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3)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3)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1.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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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는 이와 정반대되는 효과도 얻어짐에 따라 더욱 공고하게 된다. 플라시보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집단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약효도 없는 약을 복용시키고 그것이 두통을 일으키는 약이라고 말해 주었다. 놀라운 것은 실험에 응한 사람들의 70퍼센트 정도가 정말로 두통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이를 ‘노시보(Nocebo) 효과’라고 부르는데 노시보란 ‘나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는 뜻의 라틴어이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마법사의 저주를 받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뒤에 숨을 거둔다고 한다. 1942년 미국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이러한 현상을 ‘부두 죽음’(voodoo death)이라고 명명했다. 부두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아이티의 원시종교인데 부두교의 주술사로부터 저주를 받고 사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적었다.

부두 죽음과 같은 일은 밀림이나 오지에 사는 원시 부족사회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놀랍게도 선진사회에서도 자주 빈발한다. 많은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들으면 절망에 빠져 삶의 의지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주술사나 의사는 똑같은 결과를 내는데 마법사는 긴 주문이 필요하지만 의사의 경우 짧은 몇 마디가 다를 뿐이다.

노시보 효과는 전승이 아니라 임상실험으로도 확인되었는데 노시보 효과가 특별히 주목을 받는 것은 심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헐대학교 심리학자 어빙 커서는 수 세기 동안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증상을 분석했는데 그는 이들 집단에 퍼진 사건들이 기본적으로 집단 심인성 질환(mass psycdhogenic illness)이라고 알려진 노시보 현상들이라고 발표했다.

1998년 11월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휘발유 비슷한 냄새를 맡고 두통, 호흡장애, 현기증을 호소했다. 학교는 곧바로 휴교조치를 취했으나 교사가 고통을 호소했다는 말을 들은 교사와 학생 100여 명이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질환의 원인을 밝히지 못했는데 단지 친구가 아픈 것을 본 뒤에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정황증거만 있을 뿐이다.

어빙 커시의 또 다른 실험도 매우 흥미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맑은 공기를 흡입시킨 뒤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실험 대상의 절반에게는 한 여자가 공기를 마시고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자가 고통을 느끼는 장면을 목격한 실험대상자일수록 유사한 증상을 나타냈다. 집단심인성질환과 비슷한 현상을 보인 것이다. 부두교의 마법사나 의사들의 말 한마디에 따른 노시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 언행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믿음의 상징

플라시보든 노시보든 인간의 삶이란 마음과 정신의 지배 아래 움직인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근대 학자들의 결론이다. 이것은 인간의 복잡한 생활에서 긍정적인 마음과 정신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행위도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산 중에는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에 의해 과학성이 증빙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과거부터 관습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들의 대부분 소위 미신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배제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덕목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국의 간판음식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장을 담글 때 여러 금기 사항들이 내려왔다. 특히 장을 담그는 당사자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장을 담그기 며칠 전부터 외출을 삼가야 했고, 말을 아꼈으며 당일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고사를 지냈다. 또 부정을 탈까봐 몸가짐을 조심하며 집을 지키는 개를 함부로 꾸짖지 않았다.

이러한 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장독 안에 숯이나 붉은 고추를 넣었다. 또한 장독에 새끼줄에 숯과 고추, 창호지를 매달아 금줄을 쳤으며 장독 둘레에는 버선 모양으로 잘라낸 창호지를 거꾸로 붙였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런 조처가 근래 상당한 과학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숯과 고추가 항균, 항취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벌레들이 빛을 내리쬐는 하얀색을 싫어하여 피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주술적인 미신으로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지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때 문간에 새끼줄을 두르고 숯과 고추를 달았다는 것을 ‘귀신’을 쫒기 위한 미신의 제스처라고 혹평한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선조들이 부단히 믿고 견지해온 전통 문화가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귀신을 ‘병균’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새끼줄은 ‘방역’의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에도 가축의 전염병인 구제역 등이 심한 지역에서는 방역줄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금줄은 신생아가 태어났으니 이 집 앞에서 크게 소리치지 말고 함부로 드나들지 말며 떠들썩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일종의 ‘요청’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외부 사람들이 마구 드나들어 그야말로 병균이라도 전염될지도 모르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의 선조들이야 병원균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랐겠지만 산모와 신생아에게 중요한 것은 남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종종 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 차원에서 금줄이 사용된 것이다. 더구나 고추와 숯을 달아놓는 것은 장독에 숯과 고추를 넣어 항균, 항취 효과를 얻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이들 풍습은 기본적으로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려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지 귀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금시시하는 미신이라는 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제사, 사주팔자나 부작, 일부 종교인들과 학자들이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는 장승이나 솟대 등을 과학이라는 명칭 아래 다루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도깨비도 제외하지 않는다. 이들을 과학성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인간의 믿음과 관계되는 심리치료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의 많은 유산들이 과학적인 측면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비록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조차 알지 못했지만 과학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선조들이 과거로부터 믿음을 갖고 지켜왔던 풍습이 현재에는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거에도 미신 차원에서 믿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로 보아서 철폐되어야 할 부끄러운 유산으로까지 매도되고 있는 부작, 장승, 솟대 등 많은 민속문화의 존재이유는 이들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부단한 믿음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런 효과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다.

나무로 만든 장승이나 솟대는 대체로 3천 년 전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왔다고 보는데 대체로 10년에서 20년마다 다시 세운다. 이들을 세우려면 상당히 번거로운데도 불구하고 수 천 년 동안 계속 새로 제작해 내려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선조들이 장승이나 솟대, 성황당에서 유‧무형적으로 기대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았다는 뜻이다. 믿음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과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믿고 의지하고 보편화시킨 것이라면 굳이 현대라는 잣대로 보아 입맛에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이상하게 비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면 우리들의 것으로 간직할 만한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물론 우리 것이 무조건 좋다는 편파적 시각은 경계해야한다. 자주 사용되는 말이 신토불이(身土不二)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자신이 사는 땅에서 산출되는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의미이다. 국산품을 선전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숨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토불이란 말은 우리 것이 제일 좋다는 말도 되지만 우리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배타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것은 무조건 과장하고 남의 것은 무조건 혹평해 버린 이유이기도 한다.

우리의 서해어장은 주로 중국과 북한 및 한국이 이용하고 있다. 국제법상 영토로부터 수심 200미터까지 대륙붕이라 부르며 근해의 어족자원을 보호할 수 있는데 황해는 수심이 70~80미터이므로 중국, 한국, 북한 등 모두 대륙붕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한데 중요한 우리 어족 중의 하나로 서해안에서 잡히는 조기는 같은 대륙붕 안에서 잡히는데도 중국산과 한국산의 가격차이가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서해의 같은 어장에서 중국인 배로 잡은 조기와 한국인 배로 잡은 조기가 다를 리가 없다고 지적한다(보관 문제는 제외). 조기가 한국 배와 중국 배를 구별하여 잡힐 리도 없다. 한국인이 잡은 조기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사고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현금 우리 것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자하는 열망 역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천대받고 있던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도 새로운 평가를 받아 남다른 여건이 조성되었음을 피부로 느끼면서 우리 것을 어떻게 다뤄야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것을 제대로 평가하게 되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남다른 우리 것 찾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것이 결국 우리것을 제대로 대우해 주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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