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문기회장, 유럽종횡무진기
[기고] 남문기회장, 유럽종횡무진기
  • 월드코리안뉴스
  • 승인 2010.09.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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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베를린...유럽 한인 대표들을 만나서 뭘 했을까

남문기 미주총연 회장
“여행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출발이자 일상의 틀을 벗어나 다른 곳에 있는 또 다른 진지한 생을 경험하는 현장이다.”

16세기 말 중국의 문사 도용은 자신의 여행기 “명료자유”에서 “여행의 본질은 그 어떤 의무에서도 해방된 자유로운 나그네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한가로운 문사처럼 그렇게 너그러운 일탈의 자유, 관조의 여유를 가진 채 여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몇 천 년 동안 역사와 종교와 문화가 칡넝쿨처럼 얽히고설킨 중세의 고도, 모든 사람들이 한번 정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가보고 싶다는 유럽의 도시들을 나는 일과 사명의 보따리를 잔뜩 짊어진 채 여행 비슷한 것을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 조국의 경제개발의 시금석이 되었던 독일의 광산 근로자와 간호사 이후 전 유럽으로 퍼져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며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재 유럽 동포들과 그들의 지도자 한인회장들을 만나러 저는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빡빡한 일정에 쫓겨, 한나라에 하루 이상을 머물 수도 없고 이름난 유적과 문화유산들을 휘둘러보거나 쉴 여유조차 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동포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고 그리고 또 비행기를 타고.. 또 타고...그리고 또 타고…

한 번 정도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보헤미안처럼 일에서 떠나, 돌 하나 벽돌하나에도 역사가 숨 쉰다는 유럽의 관광지를 둘러보고도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해외한민족 협의회의장이라는 무거운 자리가 그저 그 권위를 즐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민족 한겨레를 끌어안아 한 민족 한 겨레로 화합을 하고, 그들의 수고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만 하기에 잠시 여행의 감미로운 감상과 낭만은 잠시 뒤로 접어두기로 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이란 책에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지만 그 일에 대처하는 자세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피곤하고 힘들지만 하루의 시간도 허무하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서 잠시라도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습니다.

김진복 베를린한인회장
한국에 다녀온 지 2 주 만에 독일 베를린 한인회장의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손기정 마라톤 대회에 해외한민족 대표자협의회 의장의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독일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일정이 허락 되는대로 유럽의 나라들을 순방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한인회장들을 만나고 동포들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들도 나눌 생각입니다.

동포들을 만나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과 도전과 꿈을 심어주고도 싶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에도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문제해결을 위해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임시총회를 소집하여 오전부터 저녁까지 마라톤 회의를 하고...

오전 12시에 LA를 출발해서 시카고를 도착하니 저녁 5시가 넘었습니다. 2시간을 시카고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밀려들어온 이메일들을 정리하고 일처리를 하고,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이륙한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요동치듯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창밖에는 오대호의 거대한 호수가 마치 대양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위에서 내가 탄 비행기는 결코 아름답게 날지를 못 하더군요. 바람의 도시라는 시카고, 여유 있게 잡지나 뒤적일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사투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시카고에서 영국 런던까지 8시간, LA에서 중간 경유 두 시간까지 포함하여 도합 13시간이 걸리는 긴 항로.. 한국에서 미국 LA까지 오는데도 10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데, 영국 런던은 결코 미국과 붙어 있는 나라는 아니란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힘들고 피곤했지만 이 여행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의 일부라 자위하며 그 피로마저도 즐기기로 하였습니다.

LA시간으로 밤 1시 30분 런던 도착, LA라면 지금쯤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입니다. 그러나 도착한 런던은 그곳 시간으로 아침 10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는 듯 나는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지론은 간단합니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자는 것이지요. 즉 어두우면 자고 밝으면 일한다는 것입니다. 쉽지요? 2천4백여 년 전 켈트족 이후 정치와 종교와 전쟁의 역사가 휘돌아 흐르던 나라, 의회의 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역사의 도시답게 런던은 중후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습니다.

서병일 영국한인회장
런던에서 건국대 법대 후배인 김동성 재영 한인회 부회장이 마중을 나오고 곧 이어 그와 함께 한인회를 방문하여 해병대 선배인 서병일 재영 한인회장을 만나고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회의를 하고 잠시 시간이 남아 윈저성(Windsor castle) 을 관광했습니다. 버킹검 궁과 함께 런던에서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몇 개 안되는 성중에 하나가 윈저성입니다. 윈저성은 런던 서쪽 약 36km 지점 템즈강변에 위치해 있고, 버킹검 궁전과 함께 900년동안 잉글랜드 왕의 성으로 사용되어 왔고 현재는 여왕의 공식 거주지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퀸 빅토리아가 살았던 곳이고 엘리자베스여왕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랍니다.

영국에서의 왕권제도는 한사람을 높이 살리고 여러 사람이 신봉을 하면서 결국은 서로가 다 잘된다는 서회장님의 설명에 공감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평등하겠지만 그 평등 안에도 반드시 리더는 필요하고 리더를 통해 대표성을 부여하고 그 대표성을 통해 권익을 얻는다는 것, "해외동포 문제도 리더를 만들어서 그 리더로 하여금 일을 하게하고 득은 동포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밤에는 많은 영국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문기 성공학" 강의를 했습니다. 젊은 해병출신들이 유독 많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그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성공학 강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뿐 아니라 런던의 동포들의 미래에 좋은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요청받은 강의였지만 항상 해온 강의이기에 특별한 준비가 없이도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대접해주시고 함께 간 비서진(이용석 부장과 알렉스)의 선물까지 일일이 잊지 않고 챙겨주신 서병일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임남희 프랑스한인회장
기나긴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 깨어 KBS 라디오와 추석에 관한 특집방송을 30분 정도 하고 해저터널을 통해 프랑스로 가기 위해 유로스타 정거장에 도착, 너무도 조급한 기차시간에 픽업해 주신 서회장님께 제대로 인사마저도 못하고 서둘러 떠나야만 했습니다.

”서회장님, 고마왔습니다. 다음에 한국에서 뵙거나 미국에 오시면 잘 섬기겠습니다.” 런던에서 바다 밑을 통해 연결된 해저 터널을 통해 고속전철을 타고 정오가 다 되어 파리에 도착, 91년도에 왔던 파리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복잡하고 여전히 분주해 보이는 파리, 사실상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지만 외부에서 보이는 파리의 풍경은 그 반대로 보이기조차 합니다. 기차역 화장실, 미국처럼 깨끗하고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무료 화장실은 아니었습니다. 물 값보다 비싼 화장실 사용료, 기름 값보다 물 값이 더 비싸다고 하던 것이 이제는 소변으로 버리는 값이 물 값보다 비싸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파리에서 임남희 재불 한인회장을 만나고... 세계에서 신기한 것을 제일 처음 만드는 곳이 파리라고 자랑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리에는 살기 위해서 오는 교민보다는 예술을 배우기 위해 오는 유학생이 많은 곳이라 합니다. 서둘러 파리에서 그와 현안문제를 나누다가 비행기 시간에 쫒기어 후일 이메일을 통해 다시 현안을 의논하기로 하고 서둘러 공항 가는 기차를 타야만 했습니다. 파리의 임남희 한인회장님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파리 Paris Charles de Gaulie 공항을 이륙하여 독일로 출발,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는 순간 에펠탑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역시 역사적인 도시답게 전체적인 도시모습이 웅장했습니다. 파리 중심을 흐르는 아름다운 세느강, 런던에는 템즈강이 있었습니다. 강은 바로 도시의 젖줄입니다. 워싱톤 DC에 포토맥 강이 흐르듯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도 한강이 어머니의 젖줄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을 통해 역사가 흐르고 문화가 꽃피고 민족의 애환이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포들과 유럽의 동포들에게도 같은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서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르지만 세계각지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가슴에는 분명히 하나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혈관 속에 뜨겁게 흐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한민족의 피 입니다.

윤혜숙 룩셈부르크한인회장
오후 5시가 넘어 독일 베를린 도착, 김진복 베를린 한인회장님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대사관으로 가는 길, 우거진 나무들과 거대한 주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이어진 문태영 주독대사 초청만찬, 고급스럽고 웅장한 대사관 건물이 마치 성장한 대한민국의 국력을 반영한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였습니다. 만찬에서 김진복 베를린 한인회장과 함께 김성태국회의원을 비롯하여 한호산 유럽총연회장, 강병구문화원장, 손선홍공사와 김요석영사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체코의 남순동회장님이 동행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도착중입니다.

이제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베를린에서 제 1회로 개최되는 손기정 마라톤 대화와 동상 제막식, 교민 문화행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하루를 더 자고 일요일 12시35분 비행기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한인회장과 면담을 한 후에는 룩셈부르크로 갑니다. 룩셈부르크에서 윤혜숙 룩셈부르크 한인회장과 한인회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후 대사나 관계자 분들과 전, 현직 한인회장과 식사를 같이 할 예정 입니다.

남순동 체코한인회장
하루를 룩셈부르크에서 지낸 후 윤혜숙 회장이 차를 몰고 벨기에로 들어 갈 것입니다. 벨기에에서 이종춘 벨기에 한인회장과 전, 현직 한인회장들과 함께 한인회 미션에 대해서 함께 연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벨기에서 임원과 기관원들과 다과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21일 날 월요일 한인회장님들과 아침을 먹은 후 로마로 날아 갈 것입니다.

남창규 재 이태리 한인회장이 나오실 것이고 현지 기관장들과 한인회 전, 현직 회장들과 함께 석찬을 할 예정입니다. 로마에서는 처음으로 옛 유적지를 둘러 볼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희망사항이지요. 23일 수요일 날은 스페인 마드리드로 출발을 합니다.

고광희 재 스페인 한인회장을 만나 그곳에서 기관장 회의, 교민 간담회를 자긴 후 다음날 오후 2시경에 스페인 마드리드를 떠나 미국 보스턴으로 출발, 같은 날 오후 3시30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도착하자마자 뉴스타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지역한인회장들과 식사도와 미팅도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밤기차를 이용하여 서둘러 뉴욕으로 가서 잘 것입니다. 시간을 세이브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4시간 정도 걸리기에 엠트랙을 이용, 밤 1시경에 숙소에 도착하고 뉴욕에서 다음날 아침 8시에 뉴욕의 뉴스타 직원들과 조찬을 하고 점심은 뉴욕 전, 현직 한인회장들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필라델피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똑 같이 우리 뉴스타 식구들과 교육을 하고 저녁은 한인회 전, 현직 회장들과 식사를 하고 늦은 밤 워싱턴으로 출발, 새벽1-2시에 워싱턴에 도착하면 그날 밤은 푹 쉬고(5시간잠) 그리고 오랜만에 보게 되는 뉴스타인들과 아침 조찬을 하고 골프도 칠 예정입니다. 물론 시간이 허락 한다면…..그리고 저녁은 한인회 전, 현직 회장님들과 하고 밤7시에 비행장으로 이동, LA로 향하면 아마 새벽 1시경에 도착할 것입니다.

고광희 스페인한인회장
그리고 하루반 시간을 내어서 마지막으로 제가 현재 쓰고 있는 책을 마무리해야 출판을 한답니다. “해외동포들의 참정권과 복수국적”이라는 책입니다. 이번 10월22일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출판기념회를 합니다. 준비위원장은 민병철박사(선플총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홍보가 잘되어야 할텐데 하는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루반동안 준비를해서 한국으로 출발을 해야 한답니다. 9월30일 밤에 한국으로 출발(10월1일 0시30분뱅기),10월2일부터는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강행도 마찬가지입니다.항상 그랫는것처럼 3-4시간자면서…2일 날은 코엑스에서 이민투자 박람회에서 강의가 있고 4-5일은 세계 한인의날 행사에 참석해야 하고 7일 오후5시에는 고향인 경북 의성에서 군 축제 전야제에 참석, 8일 날은 평소에 좋아하는 안동문화제탐방을 해야 하고 부모님 묘소에 참배 후 10일날 골프예정(이심 노인회 중앙회장) 11일 오후 1시30분에는 성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미국에 대한 강의가 있으며, 12일 날은 평택대에서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미국적 강의를 할 에정입니다.

14일날은 서울국제부동산 투자박람회 참석할 예정입니다. 다른 급한 일정이 생기지만 않는다면요. 18-21일까지는 대구에서 한상대회에 참석하고 ..

10월22일 날은 특히 메모 좀 부탁드립니다. 이날은 출판기념회를 하는 날입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날이고 미주 한인회 총연적 의미에서 보아도 중요한 날이고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로 보았을때도 중요한 날입니다.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해외동포의 참정권과 복수국적”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 기념회를 할 예정입니다.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초청장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멜 시대에 초청장 같은 것으로 부담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듯 해서 입니다.

기왕에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250만 대표직을 맡고 있고 한민족(해외동포 750만) 대표자 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으니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재외 동포들과 조국,그들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세계는 인간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미래는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힘차게 뛰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기회는 결코 나에게 다가오는 행운이 아닙니다. 내가 걸어가 스스로 따야 하는 과일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끌고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유럽교포신문 조인학 편집장과 김도미니카기자가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서 왔으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갑니다. 많은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행사장으로 이동하여 일제치하에 일장기를 달고 손기정 선수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은 딴지 74년이 지난 오늘 이곳 역사적인 장소에서 제1회 손기정 베를린 마라톤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동상제막식도 같이 했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동상 오른쪽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아 넣었습니다. 이번행사를 위해 손기정 기념재단 이사장이며 국회의원이신 김성태 의원, 주독일대사 문태영 대사, 대회조직위원장 김진복 베를린 한인회 회장 및 각유럽지역 한인회 회장님들과 많은 봉사자들과 마라톤 선수등 약300여명이 참석하여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대하게 치뤄졌습니다.

이곳 독일 이민 1세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광부와 간호사로 시작한 세대입니다. 이번 손기정 마라톤 행사를 통해 이민 1세, 1.5세, 2세들의 화합의 장소 였으며, 문화의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각 부스에 마련된 한국 문화행사와 한국음식은 마라톤에 참가한 외국선수와 가족들에게 한국의 정을 다시한번 느끼게하는 교류의 장소였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선수들은 대부분 각 유럽에서 온 유럽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도 ‘손기정’ 선수의 정신을 이어자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이번대회가 세대와 인류를 하나로 이어가는 축제가 되리라 믿고 저녁은 국제결혼한 한국인과 식사를 했습니다. 아직도수십년을 독일에 살면서 영주권을 가지고 잇다고 왜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아이들과 남편은 독일국적이고 이게 뭐냐면서 분통을 터트린다. 내 아이들에게 한국국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소원이란다.

내가 죽어 버리면 누가 한국을 가겠냐면서 국적이라도 있으면 가고 엄마 고향에도 가 볼수 있지 않느냐고… 투표는 여기도 못하고 저기도 못한다고.. 불만이 대단하였습니다. 이젠 할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남편은 국립대 음대 교수였으며 한국을 상당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당연히 복수국적을 하루 속히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 유럽속에서 남문기 올림-

9월19일 오늘은 암스텔담에 가서 한인회장을 만나고 그리고 륙셈브르크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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