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도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용기가 놀랍다
[칼럼] 독도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용기가 놀랍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2.10.0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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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술'에 취해 동북아 영혼의 고속도로 막아서는 안돼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싸구려 술에 취한 것 같다’는 칼럼을 찾아 읽은 것은 추석 다음날인 10월1일이었다.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의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최고 권위의 신문이다. 이 신문이 독도와 센가쿠섬(중국명 조어도)을 둘러싼 영토 문제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일본 열도가 발칵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갔던 것이다. 칼럼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최근 20년 사이 동아시아에서 달성한 가장 기쁜 성과 중 하나는 ‘문화권’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지금 풍요롭고 안정된 시장으로서 착실히 성숙해가고 있다. 음악•문학•영화•TV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는 자유롭게 등가로 교환되고 많은 이가 즐기고 있는, 참으로 멋진 성과다.

예컨대 한국의 TV드라마가 히트를 쳐 일본 국민은 한국 문화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친근함을 느끼게 됐다.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숫자도 급격히 늘었다. 그것과 교환적이라고나 할까. 한 예로 내가 미국 대학에 있을 당시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내 사무실을 찾아주었다. 그들은 놀랄 정도로 열심히 내 책을 읽어주었고, 우리 사이에는 서로 나눠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바람직한 상황이 생기기까지는 긴 세월이 흘렀다.

이번 센카쿠 열도 문제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 문제가 그 같은 달성을 크게 파괴한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아시아 작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난 두렵다. 국경이란 게 존재하는 이상 아쉽게도 영토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이슈다. 그러나 이는 실무적으로 해결 가능한 사안이다. 또 실무적으로 해결 가능한 사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토 문제가 실무과제를 뛰어넘어 ‘국민감정’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게 되면 그건 출구가 없는 위험한 상황이 된다. 그건 싸구려 술을 마시고 취한 것과 같다. 싸구려 술은 불과 몇 잔에 사람을 취하게 하며, 머리에 피를 솟구치게 한다. 사람들의 목청은 커지고 행동은 조잡하고 폭력적이 된다. 논리는 단순화돼 자기반복적이 된다. 그러나 한바탕 요란하게 소란을 벌인 뒤 밤이 밝으면 나중에 남는 것은 두통뿐이다. 그런 싸구려 술을 폼 잡고 흔들어대며 소란을 부추기는 정치인이나 논객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1930년대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의 기초를 굳건히 한 것도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을 일관되게 그 정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인이나 논객은 신나게 그럴싸한 말을 들이대며 국민을 선동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실제 상처를 입는 건 현장에 서 있는 우리 개인이다.

이렇게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싼 술을 마신 뒤의 취기는 언젠가 깨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왕래하는 길을 막아선 안 된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피가 배어나는 노력을 해 왔던가.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중요한 길”이라고 끝을 맺었다.

아사히신문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실었을까? 싸구려 술에 취해 자기 반복적인 영토 논리로 한중일의 영혼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아니나 다를까 그의 칼럼에는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댓글은 그의 용기를 칭찬하기보다는 비난하는 게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글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용기와 이를 크게 게재한 아사히신문의 결단이 놀랍다.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말이 있다. 다른 의견은 접어두고 같은 의견으로 화합을 추구하자는 뜻이다.우리도 싸구려 술에 취한 듯 동어반복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동북아 영혼의 고속도로를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한류붐으로 ‘리틀명동’의 신화를 쓰고 있는 신오쿠보거리에 일본 우익들이 몰려오도록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한일을 오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주춤거리게 해서도 안된다. 독도문제의 해법은 갈등을 격화시키지 않고, 온건한 목소리가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극단의 주장이 설 땅을 주지 말고, 상식과 양심의 언설이 꽃필 수 있도록 ‘싸구려 술에 취해 주정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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