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작가 정의신 ‘적도 아래의 맥베스’ 공연 앞두고 방한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 ‘적도 아래의 맥베스’ 공연 앞두고 방한
  • 월드코리안
  • 승인 2010.09.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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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2일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 개막을 앞두고 방한한 재일동포 2세 극작가 정의신. 정씨는 이번 연극에서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징용됐던 한국인 군속의 비극적인 운명을 따스하게 조명한다.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53)의 신작 ‘적도 아래 맥베스’가 한국에서 초연된다. 그동안 재일교포의 삶과 아픔을 녹여낸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정 작가는 이번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용된 한국인을 소재로 삼았다. 그가 꾸준히 제기해온 재일교포 정체성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작가는 “연극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에 휘말려간 사람의 이야기를 남기는 게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재일교포로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어딘가에 끼어서 사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일본군에 징집돼 수용소 감시원이 된 한국인 김춘길의 이야기다. 일본이 전쟁에 패한 직후 싱가포르 창기 형무소에 송환돼 사형선고를 받은 김춘길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세상에 한국인 전범 이야기를 전하는 게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라고 믿는 김춘길은 일본 다큐 프로그램 제작팀의 카메라 앞에 선다.

 
정 작가는 ‘적도 아래의 맥베스’를 쓰기 위해 실제로 강제 징용됐다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실존인물을 만났다. 한국인 B, C급 전범자들의 모임인 동진회 이학래 회장이 작품 속 주인공인 김춘길의 모델이 됐다. 정 작가는 “인생에서 그렇게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경험을 한 분인데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온화하고 평온한 모습이어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인 B, C급 전범자의 처지는 재일교포의 그것과 닮아있다. 한국에서는 대일협력자로 비난받고, 일본에서는 일본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된 사람들이다. 정 작가는 한국인 전범자와 재일교포 모두 “한국과 일본 양쪽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버림받은 존재들”이라고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전범들은 맥베스와 동일시된다. 맥베스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다소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대부분 작품에서 맥베스는 권력에 눈이 먼 사람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 작가는 “일본에서는 ‘마쿠베스’(맥베스의 일본식 발음)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에 휩쓸려가 내버려진 나약한 인간의 이미지가 강하다”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끼어들게 된 전범의 처지가 ‘마쿠베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스로 작품을 통해 한일 관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다. 단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소외받는 사람의 삶을 그대로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길 바란다. 정 작가는 “완전히 잊혔던 사실이 연극을 통해 또 한 번 이야기되고 인식이 새로워지면 좋겠다”면서 “나아가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는 조그마한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 연극 등의 작품활동을 한 정 작가는 여전히 스스로를 주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는데 영화화되고 무대에도 올랐을 뿐입니다. 이걸로 유명해지거나 주류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정 작가는 “특히 젊은 관객이 많이 작품을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을 쓸 때는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실제 경험한 인물을 만나서 썼기 때문이지요. 진도가 안 나갈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관객은 등장인물을 보고 함께 울고 웃기를 바랍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다음 달 2일부터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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