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연재-1]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2.10.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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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이자 한중수교 20주년의 해다. 하지만 연변은 위기를 맞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급속히 줄어간다.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조선족이 빠진 자리에는 한족들이 들어오고 있다. 연변의 주도인 연길시에서는 매년 1천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조선족 자녀의 탈선도 적지 않다. 자치주 해체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월간중앙>의 요청으로 9월 초 중국 연변 조선족 사회를 취재했다.<편집자주>

▲ 연변찬가 공연
“국가를 주악하고 국기를 게양하겠습니다.”
9월3일, 6만명이 운집한 연길체육장에서 이용희 연변자치주장이 우리말로 개회를 선언했다. 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아 새로 개관한 운동장에서 오성홍기가 오르고 중국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 싫은 자들이여/ 우리의 피와 살로 새 장성을 쌓자/ 중화민족이 위험에 처했다/ 모두 하나 되어 싸우자…” 한때 중국 의용군행진곡이었던 노래.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 기념식은 이 노래와 함께 막이 올랐다. 20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장안순 연변주 당서기가 우리말 통역 없이 중국어로 환영사를 했다. 그는 한족이었다. 연변자치주 당 기관지인 연변일보는 이튿날 환영사를 번역 게재했다.

“60년 전의 오늘 당중앙과 국무원은 따뜻한 관심아래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60년간 당의 민족정책 빛발아래 성당위와 성정부의 정확한 지도하에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간고하게 창업하고 개척, 진취하여 전례 없는 휘황한 성과를 이룩했다.” 이어 축사와 축전이 소개됐다. 쑨정차이 길림성 당서기는 “60년간 연변은 당 민족정책의 찬란한 햇볕을 받으면서 천지개벽의 역사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중국 전국인대와 국무원의 축전도 낭독됐다.

▲ 이용희 주장이 자치주 성립 60주년 기념식 개막선언을 하고 있다
“호금도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의 지도하에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등소평리론과 ‘세가지대표’ 중요사상을 지침으로 과학적 발전관을 깊이 관철 시달하고 사상을 계속 해방하고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사회조화를 추진하며, 장춘 길림 두만강지역 개발개방 선도구를 건설하는 계기를 단단히 파악하고…”

자치주 성립 60주년 기념공연 ‘연변찬가’가 시작된 것은 참다못해 화장실로 가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날 무렵이었다. 2만2천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6개월 연습을 거듭한 공연이었다. 나중에 연회석상에서 만난 김창렬 연길시교육국장은 “한족 학교가 참여하지 않으려 해서 조선족 학교 학생들만 참여했다”고 밝혔다. 90분간 진행된 공연은 규모와 화려함으로 관중을 압도했다. 특히 압권인 것은 대형 카드섹션이었다. 운동장 한 켠을 가득채운 자리에서 1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카드섹션을 벌였다. ‘위대한 조국에 보답하고 조화로운 연변을 건설하자’ ‘륭성하는 연변’ 등 글귀는 물론 천지와 장백폭포, 연변 주화(州花)인 진달래, 백두산 특산인 인삼, 녹용 등 다양한 그림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이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색깔을 맞춰내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기념공연을 총괄 기획한 김학천 연변작가협회 전 주석은 “연변을 전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에게 알리기 위해서 대규모 공연으로 만들었다”면서 “평양 다음, 아시아에서 두 번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나 효과가 컸다. 카드번지기(카드섹션)을 위해 4개월 전부터 북한 전문가 몇 명을 초청해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드섹션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글귀가 있었다. ‘개변통해연세계(開邊通海聯世界)’. ‘변경을 열고 바다를 통과해 세계로 이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귀가 나올 때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울려퍼졌다. ‘개변통해연세계’는 지금 연변자치주의 가장 큰 화두다. 길림성의 대문이 열리면서 연변이 대문의 문고리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 연변일보 앞에서 직은 연길시의 모습
연변은 중국 동북3성의 하나인 길림성에 속한다. 면적은 남한 절반에 못 미치는 4만2천7백평방킬로미터, 인구는 2백20만명이다. 길림성 위로 흑룡강성이 있고, 서쪽으로는 요녕성에 접해있다. 황해에 연해 있는 대련과 단동 같은 항구도시는 모두 요녕성에 속한다. 길림성은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성이다.

두만강은 도문 훈춘을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용정을 지나는 해란강과 연길의 부르하퉁하도 도문 인근에서 합쳐서 두만강으로 합류한다. 하지만 두만강하류에 있는 훈춘은 바다와 맞닿는 지점이 러시아령에 속해 있어 항구도시로 개발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훈춘을 통하는 내륙물류는 북한의 나진항이나 러시아 연해주의 자루비노항을 거쳐 바다로 빠져나간다. 나진항이나 자루비노항은 훈춘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다. 중국으로서는 대문이 막힌 것과 같다. 최근 이 문이 열린 것이다. 중국 측이 북한의 항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이 동북지역에서 처리해야 할 물동량은 연간 1300만톤 규모입니다. 남쪽이나 해외로 가는 물동량은 그간 내륙운송에 맡겨져 왔어요. 이것이 북한의 나진 선봉항을 거쳐 바다로 운송되면, 물류비가 대폭 절감됩니다. 중국이 북한 항구 사용에 목을 멘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윤효춘 코트라 대련무역관장의 말이다. 그는 세계한인무역협회(회장 권병하 말레이시아 헤니권코퍼레이션 대표)가 연길에서 개최한 한중경제인포럼에 초청돼 강연을 했다. 다시 윤 관장의 말이다.

“중국은 2009년 장길도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장춘-길림-도문을 한 틀로 묶어서 발전시킨다는 동북지역 발전플랜이지요. 동북지역은 과거 중공업기지였으나 노후화됐다, 이를 재개발하라, 심천 특구처럼 길림성도 특구를 만들어 발전시키라는 결정을 한 것이지요.” 연길국제전시관에서 만난 박학수 연변자치주 상무국장은 장길도계획의 특징이 선행선시(先行先試)라고 말한다.

“굳이 해석하자면 ‘먼저 해봐라, 그리고 고칠 게 있으면 고쳐라’라는 뜻이지요. 당장은 통일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우선 지역특색에 맞게 계획들을 세워 추진하라는 얘기입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연변주에서는 주의 발전을 위한 교통 에너지 기간시설 등 30개 분야에 대해 세부계획을 세우고 시행에 옮겼다. 주 상무국은 물류를 위한 대외통로 개발이라는 과제를 맡았다고 한다.

“길림성이 발전되지 못하고 주춤거려 온 것은 한마디로 물류 때문입니다. 바다로 이어주는 문이 열려야 하는데, 안 열리면 내륙이잖아요. 이 문을 열자는 게 장길도계획의 요체입니다”

훈춘은 대문(창구)이고, 연길은 전초기지, 장춘과 길림은 후방이라는 얘기였다. 문이 열리면 전초기지가 발전하고, 후방이 이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발전하자는 전략이라고 한다. 장춘은 일기(一汽)로 불리는 중국제일자동차가 있는 자동차생산기지. 길림은 대형석유화학 공업기지다. 훈춘의 문을 열어서 장춘과 길림의 산업을 해외로 연결시킨다는 게 장길도 계획의 본뜻이다.

“훈춘은 항구가 없어요. 러시아나 북한의 항구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들 부두를 어떻게 같이 쓰고, 개발할 것이냐가 핵심이지요.” 길림성을 위시한 동북지역의 물류가 나진항을 떠나 부산항으로 와서 전 세계로 연결될 때 중국 동북지역은 물론 나진선봉의 발전도 빨라진다는 게 연변자치주 상무국 측의 얘기다.

▲ 연길시 야경. 연길대교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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