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세상보기] 팰리세이드 팍의 기림비에 관해서...
[김동석의 세상보기] 팰리세이드 팍의 기림비에 관해서...
  • 김동석<재미시민참여센터>
  • 승인 2012.10.07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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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연방의회가 만장일치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만 3년이 지났음에도 일본 정부는 아무런 변화나 응답이 없었다. 당시 집권당인 자민당이 이것을 막으려다가 실패한 이유로 총리직을 민주당에게 넘겨준 것 말고는 변화가 없었다.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과거사를 정리하는 데에 있어서 일본이 좀 변할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통과시킨 결의안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뉴욕뿐이 아니고 전국의 한인동포들께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마치 일본이 과거사 정리에 있어서 크게 변할 것이란 기대를 준 것이 죄스러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는 결의안이 절반이고 그 절반은 유태인들 스스로의 집요한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가 독일의 변화에는 주목하지만 독일이 그렇게 변하도록 유도해 낸 유태인들의 피나는 노력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사례로부터 ‘결의안을 추진한 시민들이 그냥 있으면 그것은 한낮 종이쪽지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가 궁리 끝에 추진한 일이 기림비의 건립이다.

일단 우리는 버겐 카운티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인턴들에게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교육시키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기림비를 세울 수 있을지 풀뿌리 시민활동에 대해 교육시켰다. 학생들은 서명 용지를 작성하고, 지역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기림비 프로젝트를 설명할 자료들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서명용지를 들고 거리와 쇼핑센터로 나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았다.

한인뿐만 아니라 모든 버겐카운티 주민들에게 접근해서 일본군 위안부가 무엇인가부터 설명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해 증명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흔쾌히 서명해 주었다. 단 2주 사이에 2천명이 넘는 주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학생들은 서명된 청원서를 들고 버겐 카운티 행정장을 만났다. 그리고 준비했던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데니스 맥너니 당시 행정장은 버겐 카운티가 기림비를 세우는데 동의를 했다.

최초 버겐 카운티 법원 앞에 세우고자 했으나, 행정장 오피스 측은 법원의 반대의 부딪쳤다며, 한인이 많은 지역에 세우는 것이 어떠한지 문의해 왔다. 그러면서 팰팍을 건의해 왔다. 이미 로툰도 시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했다는 것이었다. 비록 원하던 곳은 아니지만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팰팍에 세우는 데 동의를 했다.

연방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지 3년만에, 그리고 기림비를 세우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지 1년 6개월 만인 2010년 10월23일 팰팍에 서방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2천명이 넘는 버겐 카운티 주민들이 청원서에 서명을 했다. 버겐 카운티에서 바위를 기증하기로 했고, 기림비의 터는 팰팍 시에서 기증했다. 그리고 기림비에 붙을 동판은 시민들이 모금하여 제작했다. 그야 말로 버겐 카운티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 기림비를 세운 것이었다.

세워질 때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림비를 세우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기림비 주변 조경이 문제였다. 나무도 정리해야 하고, 잔디도 심어야 하는데, 비용이나 시의 행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이만한 역사적인 기림비가 팰팍에 세워진다면 거기의 한인정치인이라면 비용까지도 충분히 감당하겠다고 나설 것을 기대했었다. 당시 필자는 이 기림비가 일 년 후에는 그것이 백만 달러짜리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곤 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기림비를 건립하고 그 주변의 조경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동포 한 분이 팰팍 시 눈치를 보느라 주변 잔디를 심는 데에 꼭 일 년이 걸렸다. 그렇게 시민들의 힘으로 기림비가 소중히 관리되고 있었다.

2010년 기림비를 막 세운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곳을 오가는 한 신문사의 기자가 전화를 했다. 기림비 앞에 꽃 한 다발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는데 다시 새로운 꽃 한 다발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인 동포 한분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왔다가 기림비의 글을 읽었던 것이다. 한국인이면서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스스로 참회하는 표시로 꽃을 갖다가 놓은 것이다. 필자는 그 한인을 찾았다. 처음으로 아주 구체적인 보람을 느꼈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소유자로부터는 그렇게 민감한 반응이 있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분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거기에 그것을 하겠다고 의견을 냈을 때의 정치인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심지어는 ‘왜 구태여 여기다가 그것을 세우려고 하는가?’를 반문한지 불과 일 년 반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세상의 뉴스거리이고 주목을 받게 되니까 오히려 조형물보다 더 큰 꽃다발(물론 누가 보냈다는 글자의 리본이 있는 꽃이다)이 끊이지 않고 있기도 하다.

올해 5월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이 다녀간 후로 거기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너무나 유명해졌다. 물론 동포사회가 주목하게 되었다. 여하튼 지금은 여기저기서 기림비를 세우겠다고 경쟁이다. 어떤 이는 일본이 방해할지 모른다고 슬며시 한국에서 그것을 만들어 온 이도 있다. 어느 지역에선 한인회관에 그것을 세우겠다고 한다. 누구는 자기 집의 정원에 그것을 만들겠다는 문의가 온다. 팰팍의 기림비를 지키겠다고도 경쟁이다. 어느 커뮤니티대학의 한인 학생들은 기림비를 지키겠다는 서명운동을 하기도 한다. 뉴욕을 방문하는 한국의 고위층들에겐 꼭 들려야 하는 명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뉴스거리이고 자랑거리(?)가 되었음은 사실이다.

지난 7월말 어느 날 FOX뉴스의 Ron이라는 프로듀스가 시민참여센터에 전화를 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고 팰팍의 기림비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다. 우리는 마침 우리행사에 초청되어 워싱턴을 방문한 피해자 할머니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Fox뉴스 리포터가 팰팍을 직접 찾아와서 기림비를 소개했다.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Fox뉴스에서 리포터가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그것은 위안부가 아니고 성노예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라는 의견을 냈다.

팰팍의 기림비 건립에 우여곡절이 있었고 이런저런 웃기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인동포들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의미 있게 보존해야 할 책임도 한인동포들에게 있다는 뜻이다. 지금 그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든다.

지난 6월 어느 날이었다. 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주도했던 마이크 혼다 의원이 필자를 호출했다. 팰팍의 기림비가 중앙정치권에서도 이야기 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마이크 혼다 의원과 필자는 이미 형제 같은 관계다. 그가 두 가지를 당부했다. 미국서 ‘일본군위안부’의 문제는 철저하게 미국 시민사회의 문제이고 비정치적인 인권문제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필자에게 결의안을 추진했고 기림비를 만든 이유로 신변에 어떠한 정치적인 불이익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라는 당부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너무나 민감한 사안이 되었으니 연방의회와 다시 긴밀한 관계를 만들자고 결의안 통과 5주년 행사를 연방의사당에서 하라는 권고였다. 그래서 지난 7월26일 뉴욕의 한인들이 대형버스로 1박2일 의사당을 방문했던 것이다. 펠팍의 기림비에 주목한 마이크 혼다 의원의 배려였다. 예비선거에서 스티브 로스맨 의원을 이긴 빌 패스크룰 의원은 행사장에 참가해서 팰팍의 기림비를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했다.

인권문제는 초당적인 문제다.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인권문제에는 시비가 없는 것이 미국 정치권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팰팍의 기림비를 지키는 일은 그것을 파손하려는 어떤 반대론자를 방어하는 일이 아니고 초당적인 인권이슈를 변질시키는 행위를 방어하는 일이다. 팰팍의 기림비는 팰팍 정치인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 행위에서 벗어나야 할 초당적인 기념비다. 펠리사이즈 팍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동시에 인권문제에 민감한 시민들이 인권차원에서 보존해야 할 기념비인 것이다.

팰팍의 기림비를 놓고서 공과를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동포 사회에서 누가 그것을 세웠는데 엉뚱한 이가 인정을 받게 된 것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시민참여센터는 이미 세워진 기림비를 놓고 누가 세웠으며, 누가 큰 일을 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 소중한 한인사회 역량의 소모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이슈에 대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이 더 많은 곳에 기림비를 세우고, 또 계속해서 이 이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해 놓고 만족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들어서 팰팍의 기림비가 특정한 정당의 선거용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선거철에 선거용으로 이용되면 그것은 훼손이다. 최근의 일들을 보면 심히 우려되는 일들이 많았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혹은 이 인권문제가 양 정당의 정치놀음에 끼이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뉴저지 한인들은 이 점에 민감하게 주목해야 한다. 팰팍의 기림비는 큰 차원에서는 미국의 한인들이 인권문제를 제기한 모범 시민이란 것을 인정받게 된 이민역사상 최초의 집단적인 이슈인 것이다. 팰팍에서 이 기림비가 초당적으로 지켜지고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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