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 소식을 접한 필자의 뇌리에 ‘오일경조(五日京兆)’라는 중국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고대 중국어에서 ‘경조’는 수도권을 의미하고 지금의 ‘서울 광역시’라는 뜻과 비슷하다. ‘경조윤(尹)’은 지금의 ‘서울시장’과 비슷한 관직이다. ‘오일경조’에서 ‘경조’는 ‘경조윤’의 준말이며 서울시장을 닷새밖에 못한다는 말이다. 국무총리는 옛날 재상에 해당되므로 필자는 이번에 일어난 김용준 사건에 ‘오일재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일경조’ 사자성어의 출처는 <한서·장창전(漢書張敞傳)>에 나오는 장고(掌故)이다. 장창은 한무제(漢武帝) 때에 경조윤을 하였으며 비상히 총명하였다. 그는 집에서 항상 부인의 눈썹을 그려줬으며 이 소문이 항간에까지 떠돌자 황제가 파직시키려 하였다. 고급관료의 체통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장창은 황제에게 아뢰었다: “소인이 알기로는 부부간의 관계에는 눈썹을 그려주는 것보다 더 추잡한 일이 많을 건데요.” 이 말을 들은 한무제는 말문이 막혔으며 파직처분을 취소하였다.
이렇듯 총명한 장창이 양운(楊惲)의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을 위험에 임박했다. 장창은 당할 봉변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 서순(絮舜)으로 하여금 양운 사건을 담당하게 했다. 그런데 서순은 시간을 끌며 사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아예 집에 가 두문불출하였다. 동료들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며 권하니 “장창은 이제 오일경조가 뻔한데 내가 왜 그를 따르겠나”라며 동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장창은 재빨리 손 써 서순을 처형해버렸다.
이 장고를 중국 관료들은 2천여 년 간 내려오며 기억하고 있다. ‘오일경조’는 ‘임직 시간이 짧거나 곧 관직을 떠나다’ 뜻의 사자성어로 고착됐다. 이 사자성어는 경우에 따라 ‘며칠 안 남았으니 그놈을 따르지 말자’, 또는 ‘며칠 안 남았지만 서둘러 그놈의 비위에 거슬리다가 손해 보지 말자’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행정부의 관료는 너무 빈번하게 바뀌는 것이 흠이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의 20년에 바뀐 총리가 16명이나 된다. 국무총리로 정식 임명되어 직무를 행사한 국무총리만 16명이며 임명하였다가 인사청문회에서 탈락한 사람까지 합치면 퍽 더 많다. 많이는 ‘오일재상’, ‘오일경조’이다. 한국은 왜 대통령 외에는 임기가 없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은 건국 63년에 국무총리를 모두 6번 밖에 바꾸지 않았다(주은래1949~1976,1. 화국봉1976,2~1980,9. 조자양1980,9~1987,11. 이붕1987,11~1998,3. 주용기1998,3~2003,3. 온가보2003,3~). 주은래의 종신제 외에는 대체로 임기가 5～10년인데 괜찮은 듯하다.
국회의 인사청문회 제도를 실행한 후 한국의 고위층 관료는 국무총리, 장차관을 포함하여 오일재상, 오일경조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 많다. 전 이화여대 총장 장상 여사가 국무총리로 발탁됐다가 20여일 만에 국회에서 그 인준이 부결됐다. 국무총리를 가장 짧게 한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했는데 이번에는 발탁 된지 5일 만에 사퇴한 새 기록이 생겼다. 모두 정식 총리를 하루도 해보지 못한 낙태아이이다.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지난날 시원치 않던 사람이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지난날 훌륭한 사람이 지금은 시원치 않은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훌륭하나, 훌륭하지 않나도 능력의 표준과 도덕의 표준이 있다. 보통 능력이 강할수록 도덕상 하자가 있을 가능성이 많으며 무능하고 평용(平庸)한 사람일수록 도덕상 문제없을 확률이 높다. 국가의 고위층 관료는 도덕도 중요하지만 우선 능력이 뛰어나야 적임자이다.
한 사람의 지난날 한때의 일로 그의 현재 나아가서는 일생을 부정하는 것은 발전의 안목이 없는 처사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20년 전의 일이라면 형사범만 아니면 추궁하지 말고 10년~20년의 일은 다만 참조하고 그의 최근 10년의 일만 중점적으로 추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없다고 하였는데 한국의 인사제도가 너무 각박한 것이 아닌지, 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관료의 나라로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작권자 © 월드코리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