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이 가는 길목에서
[기고] 봄이 가는 길목에서
  • 이병우<칼럼니스트>
  • 승인 2012.05.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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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나그네가 먼 이역 땅에서 다시 봄을 보낸다. 고국을 떠나 중국 우한에서 살아 온지도 햇수로 5년이 되어 간다. 어찌 보면 5년이란 세월은 이방 땅에서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짧은 시간도 아니다.

다른 의미로 말을 하자면, 한국이라는 고국이 그립기도 하면서도 중국 땅이 어느덧 편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중국에서 맞이해 보는 봄이 이제는 남다르지 않고 좋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방의 봄이 이제 다 지나가고 있다.

중국의 봄과 한국의 봄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추위가 가시면서 먼 땅 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길 가에는 이름 없는 잡초가 생명을 다시 피어 내기도 하고, 농촌의 여기저기에서는 밭 갈고 논 가는 모습이 한국의 봄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런 중국 땅이 그래서 더 친숙하게 다가 온지도 모른다. 고향의 봄이 그립고, 고국의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추억의 단상들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도 그런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중국 땅은 다행히도 이런 나그네의 향수를 달래 주기도 한다.

이런 중국의 봄이 지나 간다. 아무리 더 잡으려 해도 봄은 장강의 물결처럼 말없이 흘러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모르나, 이 봄을 다시 보려면 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건너뛰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만을 살짝 맛보게 하고, 다시 봄이 오면 좋으련만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질 않는다.

돌아보면 지나간 인생의 길목에서도 참고 기다려야 함을 알면서도 매우 조급하게 서두른 순간들이 많이 있었던 듯하다. 어른이 되어 빨리 돈을 벌고 멋있게 살고 싶었던 학창 시절이 있었고,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빨리 시간이 흘러 높은 자리에 앉아서 봉급도 많이 받고 권한도 많아졌으면 하는 조급함이 있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인간은 늘 그런 참지 못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소망하고 꿈을 꿔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은 말이 없이 순서대로 흘러간다. 이런 우리의 애타는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우주 질서에 순종하며 간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그런 순환의 과정을 거쳐야 다시 봄이 온다.

우주 만물에도 이런 질서가 있다는 뜻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그 나름대로 역할과 의미가 있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한 건지도 모른다. 우주는 질서고, 만물의 생동과 죽음 그리고 다시 소생하는 과정도 모두가 질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인간은 이런 우주의 질서를 종종 무시하며 살아간다. 중국의 고전 사상에서 중시하는 중용과 순리의 법칙에 자꾸 역행하려고 한다. 내가 남들 보다 더 가져야 하고, 우리가 남들보다 더 강해야 하고, 더 맛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고, 더 빨리,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남을 건너뛰는 자가 승리하는 세상이고 우수한 인재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일전에 한국의 아들놈에게 “ 안 쓰는 휴대폰 하나 보내라”고 했더니, “아버지, 요즘 휴대폰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한국은 길거리 개도 스마트 폰 들고 다녀요!” 빨라야 되는 세상이고, 더 빨리 가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겼다.

의류 회사는 봄이면 가을 옷을 준비해야 하고, 일반 현명한 소비자는 더운 여름날에 겨울 난방기를 사야 싸게 사는 세상이 되었다. 십 수년 전에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주 여유가 많이 있었다. 중국인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가능한 서두르지 않고 사는 것 같았다. 지금 우한의 모습을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정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많이 변한 듯하다.

시장과 거리 그리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서 오히려 이방의 나그네인 내가 더 여유롭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 그리 바쁘게 사는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을 들고 사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쁜 자기의 모습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나 이렇게 바쁜 사람이야! 너를 만난 건 정말 내가 크게 인심을 쓴 거야!” 이런 뜻이다.

물론 한국인은 더 바쁘게 살아간다. 모처럼 한국에 가도 도통 친구와 친지를 만나기가 쉽질 않다. 전화를 하면 “지금 회의 중이니, 지금은 상황이 그러니 조금 있다 내가 전화 하마” 그러고 나서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가 오질 않는다. 바쁜 와중에 잊어버린 거다.

자존심이 상해서 내가 다시 전화를 할 수는 없다. “그래 너 바쁘게 잘 살아라!” 이런 서운한 마음으로 이내 친구와의 약속을 포기해 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한가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정신적인 여유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삶은 이렇게 바쁘다.

이런 바쁜 세상에서 봄을 느끼고, 다시 봄을 보내며 감상에 젖는 일은 조금은 한가한 생각일 수도 있다. 고국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중국 농촌에서 잠시나마 고향의 봄을 만끽하는 삶도 여전히 한가한 노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아무리 바빠도 순리대로 흘러간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좋은 연락 수단이고 교제 수단이라도 직접 만나서 소주 한 잔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못하다. 봄이 오면 여름을 기다리기 보다는 봄의 그 아름다운 향연을 즐기고 감상 해 보자. 이 봄이 가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봄을 바라보고 감상해 보자는 뜻이다.

이방 땅, 중국 우한에서 나도 봄을 느끼고, 이 봄을 다시 장강 물결에 보낸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순백의 하얀 목련이 그립고 철쭉의 연분홍 꽃이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월은 뒤로 흐르지 않고 앞으로 흐른다는 것이 우주의 질서인 것을.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여름 맞을 준비를 해 본다.

우한의 작고 매운 모기와 전쟁을 치르고,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와 씨름을 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난 시각의 온도가 보통 영상 29도의 날씨에서 잠을 설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아내가 잠이 든 사이에 몰래 에어컨에 켜야 하는 신경전도 벌여야 한다.

냉수 대신에 더운 물과 녹두죽으로 몸을 다스려야 한다는 지혜도 필요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싫다. 그래서인지 5월의 마지막 날이 더 아쉽고 보내기가 싫다. 그래도 보내야 한다.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나는 오늘 5월의 마지막 날을 이방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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