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족유(足遊), 목유(目遊), 심유(心遊)와 10월의 행사들
[칼럼] 족유(足遊), 목유(目遊), 심유(心遊)와 10월의 행사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2.10.20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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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은 세계한인의 날과 세계한상대회 행사에 만족했을까?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여행에도 경지가 있다는 것을 최근 한 글을 보고 깨달았다. 조선 후기 이계 홍양호(洪良浩•1724~1802) 선생이 갈파한 내용이다.

“천하를 돌아다니는 방식에는 족유(足遊), 목유(目遊), 심유(心遊)가 있다. 갔다가 돌아와도 제대로 그 허실(虛實)을 살피지 못하면 그냥 돌아다닌, 발로 다닌 데 지나지 않는 족유다. 상대의 허와 실을 제대로 보며 같음(同)과 다름(異)을 살피면 그보다 좋기는 하나 이 또한 눈으로만 살핀 목유다. 도시를 살피고 백성을 관찰해 치(治)와 난(亂)을 보며, 아울러 상대가 성(盛)할지 아니면 쇠(衰)할지를 간파하면 그것이 바로 마음으로 살피는 심유다. 목유도 어려운데 심유를 할 수 있을까.”

이계 선생이 말한 것은 중국을 다녀오는 ‘연행(燕行)’의 경지에 대해서다. 당시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온 지식인들이 숱한 견문기를 썼다. 연행록들이다. 이들을 두고 족목심(足目心)의 잣대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계 선생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를 논리로 극복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곳도 먼 우주에서 바라보면 손안의 손금 한 줄에 불과하다”는 식의 논리로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 지식인 사회에 일침을 놓았다. 그는 한반도의 북방 강역(疆域)에 관해서도 탐구했으며, 실용(實用)과 후생(厚生)의 실학적 관점도 견지했다. 그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연행을 가서 ‘사고전서(四庫全書)’ 제작을 맡은 청나라 당대 최고석학인 기윤과 두터운 우정을 쌓기도 했다.

연행에 대해 족목심의 분석 잣대를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은 이계선생의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여행 가서 둘러보는 데도 이 같은 경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탁월한 지적이다. 아무 생각없이 덜렁덜렁 따라다니는 것과 깊은 생각을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헤아려 짚어내는 여행은 격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잣대를 가령 10월에 열린 세계한인의 날 행사나 세계한상대회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까?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행사의 경지를 평가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엄청 호응을 이끌어낸 행사라면 심유급의 경지로,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면 목유급, 예년과 비슷하게 아무 생각없이 덜렁덜렁 따라한 정도라면 족유급이라는 것이다.  이 잣대로 위의 행사들을 평가하자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선 세계한인의 날에 대해서다. 세계한인의 날은 한인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보고, 미래를 꿈꾸는 행사가 제격일 터이다. 세계의 우리 한인사회의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현재 어떤 현안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부르기 좋은 단체들을 모아서 기념식만 하고 상만 주고 만다면 족유급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세계한상대회는 한상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이다. 전 세계 한인 경제인들이 모국에 모여서 자긍심을 키우고, 비즈니스의 새로운 장을 모색해보는 자리여야 마땅하다. 한상들이 행사를 마치고 거주국으로 되돌아갈 때는 가슴에 모국의 맑은 기(氣)가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 기회도 듬뚝 들고 가야 한다. 세계 각지의 한상들이 서로 등을 두드리고 격려하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한 채 돌아가야 한다. 그런 대회가 세계한상대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과연 올해 세계한인의 날 행사와 세계한상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이들이 올해 대회를 족유 목유 심유로 나눠 평가한다면 어떤 경지로 평가할까? 내년은 올보다 더 나은 대회가 되어야 한다. 재외동포재단의 실무팀들은 더 나은 내년을 위해 지금부터 다시 머리를 싸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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