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연재-3] 나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 토론토=송광호 기자
  • 승인 2012.09.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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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기자의 모스크바 특종기

 
북한은 94년 하반기부터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베리아 벌목공이나 건설노동자로 뽑혀왔다가 탈출한 일부 탈북자들은 광활한 러시아 땅 곳곳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탈북자수용을 위한 정책이 미처 정립 안 돼 있던 시기다. A와 B는 유엔경로를 통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최초의 탈북자들이 됐다. 로젯 기자와 함께 유엔 난민국에 접수시킨 첫 탈북자 등록은 정부보다 한발 먼저였고, 결국 UN기구를 통하는 밑바탕을 제공한 셈이다. ‘UN난민국을 통하자’는 그녀 아이디어가 결국 아름다운 결실로 끝을 맺었다.

UN난민국 등록 건은 그 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수년 뒤 서울에서 우연히 또 다른 탈북자 C로 인해 상기됐다. 그전엔 C를 만나 본적도 없었다. 그는 신의주 의대를 나온 의사였다. 나를 만나자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두 손을 꼭 잡더니 “덕분에 용케 대한민국에 와서 잘살고 있다”고 인사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초창기 온 탈북자는 대부분 유엔을 통해 왔기에 송 기자 역할을 알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내게 전화한 한인목사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고 했다. “기자 개인이 탈북자를 처음 유엔에 등록시켜 정부 정식통로로 준비시켜준 일은 획기적인 쾌거”라고 추켜세웠다. 환심을 사려 한 인사성 말이겠으나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러시아 기자들과는 교류를 지속적으로 가졌다. 한번 친해지니 자주 술자리도 같이했다. 러시아산 보드카를 즐겨 마셨다. 독주지만 첫 잔은 한 번에 다 들이키는 게 러시언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금연을 단행하던 시기다. 주변에선 “담배를 줄곧 입에 달고 다니더니 어떻게 된 셈이냐”며 놀라워했다.

하루는 러시아 국제방송국의 끄리뜨브 기자와 둘이 술을 마셨다. 그는 전형적인 술꾼이었다. 그래도 직장 내에선 유능한 부장으로 평판 나 있었다. 방송국에 함께 근무하는 한 고려인은 “그는 사람 좋고 능력 있는 인기 높은 부장”이라고 전했다. 서로 러시아, 한국말을 섞어가며 대화를 했다. 그는 평양특파원을 역임했기에 한국말을 조금 알고 있었다.

나는 내내 북한자료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러시아는 한때 절대근접이 불가능했던 철의 장막, 강대국 아니던가. 러시아 정부에서 정식 승인한 외국기자 신분으로 틈나는 대로 우리 자료 발굴을 위해 뛰어다녔다. 외국도서관, 예술부문사진 등 외국물 자료보관국, 심지어 카자흐스탄까지 날아가 찾았다. 알마아타 도서관에서도 우리 옛 신문 등 기록물이 발견되었다.

이날 끄리뜨브 기자는 러시아 주요 군(軍)장성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북한에 진주해 3년간(45년-48년) 북한지역을 통치한 고(故)레베데프 소장(정치군사령관)집 전화번호다. 당시 주북한 소련대표는 스티코브 장군이었으나, 실제 정치실무책임자는 레베데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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