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33] 김장
[아! 대한민국-33] 김장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2.12.1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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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月風高肅曉霜 시월이라 바람세고 새벽서리 매서워져
園中蔬菜盡收藏 울 안팎의 온갖 채소 다 거둬들여놓네
須將旨蓄禦冬乏 김장을 맛있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未有珍羞供日嘗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었던 권근(權近 1352~1409)의 김장(蓄菜)이라는 시다. 겨울날 하루하루 찬을 대기 위해서는 김장을 맛있게 담가야 한다는 것으로 보아 그때 이미 김장이 백성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겠다.

채소가 없는 겨울에 김장은 하루하루의 찬으로 더 없이 요긴한 것이었다. 당시의 김장이 무엇을 어떻게 담그는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김치가 대종을 이루는 오늘날의 김장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우리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오늘날의 김치가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3백년 전 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7세기에 전래된 고추를 넣어 담근 최초의 김치는 배추김치가 아니라 네모지게 썬 무에 고춧가루 국물을 부어 익힌 나박김치였다고 한다. 세로로 쭉쭉 찢어 밥 위에 얹어먹는 배추김치가 밥상머리에 오른 것은 겹겹의 고갱이가 빼곡히 들어찬 결구(結球)배추가 나온 18세기 이후였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양지에 가가(假家)짓고 볏짚에 싸 깊이 묻소.” 조선조 헌종 때인 1843년에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말해주듯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 번에 담는 김장이 이미 우리의 풍속으로 정착했음을 말해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입동(立冬)즈음, 도시의 서민들은 겨우살이 준비에 속을 끓이지 않을 수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김장이나 두둑하게 담가놓으면 그 겨울은 한결 따뜻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김장은 반양식(半糧食)이라 했다.

여인네가 시집 와 김장을 삼십 번 담그면 그 일생이 끝난다고 하였다. 그만큼 김장을 담그는 일이 여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담근 김치를 어디에 묻어 두어야 할지가 고민인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김치냉장고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해를 넘긴 묵은 김치(묵은지)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것도 보관이 용이해지면서 생긴 새로운 음식 풍속도이다. 한때 몇 십 포기씩 담던 김장이 이제는 10포기 남짓으로 줄어들었고 핵가족화와 함께 파는 김치를 사먹는 집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배추를 집에서 소금에 절여 김치를 담그던 것도 이제는 절인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그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 틈에 김치산업이 새로운 식품 산업으로 날로 성장해 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철이면 무와 배추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는 서슬 퍼런 통행금지 시간에도 예외였을 만큼 김장은 중요한 한 해 행사였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우리네 밥상의 내용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쌀 소비만 준 것이 아니라, 식생활의 서구화로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를 통해 겨울에도 푸성귀를 재배할 수 있는 농업기술의 발달로 김장은 점점 축소되거나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땅 속 깊이 묻어 둔 독 안에서 제대로 익은 포기김치와 살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는 아직도 한국인의 구미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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