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기’청년의 생모는 어디에
[Essay Garden] ‘기’청년의 생모는 어디에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05.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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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이 잔기침이 심해 병원에 갔다. 미국에 살며 최근 한국인 의사를 가정주치의로 만난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샌디에고로 이민 와 살면서 익숙하지 않은 영어회화 때문에 종종 답답하다. 의사는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는 한국말을 대강 알아듣는다. 미국인 의사를 만날 때면 오래전 남편이 암 수술을 할 때처럼 나는 영어 사전을 손에 들고 병원엘 다녔다.

때론 의사선생님이 설명하는 의학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단어를 종이에 써달라고 해서 집에 돌아와 여기저기로 친구들에게 물어서 뜻을 알아내곤 했다. 다행히 우리가 아직 건강한 편이라 웬만하면 이처럼 불편한 영어 때문에도 우리 가족은 병원엘 자주 가지 않는다. 얼마후 친절한 우리 의사선생님 덕분에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다. 미국에서는 환자의 목이 부어오르지 않는 한 항생제를 의사가 환자에게 함부로 주지도 않는다.

가정주치의사를 만나기 전, 먼저 보조간호사는 환자의 혈압, 체온과 몸무게를 측정한다. 난 그 방에 들어갈 때면 흥미롭다. 그 방의 벽 위에 붙어 있는 수십 장의 직원 사진들과 직원인 Jago가 그려 놓은 익살스러운 초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Jago의 솜씨도 놀랍지만 그림 곁에 적어 놓은 말들이 읽고 싶어진다. 다른 보조간호사들도 친절하지만 필리핀 사람인 재고는 늘 예술적인 천재처럼 보인다.

오늘은 나를 담당하는 보조간호사가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푸에르토리코 사람이라며 반갑게 대답했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얼마 전까지 일했던 한국인 동료를 슬픈 얼굴로 그녀가 소개했다.

그러더니 벽에 붙어있는 사진 한 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하얀 모자에 해군 군복을 입은 동양청년의 젊을 때 사진이다. 이 사람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죽었다고 했다. 그는 면허증을 받은 간호사였다. 7년 밖에 일하다니. 이 자리에 올 때가지 어려운 공부를 했을 텐데. Ki라는 청년은 플로리다로 휴가를 간 후, 그곳 호텔에서 2007년에 권총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동료와 찍은 다른 사진을 보는 순간, 안경을 낀 그의 얼굴이 나도 생각났다. 2005년 가을쯤인가, 병원복도에서 만났던 한국인 청년은 나에게 입양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울수 있는 방법을 물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의 직원도 당시 ‘기’청년이 낳은 어머니를 퍽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친구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그의 이메일 주소를 나에게 적어주었나 보다. 30대 후반으로 착하게 보이고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던 그가 나는 부러웠는데. 그 당시, 나는 2006년 1월부터 새로 출간하는 샌디에고 한국인 교포월간지를 편집하는 일로 너무나 분주한 나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시 그를 생각하는 일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 그런 그가 안구가 말라가는 희귀한 병(Sjögren’s syndrome)에 걸려 있었다니! 눈병이 난 그는 봉사들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 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눈이 멀어져 가는 아픔을 몰랐던 것이다.

도대체 어린아이 ‘기’청년을 한국에서 낳은 생모는 무슨 사연으로 자식을 포기했을까? 동물들도 낳은 새끼들을 목숨 바쳐 지킨다. 나는 그런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 때문에 분노가 치솟는다. 아마 오늘도 아이를 낳아 마구 세상에 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왜 그들은 무책임한 사랑 행위를 하는 것인가!

병원직원인 큰 누나 같은 마지 (Margie)아주머니는 갑작스러운 Ki의 자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동료와 함께 모은 조위금을 Sjögren’s Syndrome Foundation으로 보냈다. 돈을 받은 재단에서도 그의 사진이 담긴 편지로 고마움을 전해왔다. 직원들은 그 편지를 병원 벽에 걸어 놓았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지니(Jeannie)’라는 보조간호사는 그의 슬픈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서 눈시울이 계속 글썽거렸다. 오, 열심히 살아온 한 청년의 애통한 짧은 생애.

지난해 별세한 스티브 잡스도 입양아였다. 그를 낳았던 아버지를 생전에 만나기를 거부했던 스티브 잡스의 아픔은 얼마나 컸을까. 세상에는 육체의 병보다 이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날 밤 들었던 이야기로 너무나도 슬퍼서 나도 잠을 내내 이룰 수가 없었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를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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