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연재-3]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2.11.0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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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이자 한중수교 20주년의 해다. 하지만 연변은 위기를 맞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급속히 줄어간다.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조선족이 빠진 자리에는 한족들이 들어오고 있다. 연변의 주도인 연길시에서는 매년 1천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조선족 자녀의 탈선도 적지 않다. 자치주 해제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월간중앙의 요청으로 9월 초 중국 연변 조선족 사회를 취재했다.<편집자주>

풍무뀀집은 연길에서 가장 성공한 외식업체의 하나다. 연길에서 시작한 이 꼬치집은 중국 주요도시로 빠르게 퍼지고 있고, 한국에도 진출했다. 김삼 조글로 대표와 박준덕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비서장, 김일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부비서장을 이 뀀집에서 만난 것은 자치주 창립 기념일인 9월3일 저녁이었다. 김삼 대표가 마련한 이 자리에서는 연변 동포사회의 현안들에 대한 문답이 오갔다. 그는 송이버섯 한박스도 따로 준비해 흥을 돋궜다.

▲ 박준덕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비서장

“가장 큰 현안은 뭐니해도 경제입니다. 조선족 동포 가운데 큰 기업이 없습니다. 중앙정부는 연변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연변의 경제수준을 장춘과 동일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혜택을 주지만 이를 받을 수 있는 조선족 기업이 없습니다. 물론 한국기업도 없어요. 한국기업은 이제야 들어오려고 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김삼 대표는 인터넷신문 조선족글로벌네트워크(조글로)를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연변TV신문의 경영권을 받아서 ‘아리랑주간’이라는 지면주간지도 내고 있다. 언론을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서 김삼 대표가 조글로라는 인터넷 언론 공간을 만들다보니 조글로는 연변조선족사회 현안들을 논의하는 논쟁의 장이 돼왔다.

조글로 사이트를 통한 대표적인 논쟁의 하나가 황유복 교수와 조성일 선생의 민족정체성 논쟁이다. 황유복 교수는 북경 중앙민족대 교수. 조성일 선생은 연변조선족문화발전촉진위원회 주석이다. 연변대 조문학부의 김관웅 김호웅 형제교수도 조성일 선생측에 가담해 황유복 교수와 논쟁을 벌였다. 이중성 문제로 시작된 이 논쟁은 황유복 교수가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지금은 잠잠해졌으나, 백두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선족은 중국 국민인 동시에 조선민족입니다. 중국과 한국(조선)에 다 정이 있다. 이것이 이중성이라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황유복 교수는 굳이 이중성이라 할 필요가 없다, 중국 사람이라고 하자는 주장이었고, 조성일선생과 김관웅 김호웅 교수는 이중성이 있다고 떳떳하게 말을 해야지 숨길 필요가 있느냐 하는 논지를 폈습니다.”

▲ 서시장에는 송이철을 맞아 송이가 나왔다

김호웅 교수는 9월1일 연길을 방문한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분부 일행을 맞은 자리에서도 “연변동포는 중국에 시집온 사람과 같다. 시집이 잘 살아야 친정을 도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쟁의 장을 만들었던 김삼 대표는 “중앙정부를 의식해서 민족성을 너무 강조하지 말자고 한 것이나, 이중성이 있다고 한 것이나 큰 차이는 없다”면서 “연변과 북경 사이의 민족연구 권위 논쟁의 성격이 짙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자치주창립 60주년 기념식 주제가를 왜 조선족이 아닌 몽고족 가수가 불러야 했는지도 논란이 일었고, 진달래광장에 ‘연변자치주 성립 노래시비’를 세운 것을 둘러싸고도 논쟁이 붙었습니다. 1952년 자치주 성립을 축하하며 부른 노래인데, ‘모주석 계시는 천안문에 전하세’라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시비를 세우는가 하는 얘기였어요.” 하지만 김대표는 이런 논쟁이 부질없다고 말한다.

“조선족 학교가 줄어들고, 조선족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한국행 등 노무수출로 가정이 깨지고, 자녀들의 교육이나 일탈문제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어요. 이런 얘기는 논하지 않고 가수나 노래비 논쟁이나 해서는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요.”

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이자 한중수교 20주년의 해다. 하지만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 사회로 얘기를 국한하면, 개혁개방과 한중수교 20년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연변은 막다른 골목이었어요. 빠져나갈 데가 없어요. 두만강삼각지는 러시아와 이북, 일본과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입니다. 한국과도 연결되지요. 그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라는 말입니다. 이 지역의 개혁개방에 대해 중앙정부는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먹고 살만한 정도로 두자는….”

남용해 세계한인무역협회 상임집행위원의 말이다. 그는 연길출신의 사진작가다. 강서성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연길을 떠나 산동성 칭다오로 가서 부동산으로 큰 부를 일궜다. 연길시내 고려원식당에서 만난 조선족 기업가협회 박웅걸 상근부회장도 “연변의 최대현안은 인재가 빠져나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변은 전에도 어려웠습니다. 딸을 흑룡강이나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냈지요. 그곳이 살기 나았거든요. 개혁개방이 되면서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인재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연해지역의 발전된 도시로 나가고, 한국으로 갔어요. 조선족이 빠진 자리에는 한족들이 들어왔어요. 조선족이 농사짓던 땅도 한족들이 차지했지요.”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는 연길두만강투자박람회에 참여한 대련의 조선족기업가협회를 초청해 오찬을 마련했다. 대련에서 온 기업인들은 이 행사를 마치고 북한의 나진선봉으로 여행을 떠났다. “연변사람들로 외지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어렵다보니 일찍 외지로 나간 것이지요. 동북지역 중심인 심양은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다보니 성공한 조선족 동포가 적어요.”

연길두만강투자무역박람회에 참여한 이성국 심양 이조신발 대표의 말이다. 개혁개방의 바다에 뛰어들어 황금을 줍는 ‘샤하이(下海)’ 행렬에 연변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는 얘기다. 한중수교도 이 같은 ‘연변탈출’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행이 붐을 이뤘다. 안정된 신분의 공무원들과 교사들까지 한국행 돈벌이 대열에 동참했다.

“조선족은 택시 운전을 안 해요. 한국에 가서 돈 벌어서 연길 좋은 곳에 집을 삽니다. 그리고 상해와 심천, 북경에 투자를 합니다.” 연길 진달래광장으로 데려다준 한족 택시 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온 IT기업인과 연길두만강투자무역박람회가 열리는 진달래광장으로 갈 때였다.

연변은 조선족 동포들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우리말로 택시를 잡기 어렵다. “한국으로 갈 기회가 없는 한족들만 택시를 몰기 때문”이라는 게 택시 기사의 대답이었다. 원래 길림출신으로 1999년 연길에 왔다는 이 택시기사는 “연길은 한국에서 벌어서 보내온 돈으로 발전했다’고 소개했다.

“공장 직원이 15명입니다. 기술자 한사람을 빼놓고 6개월을 넘은 사람이 없어요. 오래 하면 기술도 배우고 장래에 돈도 벌 수 있는데, 제조업 일을 하려하지 않아요.” 연길에서 ‘도토리마을’ 식품가공업을 경영하는 문용철 사장의 얘기다. 그는 동포젊은이들 사이에 식당 종업원을 할지언정 공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해있다고 소개한다. 한국에서 부모가 보내온 돈으로 생활하다보니 직장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중수교 20년은 연변의 조선족 동포사회에 가족 해체의 바람도 몰고 왔다고 실내장식업을 경영하는 김일 사장은 말한다. 그는 조선족 동포로는 드물게 북경대 법학과를 나와 기업경영에 나선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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