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6)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6)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2.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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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가다: 들어가기

생각지도 않은 거금이 생길 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여행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동안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야할까. 나름대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지를 택하기 마련이지만 근래 매우 신뢰성이 있는 지침이 등장했다.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하게 된 동기는 1960년 이집트 정부가 나일 강에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 등 이집트의 고대 유적들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영광을 상징하는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는 ‘건축 대왕’이란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건설한 기념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스완에서 320킬로미터 남쪽 돌산의 벽면을 깎아 만든 아부심벨 신전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정면이 람세스 2세의 모습을 닮은 4개의 거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각 조상은 높이가 20미터, 얼굴의 귀에서 귀까지의 거리가 4미터, 입술의 폭이 1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크기를 자랑한다. 정면 조각 뒤에는 돌산을 파서 만든 신전이 있는데 매년 춘분과 추분에 아침의 햇빛이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태양의 신과 람세스 2세의 조상을 환하게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1950년대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는 국토 최남단의 아스완에 있는 기존의 댐을 새로운 아스완하이댐으로 대체하는 대담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이 댐이 완성되면 나일 강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수십 개의 새로운 산업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스완 댐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었다.

 
아스완댐이 예정대로 완성되면 세계적인 유산인 아부심벨 신전 등 많은 고대 이집트 유적들이 수몰된다는 것이다. 이에 전 세계의 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물속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을 구제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신전 주위에 제방을 구축하자는 안과 신전을 콘크리트 상자로 싸서 수압 잭(jack, 작은 기중기)으로 들어 올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결정된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아부심벨 자체를 아스완댐이 건설되더라도 수몰되지 않는 65미터 상류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람세스 2세의 좌상과 강 양쪽에 위치한 2개의 사원을 고지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면 되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는 설명처럼 유적을 이전시킬 대상지역 또한 원래 유적이 있던 곳과 비슷하게 조성하기로 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1963년부터 아부심벨 신전 이전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팀은 제일 먼저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신전에 모두 1만 7000개의 구멍을 뚫고, 그 안에 33톤에 달하는 송진덩어리를 밀어 넣어 신전의 바위 돌들을 단단하게 굳혔다. 그리고는 거대한 쇠줄 톱을 동원해 신전을 모두 1,036개의 블록으로 잘랐다. 블록 하나의 무게가 30톤에 달했으며 신전 주변의 바위들도 1,112부분으로 나뉘어졌다.

신전을 옮길 절벽 위쪽의 바위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돔 2개를 만들어 덮어 단단한 인공 산을 만들었다. 계획대로 모든 돌이 상부로 옮겨진 후 재조립 작업이 시작되었고 공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집트가 담수 수면을 더 올리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이미 재건해 놓았던 소신전을 다시 해체하여 약 2미터 더 높은 곳으로 앉혀야 했다. 공사의 마지막 작업은 신전을 토막으로 자를 때 생긴 자국을 위장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을 거쳐 1969년 2월 마침내 3200년 전에 탄생된 신전이 다시 완벽한 제 모습을 갖춘 채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1969년 3월 춘분에 정확히 람세스 2세가 설계한 ‘태양의 기적’이 일어났다. 3200여 년 전처럼 햇빛이 성역에 있는 동상들을 비춘 것이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4천2백만 달러의 공사비가 들어간 세계적인 문화유적 보존사업이었는데 한국도 50여만 달러를 지원했다.

수몰 위기에 몰렸던 다른 유적들은 다른 섬으로 이축되어 재건되었다. 이는 이집트가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수몰 위험에 있는 작은 신전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기증한 데보드(Debod) 신전은 지금 마드리드에 있고 덴두르 신전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완벽히 복원되어 있다. 엘 레시아 신전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이집트박물관, 칼라브샤 신전의 관문은 베를린 이집트박물관, 그리고 타파 신전은 네덜란드 라이덴에 있는 국립고대유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가 인류 문화재를 공동으로 지킬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는데 1972년 11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유산의 파괴를 막고 보호하는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을 만든 후 인류문명과 자연사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세계유산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유네스코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이를 구분하여 선정한다. 큰 틀에서 인류가 태어난 이후 즉 인간의 손길이 배어있는 것을 문화유산으로 분류하고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을 자연유산으로 분류하며 이들이 연계되어 있는 것을 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문화유산은 유적(역사와 예술, 과학적인 관점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비명(碑銘), 동굴생활의 흔적, 고고학적 특징을 지닌 건축물, 조각, 그림이나 이들의 복합물), 건축물(건축술이나 그 동질성, 주변 경관으로 역사, 과학, 예술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독립적 건물이나 연속된 걸물), 장소(인간 작업의 소산물이나 인간과 자연의 공동 노력의 소산물, 역사적, 심미적, 민족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적 장소를 포함한 지역)를 말한다.

자연유산은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로 이루어진 자연의 형태이거나 그러한 생성물의 일군으로 이루어진 미적 또는 과학적 관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 것, 과학적 보존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질학적, 지문학(地文學)적 생성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서식지 그리고 과학, 보존 또는 자연미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점이나 구체적으로 지어진 자연지역을 말한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을 의미한다.

 
<자격 박탈도 가능>
2012년까지 세계유산 등록건수는 157개국 962건이며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745점, 자연유산 188점, 복합유산이 29점이다. 전체 962곳 중 많은 세계유산을 가진 국가들은 이탈리아(49건), 중국(44건), 스페인(43건) 순이다.

한국의 경우 문화유산 9건, 자연유산 1건으로 문화유산은 불국사․석굴암(1995), 종묘(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2000), 조선왕릉(2009),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양동마을(2010)이 등재되었다. 자연유산으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이 있으며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고구려 고분군(2004)이 등재되었다.

각국에서 총력을 기울여 자국의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코자 노력하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문화올림픽으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로 인한 이점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외로부터의 관광객이 크게 증가되며 이에 따른 고용 기회와 수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지역의 계획과 관리를 향상시킬 수도 있고, 또한 지역 및 국가의 자부심을 고취·보호를 위한 책임감을 형성한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는 베트남의 경제 규모와 흐름을 바꿔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롱베이는 등재 2년 뒤인 1996년 23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는데 2000년에는 85만 명, 2005년에는 150만 명이 다녀갔으며 2010년 관광객 수는 250만이나 되는 등 세계유산으로의 등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경우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방문객이 거의 10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각국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관광추세가 역사문화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재를 둘러싼 외교전도 치열하고 등재 심사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전 단계인 자국 내 지방자치단체 경쟁률만 해도 10대1로 높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것이 간단하지 않는 것은 세계유산협약에 가입된 전 세계 188개 나라에는 해마다 2점씩 유산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세계유산위원회가 검토하는 전체 유산의 수는 45점으로 제한된다. 또한 특정한 유산(Heritage)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기회는 오직 한 번밖에 없다. 유네스코가 한 유산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두 번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장점은 설사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여 소유권이나 통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유권은 지정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국내법도 여전히 적용된다. 더불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기금(World Heritage Fund)으로 부터 기술적,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물론 세계유산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것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유산으로 등재되면 이점과 함께 의무도 부가되는데 이는 유산의 보존 의무를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네스코는 등재된 세계유산이 세계유산목록에 포함되도록 만든 특성을 잃을 정도로 훼손된 경우에 삭제 조치가 내려지는데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영양 보호구역은 1972년 세계유산 등재가 시작한 이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가 삭제되는 첫 사례가 되었다. 이는 오만 정부가 보호구역의 90퍼센트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도 독일 드레스덴엘베 계곡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드레스덴 시 당국이 추진 중인 대규모 교량 건설이 엘베 계곡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다고 인정했다.

 
세계유산으로 역사성이 있는 고대 유산만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건축가 우드손이 설계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선정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세계유산위원회측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위대한 예술적 기념비이자 아이콘인 동시에 20세기 후반의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기친 과감하고도 예언자적인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더욱 돋보인다. 현재까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생존해 있음에도 세계유산으로 지명된 것은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오스카니마이어(Oscar Neimeyer)에 이어 우드손이 두 번째이다. 호주의 랜드 마크가 된 시드니오페라하우스는 ‘20세기 10대 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유산이 처한 당면한 문제점은 대부분의 유산들이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있으므로 각종 여건에 의해 파괴와 훼손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목록에 올라간 유산 중 파괴 위험에 처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하여 특별히 관리한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은 2011년 현재 34점으로 전쟁으로 파괴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코소보 중세유적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지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 오히려 해제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고대 유적, 폴란드 카르쿠프 (Carcow) 근처 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광산,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Ngorongoro) 자연보호 구역,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 등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서 제외되었다.

 
유네스코의 유산 보호 및 복구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이 큰 도움을 주므로 이를 해제하기 위해 각국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참고적으로 유네스코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에는 ‘인류의 무형유산’과 ‘세계 기록유산’도 포함된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전체를 <과학문화유산답사기>의 형태로 연재한다. 한국은 현재 문화유산 9건, 자연유산 1건이 등재되어 있는데 우선 한국의 간판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제일 먼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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