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만약 전기가 없다면
[Essay Garden] 만약 전기가 없다면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11.23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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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욕에 사는 친구가 사는 집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며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부부는 당장 자동차를 타고 나가 주유소로 가니 긴 행렬로 다섯 군데를 거쳐서야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있었노라고 푸념을 했다. 그다음에는 식품점에 가서 마른 음식들을 비상으로 사들였다. 언제 어디에서 또 무슨 천지재앙이 닥쳐올지 모르니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병원에 나가 돕는 알뜰한 내조자다. 솜씨도 좋아 요리도 척척 한다. 가끔 친구가 만든 밥상의 음식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와 나의 군침을 돌게 하는 야무진 주부이다. 학창시절도 어렵게 공부했던 똑순이지만, 유학생 남편을 따라와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통해 배운 40여 년의 지혜를 담고 살아가는 여인이다.

매서운 허리케인 샌디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손전등과 라디오, 양초와 건전지를 준비했다. 다행히 친구가 사는 동네는 건물이 부서지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아흐레 동안 거의 무인도 섬에 살았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매일 보고 듣던 세상 소식을 모르니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라디오로 소식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눈까지 내려 옷을 겹겹이 입고 양말을 신고자면서 추위를 달랬단다. 전기가 부족했던 우리 어릴 적 1950년과 60년대의 시절 같았다. 수돗물이라도 나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했다. 전쟁의 폐허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지역의 사람들은 지난 9·11 때처럼 이웃을 돕게 되었다고 한다.

당해보지 않는 우리가 얼마나 그런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달려가고 구호자금을 풀고 한다지만 추억이 무너져버린 삶의 처절함 앞에 아무도 할 말이 없다. 이토록 해마다 심각해져 가는 지구의 온난화 문제를 지금도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지.

나도 두 해 전인가 정전의 경험을 했다. 약 20시간의 정전은 여름날 낮부터 다음날 오전까지였다. 연일 계속되던 무더운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에어컨들을 많이 돌려 변전소의 퓨즈가 나가버려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샌디에고의 날씨는 밤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조용히 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의 음식들이 녹아 상하니 걱정이었다. 친구도 전기가 나간 동안 냉장고에 사둔 음식들을 매일 치우면서 고생을 했다.

지난해도 큰 정전사고가 있었는데 볼일이 있어 차를 타고 나갔다. 길가에 신호등이 멈추어 버리니 자동차가 많이 달리는 큰길은 문제였다. 네 곳에서 순서대로 차를 움직이니(Four Way Stop Rule) 느릿느릿 기어가는 답답한 거리가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교통순경 없이도 규칙을 지키는 질서 있는 거리에 감탄하며 나는 미국 시민정신의 위대함에 존경을 보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빨강 신호등에도 달리던 한국의 무법 운전자들을 떠올린다. 화려한 건축물과 최고의 과학시대를 열고 있는 대한민국의 껍데기 얼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다.
외국의 관광객도 그런 현상을 보고 얼마나 놀라는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선진국 대열에 진정으로 올라설 수 있는 국민이 될까. 외국에 사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곳에서 행동을 잘못하면 한국인 전체의 인상으로 미국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허리케인 샌디로 크게 피해를 보았지만 질서 있게 단결하여 움직이는 소식이다. 내가 미국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동안 보았는데, 이곳의 학교는 도덕 교과서는 없지만 날마다 선생님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설명을 수시로 그때그때 어릴 적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지난해 봄, 일본의 지진으로 여러 개의 원자로가 고장이 나버렸다. 원자로 속에서 흘러나오는 유해물질은 세계인에게 더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바다를 공해 더미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자연이 망하면 우리도 함께 굶어 죽는 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미국의 과학자들은 바다의 생선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지금도 연구 조사 중 이다. 내가 사는 샌디에고 인근의 원자로도 이상이 생겨 지금은 정지 상태이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에 평소에 우리가 전기를 절약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만약, 지진으로 편리한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린 평소에 대비하고 있다. 친구네는 물론 뉴욕과 뉴저지 사람들은 전기가 들어오자 제일 먼저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열고 궁금했던 세상의 소식을 접했다고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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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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