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연재-1]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 토론토=송광호 기자
  • 승인 2012.09.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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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기자의 모스크바 특종기

 
1992년 겨울, 특파원 발령 공문 한 장 달랑 손에 쥐고 모스크바에 닿았다. 강원일보 차장으로 지방 5개 신문 공동 러시아 초대 특파원이었다. 한국대사관 공보관실에 발령장을 제출했다. 먼저 나온 타사 특파원들이 11명 있었다. 모두 서울 소재 언론사 소속이었다. 내가 불쑥 나타나니 의아해 했다. ‘조그만 시골구석에서 웬 특파원 파견인가.’ 그런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특파원단에선 3개월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대사관(공보실)측 태도도 어정쩡했다. 러시아 외무부에 기자등록(특파원)협조부터 늦장을 부렸다. 2주가 훌쩍 지나도록 외무부 등록조차 못했다. 특파원에게 보내주는 보도내용도 자주 빠뜨렸다. 고의가 아니라 해도 되풀이 되니 짜증이 났다. 당시는 기사송고에 모두 팩스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러시아는 당시 국제전화선이 상당수 부족했다. 이 때문에 마감시간을 앞두고 팩스 연결이 안 돼 누구든 송고문제로 애를 먹었다.

러시아 은행도 이용할 수 없었다. 서구은행과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 한국서 송금된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주변 서방은행에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기자들은 주로 핀란드 헬싱키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은행을 이용했다. 내 경우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로 송금케 했다. 2,3개월에 한번 토론토로 날아가 돈을 가져다 썼다. 아내는 내 외지고생은 아랑곳없이 “매달 이렇게 돈만 부쳐준다면 아예 모스크바에 그냥 있고 오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농(弄)인지, 진담인지.

▲ 러시아 모스크바 국회의사당(옐친-하스블라토프)
모스크바에 홀로 둥지를 튼 지 수개월이 지났다. 치안상태는 불안했고 인심은 흉흉했다. 그 때문에 나처럼 가족 없이 와 있는 특파원들도 있었다. 또 그해 모스크바는 왜 그리 추웠는지, 겨울에 털모자(샤프카) 없이는 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잠깐 밖에 서성이다보면 맨머리가 꽁꽁 얼어 머리까지 띵했다.

전임자 없는 첫 해외발령지라 할 일이 많았다. 별 준비 없이 현지에 뛰어든 터라 우선 러시아 언어부터 익혀야했다. 대부분 러시아 주민들은 영어를 몰랐다. 길이라도 잃으면 막막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새로 등장한 마피아세력이 전역에서 날뛰었다. 청부살인이 유행하고 혼란한 사회는 언제 안정세를 찾게 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러시아 각처에서 지방 주민들이 수도 모스크바로 몰려들었다. 소련 시절 지방에서 모스크바를 방문하려면 특별통행증(일명 비자)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면서 누구든 쉽게 모스크바행이 가능했다. 모스크바인구는 훌쩍 1천2백만 명을 넘어섰고, 빈부 차는 극과 극으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전전긍긍 살다보니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줄담배를 피웠다. 매일 하루 2곽 정도 피우니 목안이 뜨끔거렸다. 시간이 가도 둔한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의사를 찾아가니 “당장 담배 끊어라. 아니면 (식도)암에 걸릴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때 아예 보따리를 싸고 돌아갈까를 고민했다. 주위환경이 이 정도로 애먹게 할 줄 몰랐다. 한때 미국과 쌍벽을 이루던 대 소련제국 수도 모스크바. 이곳에 와서 애용담배까지 끊어야 된다니. 굳게 맘먹고 금연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8개월 정도 지나니 가까스로 통제가 가능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만 그 기간 중 고생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오죽하면 재떨이까지 버린 마지막 금연날짜를 아직도 기억하랴.

선배기자들은 나를 따뜻이 대해줬다. 당시 KBS 김선기 위원, 경향신문 홍성균 국장 등 고참 특파원들이다. 특히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장행훈 특파원(이사)은 따로 집으로 저녁초대까지 해줬다. 특파원단 고문격인 장 이사는 취재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자주 충고하곤 했다. “기자가 되기 전 먼저 인간부터 되라”고.

모스크바 대사관엔 고교동문 2명(선, 후배 각1명)이 있었다. 한명은 교육관, 한명은 1등서기관이다. 대학보다 고교동문이라 더욱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외로운 처지였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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