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샌 페드로의 바닷가 문학잔치
[Essay Garden] 샌 페드로의 바닷가 문학잔치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07.18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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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밤에 책을 읽고 글도 쓰고 놀다가 한밤중이 지나야 잠자리에 드는 나는 늦잠 꾸러기다. 이른 아침, 아름다운 한국식 건축의 종각이 우뚝 서 있는 곳을 향해 우리 부부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미국의 경제를 흐르게 하는 혈맥 같은 샌페드로-로스앤 젤러스 항구를 향하여.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비롯하여 세계의 각종 화물선이 오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신문의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정의 종각도 만나러 가는 날이다. 405번 고속도로를 향해 올라가다 샌페드로의 항구가 종점인 110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전날 지도책을 놓고 길을 연구하고 인터넷으로 구글 지도까지 펼쳐 상세한 위치를 알아냈지만, 길의 사인 판을 찾지못했다. 행인에게 물어 길을 돌아 행사가 열리는 더블트리호텔을 찾아갔다.

제25회 해변 문학제의 행사에 한국에서 초청된 두 교수님의 문학 강의가 있어서다. 호텔 입구의 모든 안내자는 라티노들이다. 약 70 여분의 문학 애호가들이 모여있다. 입구에서 회비를 내니 고운 연둣빛 기념 셔츠와 강의교재를 나누어 준다. 정말 수년 만에 문우님들을 보니 반갑다. 서로 모르는 얼굴도 많지만, 인사를 나누며 지성인의 세계를 향해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을 걸어본다. 작년까지 열리던 벤츄라 해변의 행사는 남쪽에서 올라가는 나에게는 너무 먼 장소였다. 한번은 시미벨리에 사는 유경애 씨가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두 번째 참석했는데, 애틀랜타로 이사를 한 고마운 문우가 생각난다.

부경대 영문학 교수이자 수필 평론가인 박양근 교수가 김영중 수필가의 사회로 '재미 문학의 모듈'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사이버 시대에는 누구나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성찰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사색해야 하고, 작가적 인격과 생생한 언어로 이성적인 머리와 아우라라는 감성적 가슴으로 재미 문학을 정착시킬 것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작가는 세상을 향해 언어를 날려 세상을 구하는 환약이 돼야 한다.'며 어떻게 문학인으로 살아갈지 여러 방법으로 방향을 제시했다. 과거를 재현하거나 현실을 복사하지 말고, 유랑과 향수의 이야기로 역사를 기록하는 재미 작가들의 정체성으로 뿌리를 내려 달라고 조언했다.

두번째 강의는 문학평론가이자 충남대의 이형권 교수의 '시의 새로움에 대하여'가 시작되었다. 모친상을 당하여 한국을 오간 상황이었다는데 10페이지에 빼곡히 준비해 온 자료 덕분에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한국의 중견과 젊은 시인들의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김광균, 유형진, 임화, 이기인, 백석, 문태준, 이상, 황지우, 장정일, 유하와 같은 여러 시인의 명 작품을 읽으며 잠시나마 허망한 세상사를 털어내었다. 그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문학은 돈이나 권력으로 해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정말로 인간적인 행위로 늘 새로움을 찾아 나가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의 장르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시의 생명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작가는 익숙한 것들에서 멀리 벗어나야 하기에 외롭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솔직히 나도 사색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니 대인관계는 멀리 갔다. 하지만 가끔 전화나 편지로 좋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내가 사는 집의 힘든 정원 일도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다. 때론 생트집을 잡고, 억지로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헤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서 얻는 게 훨씬 많아서다. 구슬땀을 흘리며 탁해지려는 마음도 맑게 걸러낼 수 있다.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위선자 같은 문인도 많지만 자신을 돌아보며 발전하려고 애쓰는 착한 문인도 많기에 오늘같이 내가 먼 길을 달려간다. 이 행사를 위해 40대와 50대의 여러 문우님이 봉사했다. 해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용하게 꿋꿋이 25회 째 해변문학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김문희 이사장 부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오후에는 원창호 문우의 사회로 약 이십여 문우들의 자작시와 수필 낭송이 야외극장에서 있었다. 한 춤인 입춤이 소개되었고 김영문 소설가의 트럼펫 연주, 만능 재주꾼인 조만철 선생님의 노랫가락 시며. 또 민족학교 회원들의 사물놀이 장구 장단에 박복수 시인과 나도 용기를 내어 더덩실 잠시 춤도 추었다. 주변에 미국인들이 구경하니 우리 문화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야외극장에서 행사가 열렸던 포인트 퍼민 공원의 공중 변소에 들어가 보니 그 동네의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문고리마다 잠금장치가 부서져 조금 으스스 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린 차를 몰고 건너편 동산에 서 있는 우정의 종각으로 갔다. 1976년에 세워진 이 종각을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었다. 태평양의 거센 짠물 바람에도 잘 버티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전 6시에 열어 오후 7시에 철조망 문을 닫는다는 미국인 공원 관리인을 만났다. 한국정부의 경제적 도움이 끊어져 관리소는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여기저기 단청이 벗겨지고 나뭇결 속살이 들어나 있다. 한국정부는 물론 미국의 돈 많은 한인 재벌들도 뭐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서쪽으로 바닷가 부촌인 팔로스버디스에는 한인들도 제법 살고 있다는데.

해변 문학제에 온 문인들

▲ 샌페드로 항구 공원에 있는 우정의 종각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를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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