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58] 사직단
[아! 대한민국 58] 사직단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4.02.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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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유교이념에 따르면 도읍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궁궐, 종묘, 그리고 사직단이다. 궁궐은 왕과 그 가족의 생활문화 공간이자, 왕이 정무를 보는 곳이다. 종묘는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다. 정전(正殿)의 반복적으로 이어진 기둥들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하다 하여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서울도성에서 500년 넘게 창덕궁(궁궐), 종묘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었던 사직단은 잊혀져가고 있다. 이 사직단 일대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 공원으로 바뀌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돼 현재는 사직단과 정문(보물177호)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직공원을 만들면서 사직단을 허물려다가 반대에 부딪쳐 원형을 남겨두긴 했으나 그 역사성은 크게 훼손되어 버린 것이다.

사직단은 왕실보다는 백성을 위한 공간이었다. 임금은 새해가 시작되면 사직단으로 나아가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를 올렸다. 큰 가뭄이 들었을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1725년 7월, 영조는 가뭄이 계속되자 사직단에서 친히 기우제를 지내겠다며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서 하늘을 삼는데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나라가 그 구실을 할 수 있는가. 팔도 백성이 곤궁하고 초췌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붕당을 만들어 아부하는 풍습이 요즘보다 심한 때가 없었다. 이게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진실로 나의 허물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매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사직단은 농업국가로서의 조선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심점으로 농민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곳이었다. 최근 들어 문화유산 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사직단 복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옛 사직단 경내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주변의 녹지와 연결해 문화벨트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직단이 복원된다면 동쪽의 창경궁, 종묘, 창덕궁에서 시작해 북촌, 경복궁, 서촌을 거쳐 사직단까지 이어지는 전통거리가 만들어져 600년 역사도시 서울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국가 조선이 서민의 삶을 걱정하던 국가의 상징성을 되살려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서울의 5대 궁궐을 복원하는 사업은 2030년을 그 완결시점으로, 옛 서울성곽을 복원하는 사업은 2014년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한 북촌과 서촌도 최근 들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직단이 복원된다면 그것은 옛 서울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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