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한인사회를 구성한 사람들
이광규는 1960년에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가톨릭부인회 장학금을 받고 오스트리아로 왔다.
그는 돈암동 성당 가톨릭학생회 회장으로 있을 때 지도신부였던 나상조 신부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1964년에 빈 대학의 지도교수의 권유로 일본학부의 학생들에게 한국사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당시에 강의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전체 교수회의에서 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부결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복사와 모방이기 때문에 중국 문화나 역사를 가르쳐야지 한국사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이광규는 다음 교수회의 때 한국사와 한국어 강의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에 감동을 받은 전체교수단은 빈 대학교에 한국 관련 강의를 허락해주었다.
짧은 2년간의 한국사 강의 동안 그는 학생들에게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한국문화가 중국과 일본문화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1966년 모든 과정을 끝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가 인류학과를 창설했고, 은퇴할 때까지 교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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