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그림편지-6] 사월, 눈부시게 서럽습니다
[김봉준그림편지-6] 사월, 눈부시게 서럽습니다
  • 김봉준 <신화미술관장, 작가>
  • 승인 2014.04.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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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 유화 100호, 2012년, 김봉준作

봄 한 복판입니다.

요즘 저도 눈이 호강합니다. 우리 동네 들어오는 길이 꽃바다입니다. 봄바람에 산 벚꽃이 꽃비가 되어 이슬비처럼 흐릅니다. 농부들은 요즘이 무척 바쁜 때입니다. 우리 집 윗 밭에는 옥수수 모종을 가져다가 하루 종일 땅에 심었습니다. 밭일은 아낙들이 끈질기게 잘합니다. 나 같은 이는 하루 종일 오그리고 앉아 파종일이라도 할라치면 삭신이 쑤셔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농사 작파한지 오랩니다. 그림쟁이 일도 많고 힘든데 농사일까지 같이 못한다고 손 놓았습니다. 우리 동네 농부들에게 아예 입소문 냈습니다. “나보고 농사 권하지 마소, 그림 일만해도 농사일처럼 많은 데, 거기다 농사까지 하면 농부보다 두 배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건데 그렇게는 힘들어서 못살겠소.” 사실, 나는 유난히도 미술 일이 많습니다. 유화, 겨레붓그림, 목판화, 흙조각, 도조가마, 미술관 청소, 관리 안내 해설까지 합니다.

두메산골 오지로 나들이 와 보셨나요? 이런 곳에는 빈집이 종종 눈에 띕니다. 부엌문도 열려 있고 장독도 그대로 있고 마당도 넓고 쓸 만 한 집인데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농사가 힘들고 먹고 살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농촌을 떠난 것이지요. 그러나 마당의 나무와 풀들은 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면 꽃나무와 풀꽃으로 터 무늬를 이룹니다. 텅 빈집에 화려한 꽃마당이 묘한 이중적 대조를 이루어 눈부시게 서럽습니다.

모판짜기 풍광도 이 맘 때입니다. 살구나무 꽃 필 적에 우리 동네는 모판자기를 합니다. 벼 모를 만들기 위해 흙판에 볍씨를 심고 모가 자라게 하는 것이지요. 온 가족이 나서서 가족노동을 합니다. 일손이 적은 농촌에서는 이런 날 객지 나간 형제들과 사위 며느리까지 모두 날 잡고 들어와 일을 거듭니다. 모판 짜기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흙을 갖고 정중한 의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밥을 만드는 일은 그 자체가 종교적 숭고함마저 느끼게 하는 군요. 맞습니다. 인류문화는 ‘밥이 곧 제사’였던 시대부터 시작했습니다.

▲ <모판자기> 겨레붓그림, 20x30cm, 2004년, 김봉준作

또 이런 풍광도 있습니다. 꽃놀이입니다. 저도 해 보았습니다. 예전의 추억을 살려 단숨에 그렸습니다. 춘흥을 담으려고 그림 그리기 전에 다시 혼자서 장고도 치고 춤도 춰 보고 그렸었습니다. 저는 붓에 흥취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춤부터 한상 추고 나서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좀 미친 거 같을 것입니다. 우리 겨레 신명의 미학을 놓지 않으려는 화인의 간절함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봄날은 자연의 신명으로 충만합니다.

▲ <꽃길 따라>겨레붓그림, 20x30cm, 2004년, 김봉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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