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52] 배흘림기둥
[아! 대한민국-52] 배흘림기둥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3.11.0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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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에 틀림없다.”

미술사학의 개척자 최순우 선생이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찬한 글의 앞부분이다. 그 분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제목의 고미술 에세이집을 낸 바 있는데, 아마도 배흘림기둥이라는 건축용어는 이 책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 사찰 경내뿐이랴. 배흘림기둥에 기대서거나, 또는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곳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서 펼쳐진 능선들은 가히 산의 파도(山波)라 할만하다. 산의 파도는 오직 여기서만 볼 수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그 자체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밖을 내다보는 맛 또한 어디다 비길 데가 없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배흘림기둥’이란 기둥의 중간 부분의 두께는 굵고, 위나 아래의 두께는 가늘게 만든 것을 우리 전통 건축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배가 퉁퉁하게 부풀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건축술은 서양에서도 보인다.

BC438년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을 지을 때, 이 건축물의 원기둥 중간 부분은 약간 부풀게 하고, 위와 아래는 중간 부분보다 약간 가늘게 하였다. 일직선 기둥은 멀리서 보면 가운데가 좁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런 착시현상을 완화하기 위하여 기둥의 배 부분을 부풀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둥의 안정감을 유지시키게 된다. 이러한 고대 건축의 양식을 ‘엔타시스’라고 한다.

서양의 파르테논 신전에 견주어지는 한국의 건축물이 조선시대 지어진 종묘다. 이 종묘를 대표하는 건물인 정전(正殿)도 파르테논 신전처럼 착시현상을 줄이기 위해 특별한 건축기술을 동원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배흘림기둥이다. 종묘에서는 처마의 착시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귀솟음’기법까지 썼다.

가로로 긴 구조로 된 종묘는 일정한 높이로 기둥을 수평으로 나열했을 때 양 끝이 처져 보인다. 그래서 양끝으로 갈수록 기둥의 길이를 점점 높게 만들었다. 멀리서 봐도 양쪽 끝이 처져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귀솟음’이라고 할 때 귀는 양쪽 끝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고려시대 세워진 부석사 무량수전은 물론 수덕사 대웅전을 비롯해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 등 삼국시대에 세워진 여러 석탑들에서도 이런 기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흘림기둥’을 건축기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민간 건축에서는 휘어졌으면 휘어진 대로 나무형태를 그대로 살려 기둥이나 대들보에 쓴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고,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우리 민족의 감성과 정서에 맞춘 것이 ‘배흘림기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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