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12)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12)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3.1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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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1) : 경주유산 입문(5)
불탑의 나라 신라

한국의 도처에 불탑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유적지나 유원지에서 지금도 돌을 주워서 조그마한 탑을 쌓는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탑이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이므로 더 이상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이 때문이다. 탑은 탑이라는 뜻이다.

 
탑은 한마디로 ‘붓다의 무덤’이라 볼 수 있다.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에서 입적하자 석가모니의 시신을 말라족이 다른 인도인들처럼 다비에 붙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신에서 영롱한 사리가 나오자 인도의 여덟 나라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분쟁을 일으켰다. 한 제자의 의견에 따라 석가모니의 사리를 팔등분하여 각 나라에 분배하고, 이를 봉안하기 위하여 각기 탑을 세웠다. 이를 사리팔분(舍利八分)이라 한다.

그런데 유골의 분배가 끝난 후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고 달려온 모라족은 어쩔 수 없이 석가모니의 화장터에 남아 있던 재를 가져가 유골 대신 넣은 재탑을 세웠다. 결국 처음에 건립된 여덟 기의 탑과 추가된 두 기의 탑을 합하여 총 열 기의 탑이 최초의 불탑이 된다.

당연하게 석가모니의 불사리를 봉납한 탑은 예배의 대상이 되어 신성하게 모셔졌다. 불교를 열렬히 신봉했던 아소카왕(기원전 272~223)은 이 여덟 개의 탑을 헐고 불사리를 다시 나누어 나라 전체에 팔만 사천 개나 되는 탑을 세웠다. 8만 4천개의 탑에 보관할 정도로 불사리가 많을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이 숫자는 불교에서 많은 것을 의미할 때 사용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부처의 무덤을 유독 ‘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답은 부처의 무덤이라고 해서 탑이라고 붙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탑이란 명칭은 원래 고대 인도어인 스투파(stupa)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스투파는 본래 ‘쌓아 올린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 유골을 묻고 그 위에 흙이나 벽돌을 쌓은 돔(Dome) 형태의 무덤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탑의 원래 의미는 간단히 말하면 ‘유골을 매장한 인도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부처의 무덤이나 일반 인도의 무덤이나 모두 똑같은 스투파이다.

그런데 아소카 왕이 인도 전역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스투파를 건설하자 이후 스투파는 단순한 인도의 전통적인 무덤이 아니라 성스러운 구조물로 변모했고 사람들은 경외와 참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스투파가 석가모니의 유골, 즉 사리를 봉안하는 구조물에서 나아가 석가모니의 실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아소카왕의 8만4천 탑 건립에서 진정한 분사리의 원리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자 부처의 스투파가 중국에서 솔도파(率都婆), 스도파(粹都婆), 탑파(塔婆) 등으로 발음되어 한자로 표기되다가 마침내 줄여서 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탑을 파고다라고도 부르는데 용어는 포르투갈어 ‘빠고데(pagode)’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다. 15세기 이후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하여 독특한 건축물인 탑을 보고 이러한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서양인들은 동양의 탑을 지칭할 때 파고다라고 부른다.

<탑의 배치와 장엄(莊嚴)>
사찰 안의 탑은 사찰의 여러 건물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때 탑과 건물이 어떤 관계로 배치되어 있는가를 ‘가람배치(伽藍配置)’라고 한다. 예를 들면 탑과 금당의 관계에 따라 1탑3금당·1탑1금당·쌍탑식 등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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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금당식 가람배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주로 고구려에서 그 형식을 찾아 볼 수 있다. 탑을 한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 한 개, 동서에 한 개씩 금당이 있어 금당이 탑을 삼면에서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고구려의 금강사지, 상오리사지, 정릉사지 등은 모두 이와 같은 1탑3금당식의 가람배치이다.

1탑1금당식의 가람배치는 남북축선상에 탑과 금당을 하나씩 두는 형태와 동서로 탑과 금당을 두는 형태 두 가지가 있다. 백제시대의 탑은 남북축선상에 탑과 금당을 두는 형태로 군수리사지, 정림사지, 미륵사지 등이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미륵사의 경우는 탑과 금당이 각각 세 개씩 있었으나 각각의 독립된 구역을 만들어 1탑1금당식의 형식을 취했다.

쌍탑식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 사천왕사지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망덕사지·보문사지 등에서는 목탑, 감은사지·천군동사지·불국사 등에서는 석탑으로 나타나 이후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이런 쌍탑식 가람배치가 기본이 된다. 이와 같이 금당과 탑의 관계가 변모하는 이유를 강우방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통일신라시대 전의 초기 사찰에서는 중문을 통해 사찰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정면에 거대한 탑이 금당 앞에 서 있는 구조였으나 통일신라 이후 탑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자 탑이 중앙에서 비켜나 좌우로 물러나면서 탑 대신에 중앙에 금당이 있는 구조로 변한다.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탑 신앙이 불상 신앙으로 바뀌자 불상을 모신 금당이 중요시되어 상대적으로 탑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사찰의 건축 계획에서도 초기 사찰들은 탑의 기단폭을 사찰 평면 배치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쌍탑식 가람에서는 탑과 탑 사이의 간격을 기준으로 계획했다. 그러므로 1탑식 가람배치를 탑 중심적 가람배치라고 하고 쌍탑식 가람배치를 금당 중심적 가람배치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이는 동서로 금당과 탑을 배치하는 형태는 탑과 금당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탑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탑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륜(相輪)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리의 봉안이 석가의 무덤임을 알리는 실질적인 내용이라면, 상륜은 인도 스투파를 축소시킨 상징적인 형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모든 탑에는 상륜이 있다. 목탑이나 전탑에서는 주로 금속으로 만들었고 석탑은 돌로 저마다의 형태를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물론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건립되는 모든 탑에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실 수가 없으므로 후대에는 다른 승려들의 사리나 불경, 작은 금동불 등 공경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탑 안에 모셨다. 그래서 사찰에 들어가면 부처를 모신 법당 안에 있는 탑에 합장하여 예배하거나 탑돌이를 하며 기원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현지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륜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역시 독특한 형태의 상륜을 만들었다. 상륜을 세우기 위해서 찰주가 필요하다. 석탑은 주로 쇠로 만든 찰주에 하나하나의 돌로 된 부재들을 끼우도록 되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상륜은 탑 위에 또 다른 탑이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상륜이 스투파의 완벽한 축소형이지만 중국의 상륜과 전혀 다른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상륜부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륜부의 모습은 통일신라시대 탑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탑의 장엄(莊嚴) 즉 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인도와는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 석탑의 기본 형식은 평면 4면의 구조에 2중의 기단을 가진 형태이다. 그러므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생긴 면석(面石)이 8~12면에 나타난다. 이들 공간에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달리하는 조각이 화려하게 설치된다.

1층탑신에 목탑의 형식을 모방한 문이 조각되어 있으면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등장한다. 문이 조각되어 있지 않으면 사천왕상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불국토를 지키는 신장상(神將像)들이다. 또한 상층기단과 하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나 십이지상들이 조각된다. 특히 팔부중상은 상층기단이 8면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어 조각이 가능했다. 이는 우리나라 탑 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지붕돌 처마 모서리 양쪽에는 소형구멍을 만들어 이곳에 금속으로 제작된 풍탁을 매달아 걸었다. 처마에 달린 풍경과 상륜을 잇는 체인에 달린 풍탁은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려 제각각의 빛과 소리를 내었다. 말하자면 시각적인 장엄뿐 아니라 청각적인 장엄도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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