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깜짝 선물
[Essay Garden] 깜짝 선물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1.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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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표현하고, 남을 괴롭히지 않고, 자기 뜻대로 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미국이라고 감탄하며 살아왔다. 기후가 각각 다른 큰 대륙에 여러 인종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면서도,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나라. 나는 이민자로 때론 고국을 그리워하며, 영어회화가 잘 안되어 억울하고 서러운 날도 많았다. 한국의 고향에서 자랄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뼈가 굵어졌고, 또 집을 떠나 정신적 어른으로 성숙해 가던 때처럼 미국에서 그렇게 긴 세월 흘러갔다.

그런데 점점 선뜩거리게 무서워지는 세상. 코네티컷주의 뉴타운 동네의 샌디 훅 초등학교의 총기사건 소식. 20명의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들과 여섯 분 선생님의 피비린내 나는 교실, 피해자 부모들의 아픔을 상상만 해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동안 미치광이들의 총질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는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하루 종일 나는 머리가 아팠다.

진지한 학문을 배우고 인격을 연마하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고등학교 교정을 향해서도 팡팡. 정치인 연설을 듣는 대형 식품점 앞에서도. 영화를 보는 극장에서도 팡팡. 이번엔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도 무슨 이유인지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향하여 총을 겨누었다. 비행기를 타도 이런 인간들 때문에 온몸을 수색당해야 하고 목숨도 걸어야 하는 세상. 도대체 어디로 다녀야 안심하고 걸어 다니며 숨을 쉴 수 있는 곳일까.

총 판매를 지지하며 종말론을 믿는 이상한 어머니와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는 아들의 관계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런 사람들을 우린 방관만 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하고 반성해 본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자격 미달의 부모들, 그리고 물질 지상주의와 경쟁만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득실거리는 사회분위기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것 같다.

뉴욕타임스의 유명인사 칼럼에도 생명을 살린다며 자동차는 해마다 에어백을 늘이고 엄격한 규제를 하면서도, 살인하는 총기 규제법은 아직도 만들지 못하는 미국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돈벌이에만 눈이 벌건 권총 장사꾼들과 로비의 돈을 받는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미국을 불안 속에 넣고 있다고 외친다.

폭력을 가르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불량한 컴퓨터 게임으로 사람들을 바보 머리로 만드는 엉터리 과학자들. 나만 잘 먹고 배가 부르면 됐다는 이기주의자들. 남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뻔뻔한 철면피들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휘젓는 세상. 자기 의사와 다르거나 화가 나면 ‘자신이 죽어버리겠다. 또는 남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 달라이라마 스님의 ‘용서’나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유명한 저서가 잊혀지는 안타까운 세상. 그래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총을 함부로 팔지 않아서 안전한 나라에 손꼽히니 천만다행이다.

지난 11월, 재미교포 비정의 한국아버지 윤대권 씨는 재판 6년 만에 종신형을 받았다.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감형을 받은 것 같다. 그는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부부간 문제를 화풀이로 어린 자식들을 차 안에 가두어 화상으로 죽인 잔인한 살인자였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연이어 무고한 희생자들의 놀라운 소식을 들으면서 애통한 날이었는데, 대문 앞에 깜짝 선물이 놓여 있다. 누가 놓고 간 것일까. 초인종 소리가 없어 우리 집 개 짖는 소리에도 그냥 지나쳤다. 예쁜 쇼핑백 속에는 얼마 전 내가 잡채를 만들어 보냈던 빈 그릇과 함께 선물이 들어있었다.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고상한 카드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나를 놀라게 한 주인공은 작은 시의 부시장이며 테니스 친구인 이반이었다. 놓고 간 카드를 한 장 꺼내 당장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또 오래 기억하고 싶어 현관에 나뭇잎처럼 떨어진 보겐빌라 꽃잎을 배경으로 놓고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가 지나갈 적마다 바람을 일으켜 봉투가 넘어져서 사진기 단추를 여러 번 눌렀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무서운 총으로 연약한 아이들을 죽이는 인간들이 증오스럽기조차 한 나날이다. 갑작스럽게 당한 슬픈 유가족들에게 무슨 깜짝 선물로 작은 희망을 붙들어줄 방법은 없을까.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을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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