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믿음직한 치과선생님
[Essay Garden] 믿음직한 치과선생님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10.30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지난 봄 한국에서 한 유명한 치과그룹을 다른 치과의사들이 싼 가격을 트집 잡고 고소했지만, UD치과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었다.

UD치과를 다닌 환자들이 사실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날 라디오를 들으면서 한국에도 나의 미국인 선생님처럼 믿음직한 분들이 있구나 싶어 퍽 상쾌한 아침이었다.

정직하고 정당한 값을 요구하는 치과 의사선생님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에 다녔던 치과들은 가격도 높았지만, 근사한 시설이거나 여러 치과 선생님들이 시끌벅적 일하던 병원들이었다. 약 20년 전, 전화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인연이 된 의사선생님.

고맙게도 치아가 건강한 편인 나는 잇몸을 청소하러 일 년에 두어 번 방문하고 뜻밖의 사고로 치과에 갔다. 병원 건물에는 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 3개, 직원들이 쉬는 방과 화장실이 있다. 실내는 간결하고 장식도 없지만, 벽에 걸린 요세미티 사진은 선생님처럼 날이 갈수록 든든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병원 첫 방문 날에, 매우 놀란 것은 접수창구에서 직원이 종이 공책에 환자진료의 일정을 연필로 적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최신식을 좋아하는 세상이기에 치과에서 보았던 특별한 광경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궁금하여 물어보니 선생님은 당시 이천 달러 이상이나 드는 비용으로 컴퓨터를 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내가 겪어 본 선생님은 성실한 태도 속에 야망과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분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치과 전문의 자격증을 받은 후에 다른 병원에서 5년간 경험을 쌓았다. 개업을 한 후에도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일하여 그의 아버지께 빌린 돈을 갚았다고 했다. 지금도 컴퓨터가 아닌 연필로 환자의 진료예약 날을 적고 있다. 선생님 같은 분 때문에 지우개와 연필 공장이 세상에서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만나기 어려운 이런 작은 기쁨으로 치과에 가는 날은 흐뭇하다.

환자를 위해 직접 스케일링을 해주는 선생님의 겸손함에 또 한 번 놀란다. 냄새나고 수입도 많지 않은 일이기에, 다른 치과 의사들처럼 위생사를 채용하여 맡기면 되는 하찮은 일이 아닌가.

나의 잇몸에 염증이 심하면 선생님은 마취하고 루트커넬 이라는 수술을 정성껏 했다. 의학용어를 잘 몰라 선생님의 설명을 완전히 이해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면 선생님의 부모도 그리스에서 이민 왔기에 이해한다면서 나를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마흔의 나이를 한참 넘기고서 선생님(Dr. Stefanidis)은 나이 많은 여자분과 결혼했지만 예쁜 공주님을 둘이나 낳았다. 한결같이 그는 말수가 적고 표정도 거의 없지만, 이러한 성실한 선생님을 지혜로운 환자들은 알아본다. 아무리 세상이 탁해진다 해도 우리는 양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게 지혜의 눈으로 서로 알아보고 격려하기에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양심적인 진료비를 청구하는 선생님. 의료보험회사를 통해 치료비를 낼 적에는 잘 몰랐는데, 남편의 은퇴 후 현찰을 내는 우리의 형편도 그는 고려해준다. 비양심적인 의사들은, 믿음이 안가는 이유를 대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수익을 올릴 궁리만 하는데 말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정직한 한국인 의사들의 기사를 신문에서 종종 본다.

직원들이 퇴근하면 옛날 타자기로 천천히 또닥 또닥 치던 선생님의 모습은 거룩한 성자 같다. 최근에는 조금 속도가 빨라진 타자기로 누군가 교체해 놓았다. 나도 사용한 적이 있던 것인데 지금은 골동품이 돼버린 타자기다. 총각 시절 선생님은 매일 12시간이 넘게 일하시더니만, 요즈음은 가족이 있어서인지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 같다.

입소문으로 환자들이 계속 찾아오지만, 선생님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응급환자는 주말에도 받는다. 다른 의사 같으면 큰 장소로 병원을 옮기겠다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그러니 이 작은 치과에 어찌 불경기가 찾아온단 말인가.

해마다 나는 선생님께 연하인사 카드와 함께 작은 선물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한다. 우리 집 정원의 과일도 직원들에게 나누곤 했는데 이상 기후 때문에 올해는 하나도 드릴 수가 없었다. 오늘은 내가 쓰는 칼럼에 치과 선생님 이야기를 올리겠으니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치즈!

불교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사람들은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글귀지만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분수보다는 채워넣기 어려운 큰 그릇을 자기 앞에 그려놓고 살아가기에 고달픈 삶을 만들고 있다. 인간미는 줄고 기계적인 세상이지만, 이웃이나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준다.

옛 방식으로도 당당하고 부지런히 행복하게 사시는 나의 치과 선생님 같은 분이 일하고 있는 우리동네와 우리가족은 정말 행운이다. “음, 나 여기서 오래 살아야지!” 


 

 -----------------------------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