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34] 중국의 기독교(하)
[삼강만평(三江漫評)-34] 중국의 기독교(하)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3.1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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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교안 등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기독교는 중국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가 외국인을 배척하고 중국인 스스로 운영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 종교의 삼자원칙(자립, 자양, 자전)은 이런 역사 과정에 기인된 것이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와 기여한 공로 역시 크다. 우선은 중국인에게 새로운 신앙을 심어주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중국에는 불교와 도교 두 가지 종교뿐이었다.(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들어오며 한 가지 종교가 불어났으므로 중국인의 종교 신앙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하였다. 특히 기독교의 박애, 평등, 자유의 사상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다음은 중국에 서방문명을 전파하였다. 서학동점이 초창기에는 주요하게 외국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선교사들은 천문학, 시계 등 서방의 자연과학성과를 중국에 보급시켰다. 과학적 의학의 병원도 많이 세워주었다. 서양의 유화를 중국에 전파하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화가가 이탈리아인 Giuseppe Castiglieone인데 그가 1714년 중국에 와서 1766년 사망할 때까지 52년간 선교하며 그린 유화는 부지기수이며 지금 다 자금성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상과 공자에 대한 제사를 엄금하였고 다른 하나는 수녀가 동정(시집가지 않음)을 지키는 것이다. 기독교는 천연(하늘을 섬김) 문화이고 유교는 혈연(조상을 섬김) 문화이다. 유교문화에서 인생 성과의 최고 경지는 조상을 빛내고 후손에게 음복을 주는 것인데 기독교는 하느님만 인정하고 혈연과 조상, 후손을 무시한다. 유교문화에서는 후손을 만들지 못하면 최대의 불효인데 기독교 수녀는 아예 시집도 안 가니 이는 인간으로서 전혀 못할 짓인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뿌리를 쉽게 내릴 수 없는 세 번째 원인은 중공정부 수립이후에는 유물론을 전제로 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대립되기 때문이다. 좌경 노선을 실행한 1949~1978년 30년간 더욱 이러하였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원인은 상기 두 가지 원인에 비하면 부차적인원인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종교정책은 점점 느슨해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중국 전역에서 평균 하루에 새로운 기독교교회 하나씩 생기는 정도였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경계를 추호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교인이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은 막지 않았지만 그들의 자식이 교회로 가는 것은 막았다. 이를테면 학교 담임선생이 찾아가서 담화하여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설득시키는 등이 그것이다. 외국 신직인원(神職人員들)의 활동을 엄밀히 감시하였고 그들이 중국교회의 교단에 올라가 설교하는 것은 더욱 엄금하였다.

1999년 법륜공사건은 중국의 종교정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중대한 사건이다. 장춘인 이홍지는 군부대문공단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제대한 사람이다. 이럭저럭 장사를 해 보았는데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태국에 시집간 누이의 집에 방문 가서 몇 달 있다가 돌아와 법륜공이라는 종교를 창조하였으며 해당종교의 교주로 둔갑했다.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 주요 수련 방법인데 법륜공을 수련하면 약을 먹지 않아도 만병통치된다고 선전하였다.

때는 중국이 무료의료를 대거 폐지하는 시기였으므로 허다한 사람이 법륜공에 말려들었다. 개중에는 병이 나은 사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은 약물 치료를 안 하다가 죽었다. 하여 몇몇 잡지에 법륜공을 사교라고 비하하는 문장을 실었다. 1999년 4월 25일 법륜공 신도 수만명은 중남해(한국의 청와대에 해당함)를 쳐들어가며 농성하다가 진압 당하였고 이홍지는 미국 망명을 하였다.

지금도 법륜공신자와 중공간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법륜공 신자들은 법륜공에 대해 사면복권해줄 것, 법륜공에 대한 진압을 사과할 것 등을 주장하나 중공은 법륜공이 사교이라는 정설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사면복권과 사면은 더더욱 해주지 않고 있다. 법륜공이 사교라는 견해를 역설하는 와중에 자연히 ‘다른 종교는 사교가 아니다, 믿으려면 사교가 아닌, 종교다운 종교를 믿어라’라는 견해를 반복 강조하게 된다. 이런 싸움 속에서 법륜공이 아닌 다른 종교가 점점 대접받기 시작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종교신앙의 진정한 자유가 비로소 이루어진 셈이다.

1999년은 실로 중국종교가 철저한 해방을 맞은 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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