해 4권이 나온 박경리의 ‘토지’(어린이판)가 눈에 띈다. 정통 순문학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계약 출판되는 일본 문예물은 1000여 종에 가깝다. 비즈니스를 비롯하여 실용서적까지 합치면 한국 출판물의 20% 이상이 일본 것이라는 데이터도 있다. 반면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는 한국 문예물은 연간 평균 10여 종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적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법칙을 들 수 있겠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문학 중 베스트셀러가 된 아이템이 없었다. 잘 팔려야 또 낼 터인데 그런 작품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한국 소설을 기획한 편집자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작품 기획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일본 내에서는 아직 한국문학의 ‘겨울연가’ 또는 ‘배용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문학의 대표선수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언론의 갈채와 함께 시작한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작년 6월에 우리 회사 쿠온에서는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를 스타트시켰다. 현재 4권까지 나왔다. 이 시리즈는 2000년 이후에 발표하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을 우선 검토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자유롭고 사회적인 이념이나 명령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들의 작품을 동시대 일본의 젊은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

50여 작품이 넘는 후보작 가운데 고른 끝에 처음 선보인 작품이 한강의 ‘채식주의자’이다. 펀치가 아주 강한 연작 소설집으로, 한국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발매 두 달 만에 재판을 찍어 큰 용기를 준 작품이다. 재판 발행이 용기를 주었다기보다 미디어(아시히, 요미우리, 마이니치를 비롯한 60여 신문과 각 잡지들)가 보여준 반응이 고마웠다.

사실 이 시리즈를 기획할 때 나는 번역자의 연령대를 염두에 두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주로 60~70대가 많다. 그래서 30대, 40대, 20대인 작가의 작풍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젊은 번역자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 또한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 한국을 피부로 느끼는 번역자를 원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일본인 번역자들을 만났고,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분(김훈아 씨)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둔 것은 세련된 장정이었다. 시리즈로 기획되는 것이니만큼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 한국의 유명 작가라도 일본에서는 아직 무명에 불과해 작가 이름만으로는 판매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장정에 힘을 주자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아트디렉터 요리후지 분페이 씨가 기꺼이 아트 디렉션을 맡아 주었다. 그 결과, 독자도 우리도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쿠온’에서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지 두 달 후, 일본도서관협회에서 도서관 선정도서로 지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의 도서관 선정도서는 연간 총 출판서적 중 15%라고 한다. 선정이 되면 도서관에서 구매를 결정하는데 우선순위에 놓인다는 장점이 있다. 자연히 도서관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더군다나 우리는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기 때문에 1번이 자리를 잡으면 2번, 3번이 자연히 그 옆에 설 터이다. 이는 장정 디자인을 할 때부터 노렸던 점이다. 일부러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옆에 ‘01’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연4~6권씩 출간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하성란의 ‘A’,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언수의 ‘설계자들’이 번역 중이다. 일본 출판계에서 이러한 현대 한국문학 시리즈를 시도하는 곳은 ‘쿠온’이 최초이다. 대단한 체력과 재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나날이 왕성해지는 열정과 함께 일본 내 한국문학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쿠온에서는 2년 이내에 한국문학 팬을 5000명 정도로 만드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많은 팬들과 함께 독서감상문대회, 번역 쿵쿨, 한국문학 독서회,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삶이 풍성해졌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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