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강남 구룡마을의 분노와 희망
[시론] 강남 구룡마을의 분노와 희망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3.07.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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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와 춤이 세상을 한번 뒤집었다. 싸이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한물간 가수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가수로서보다 군대를 두 번 갔다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외모나 체격부터 비호감 스타일인데다 병역에 예민한 국민감정과 더불어 한번 다녀온 군대를 두 번이나 가야했던 저간의 사정은 그에게 가수로서 성장할 호기를 놓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연히 육해공군과 미국 군악대 경연대회를 보러갔다가 게스트로 출연한 싸이의 무대를 난생 처음으로 접했다. 깜짝 놀랐다. 무대를 휘어잡고 관중을 붙들어 매는 그의 노래와 춤은 가히 대형가수로서의 면목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숨도 쉴 사이 없이 청중을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싸이의 실력은 얼마 되지 않아 ‘강남 스타일’로 꽃을 피웠다.

강남이라는 도시는 서울에서도 부자들이 많기로 소문났다. 재벌과 장차관, 국회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는 동네가 강남이다. 한 때 “아직도 강북에 살고 있어?”하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조금만 형편이 트이면 강남으로 이사 갔다. 입시학원과 8학군도 수험생을 가진 학부모들의 꿈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부의 편중화현상이라는 나쁜 인식까지도 심어줄 정도로 강남 편중 현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서초구와 송파구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남’아라는 이름에 내맡긴 채 모두 강남으로 통한다. 이 강남구에 이름부터 그럴싸한 구룡마을이 있다. 한 때 구룡(九龍) 마을이라고 하면 많은 시민들이 부정적인 눈으로 흘겨봤다. 광대한 남의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무허가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일반시민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엄연히 토지주들이 있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살 집을 지은 것이다. 25년 전만해도 구룡 일대는 길도, 집도, 아파트도 없는 땅이었다. 돌과 나무 그리고 잡초로 뒤덮인 이 땅은 토지주들 조차 가꾸지 않고 내버려둔 노는 땅이었을 뿐이다. 여기에 집도 절도 없는 무주택 서민들이 한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 본격적인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사람이 살다보니 전기와 수도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절대 빈곤층이 모여 살게 되었으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따뜻한 이웃 정은 시골마을에 버금한다. 이들이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살았지만 토지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구청을 괴롭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선 거처를 마련하고 막노동을 하면서 조금 여유가 생기면 월세라도 얻어나갔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구룡마을은 그들에게 일종의 긴급피난지였던 셈이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마을 주변은 엄청나게 변화했다. 신도시 개발로 번듯하게 뚫린 새 길, 멋지게 올라간 빌딩과 아파트 등 강남지역은 서울에서도 가장 도시계획이 잘 된 지역으로 변모했다. 땅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초조해진 건 토지주들이다. 꼬박꼬박 재산세를 물면서도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으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게다가 구룡마을이 개발되면 엄청난 이권이 쏟아진다는 풍문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블로크 집을 지었다. 중고 냉장고를 들여 놓고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도 전시했다. 이 바람에 서울 신당동 중고품 가게는 불이 났다. 어차피 사용할 물건이 아니니 형태만 갖추면 방 한 칸을 차지한다.

실제로 거주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동사무소의 실사가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이들 가짜 거주민들이 자기 집(?)에 들어 앉아 있는 것이다. 투기꾼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토지주와 거주민 사이에는 갈등과 충돌이 그칠 날이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마을에서는 걸핏하면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라는 악성소문도 퍼졌다.
 
한 번 불이 나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옥구조라 수십 채가 잿더미로 변했다. 그들은 서로 미워하고 사갈시하면서 20여년을 싸웠다. 평행선을 긋던 그들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타협으로 구룡마을 공동 민영개발에 합의한 것은 사태의 대반전(大反轉)이다. 거주민들이 힘을 합쳐 투기꾼들이 지은 1000세대가 넘는 공가(空家)를 일소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이 한데 뭉치는 데는 ‘범시민 사회단체연합’(상임공동대표 이갑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범사련’은 30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조직이다. 이들은 지난 7월26일 구룡마을 자치회관 앞에서 약 30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살기 좋은 구룡마을 가꾸기 운동’ 창립대회를 주최했다. 성기종, 김관진, 김용호, 박찬성, 김정수, 서성철, 김갑재, 최현정, 원인호, 임헌조 등 다수의 시민단체대표들이 동참한 것은 물론이다.

이 자리에서는 토지주 대표들과 거주민 대표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상대방의 희생과 인내를 상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 모처럼 화합과 화해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상징이다. 박근혜정부가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구룡마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나는 범사련 고문자격으로 대회사를 했다.

“이제 개발의 공은 구청으로 넘어갔다. 수십 년 갈등을 해소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행복한 내일을 향해 굳센 발걸음을 내딛도록 민영개발을 빠른 시일 내에 성취시켜야 한다. 이것이 구청이 못했던 일을 성취한 토지주와 거주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분노를 떨쳐버린 구룡마을의 희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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