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래도, 그림도 국가보훈처가 검열하나
[시론] 노래도, 그림도 국가보훈처가 검열하나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3.05.11 0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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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서 애쓴 분들을 포상하고 추모하는 일을 하는 부처가 국가보훈처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그게 아니다. 국가보훈처가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발령되었을 때나 하는 사전 검열을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보훈처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군 출신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멀쩡한 민간정부에서 이 또한 무슨 망발인지 헷갈린다. 그들은 아직도 군사독재 시절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헌법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감히 이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할 수 없다.

더구나 노래나 그림은 원초적으로 인간의 본능처럼 저절로 우러나오는 몸짓의 표현이다. 요즘 싸이의 노래와 춤은 세계를 휩쓸며 최고의 한류(韓流)로 빛을 발한다. 그의 말춤이나 시건방춤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음란성이 있다고 평하기도 하고 너무 평범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베트남 중국 아프리카 등등 어디에서도 싸이의 노래와 춤은 환영받는다. 음란성을 운위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입을 다물고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이 유행을 눈 여겨 본다. 노래와 춤이란 원래 절대 권력자를 놀리는 해학이 깃들기도 하고, 진시황을 노리는 대연회의 칼춤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양반에게 눌려 지내던 상인 천민들이 탈바가지를 쓰고 춤을 추면서 어릿광대 역할을 했지만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풍자와 익살은 지금도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말썽을 자초한 5.18행사와 관련한 노래와 그림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제동은 참으로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한다.

첫 번째 논란은 서울보훈청에서 만들어냈다. 5.18 서울행사준비위원회에서는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미술 백일장을 열어 그들의 작품 중에서 우수작을 표창하기로 했다. 물론 관련 전문가의 심사는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여기서 뽑힌 작품에 대해서 서울보훈청이 시상을 거부했다. 작품의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나는 당선된 작품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전문 심시위원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우수작으로 선발되었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문가도 아닌 일개 공무원 집단에서 작품에 대한 왈가왈부를 한다는 것은 권한 밖의 일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심사는 보훈처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면 몰라도 모든 행사를 5.18단체 자율에 맡긴 처지에 새삼스럽게 감독기능을 되살리려고 우수작 선정을 거부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그림의 예술성을 트집 잡는다면 또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긁어 부스럼을 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국가보훈처 본부가 일으킨 노래문제다.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에서 시작되었고 많은 희생자를 배출한 것도 광주이기 때문에 민주인사의 묘소는 망월동에 있다. 국립민주묘지로 승격하여 해마다 5.18기념식이 열린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대신하는데 이번 행사에 박근혜대통령 참석여부는 미지수다. 문제는 해마다 전체 참석자가 불러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보훈처에서 금지한데서 시끄러워졌다. 이 노래가 근자에 좌파 종북세력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마치 주제곡처럼 불려지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에 시민군이 불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2년이나 지난 후 ‘82년2월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윤상원과 들불야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리는 노래로 불려진 노래다.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의 중간대목을 황석영이 개사하여 김종열이 곡을 붙인 노래다. 가사의 내용은 어디를 봐도 과격한 대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노래를 퇴출시키려는 국가보훈처의 지침에 대해서 국회 강기정의원은 본회의장 발언을 하다말고 직접 노래를 부르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바꾸겠다고 시도했다가 호된 경을 치르고 물러난 일이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보훈처가 끈질긴 뒷심으로 또다시 문제를 노출시킨 것은 무슨 심사에서였을까. 프랑스는 대혁명 때 혁명군이 불렀던 ‘라 마르세에즈’를 국가(國歌)로 부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것도 아닌데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할 이유가 나변에 있는가. 자칫 좋은 노래를 좌파의 전유물(專有物)로 헌상하겠다는 이적행위를 할 셈인가. ‘아침 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국민의 가슴을 파고드는 아련한 감상이 그나마 한 가닥 위로를 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아무리 불러도 싫증나지 않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자랑에서도 불러보자! 우리의 국민곡(國民曲)으로 승화시키자! 이것이 산자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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