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아버지의 6.25 일기'
[연재-2]'아버지의 6.25 일기'
  • 서지원(전 텍사스오스틴상공인회장)
  • 승인 2012.07.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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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원 회장
필자 서지원씨는 텍사스 어스틴에서 부동산 컨설팅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향은 진주. 그는 1970년대 후반 자신이 경영하던 화장솔 공장을 위한 오더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정착한 케이스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선친의 전쟁일기를 본지에 공개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기도 하다. 이를 본지에 연재한다.<편집자주>

1950년 7월 26일: 
우리식구는 막 아침 밥을 먹고 있었다. 화물자동차 조합에 근무하는 허 형이 헐래벌덕 달려와서 거리는 피난민으로 꽉 메어 있다고 한다. 나가보니 과연 온 거리는 남자는 메고 여자는 이고 바쁘게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 인해였다. 우리는 설마 하룻밤 사이에 이런 변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한 터라 정신없이 손에들 물건들만 대강 챙겨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옆집 이호우씨 가족과 함께 허 형을 따라 떠나려 할때 외삼촌께서 내려오셨다. 우리는 자골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외삼촌께서는 뒤에 오겠다 하시고 처졌다. 막연한 생각으로 인파에 밀려 말죽고개를 넘을때 트럭 몇대가 군경을 가득 싣고 인파를 헤치고 간다. 어디로 가는건지 도주인지 작전인지 이런속에서도 오정래군이 어떻게 되였는지 그리고 많은 친구들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자골이라는 데로 피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든 친구 김홍범 씨에 관한 사연을 몇자 적어 두려한다. 일제강점기때 재목상을 경영할 무렵 통영 고명준군 소개로 홍범씨를 알게 됐다. 그당시 김형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죽본조라는 토건업의 자재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음으로 양으로 내 사업을 도와 주었고 해방이되자 같은 포부로 진주 토건협회를 거쳐 진주 토건주식회사를 창설하여 가진 환란 속에서 정답게 지내왔었다.

김형은 결코 좌익도 아니었는데 친구들의 근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연유로 해서 보도연맹원이 되었던 것이다. 많은 보도연맹원이 잡혀가고 있을 때 김형은 구 죽본조 건물 안에서 어떤사무를 보고 있었고 2층에는 경남서부지구 전투사령부가 있었다. 김형은 여가만 있으면 와서 전쟁시국의 소식도 들려주곤 했으며 자신의 신변에데해서는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엮시 김형은 2층에 있는 사람들과도 친했으리라 생각하고 별로 의심한 바도 없었다. 그러든 어느날 김형은 C.I.C.에 붙들려 진주 형무소에 수감 되었고 진주가 함락 직전에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처참한 학살을 당하고 만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감쪽 같이 자치를 감추어 죽음을 면했건만 태반 사람들이 이런 전시에 군경을 믿은 타성이 안타까웠든 것이다.

시내에서 자골 까지는 십오리 길밖에는 않되지 만은 수많은 피난민들에게 밀려서 땀과 흙먼지 범벅이되여 꼭 집시의 꼴이 되어 오후 늦게야 허형의 알선으로 할머니와 딸 한분이 있는 초가에 몸을 담게 됐다. 외삼촌께서는 뒤늦게 남자선생 한분과 여선생 한분을 대동하고 오셨다. 대청, 땅바닥에 거적을 깔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별이 총총한 아득하고도 먼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망연한 마음으로 닥쳐올 앞날을 예측도 못하고 비몽 사몽 속으로 헤메고만 있었다.

1950년 7월 27일: 
아침 하늘은 재색 구름이 덮혀 찌푸둥하고 집 잃은 나그네 꼴이되어 산란한 마음 둘 바를 몰라 허형과 같이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로 들어 갔다. 마침 최군과 김군이 와있어서 재목 정리도 대강 할 수 있었다. 밤은 시퍼런 칼날같이 살기가 서려있고 어디서 총성은 고요한 밤을 공포로 몰아간다.

1950년 7월 28일: 
으시시한 불안을 털고 일어나니 밖에는 음산한 비가 내리고 있다. 여고 박선생이 와서 교장선생에게 빨리 연락을 부탁한다. 허형은 우중인데도 고맙게도 박선생의 자전거로 자골로 떠나고 우리는 사기그릇, 부식품 찬기등을 땅에 파묻고 있을 때 외삼촌 께서는 허형과 함께 오셨다. 하오에는 김근수, 김용기 군도 와서 다같이 자골로 떠나면서 외삼촌 옷 가지와 재봉틀 그리고 우리들의 물건을 손수례에다 싣고 그위에다 닭장을 실었다. 닭은 암수놈 그리고 병아리 까지 8마리나 되는 것을 집을 비우고 가면 뭣을 먹고 살수 있을까 가련하기도 하고 기르는 재미도 붙었고 해서 이것들 마져 동반해서 자골로 간 것이다.

1950년 7월 29일: 
진주서 삼십여리 떨어져 있는 북천과 완사 방면을 종일 폭격하고있다. 저녁이되니 완사쪽 상공에 화염이 등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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