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그림편지-9] 마르지 않는 통일의 소망
[김봉준그림편지-9] 마르지 않는 통일의 소망
  • 김봉준 <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작가>
  • 승인 2014.06.23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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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이 한쪽에게> 유화 10호, 2012년작 김봉준.

이틀 후면 6.25입니다. 남북이 서로 싸운 지도 어느덧 60년이 넘었습니다. 남북의 겨레만 싸웠나요, 세계의 모든 군대와 무기가 다 들어와서 피투성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아직도 전쟁이 멈추지 않은 휴전상태, 세계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입니다. 원래 우리가 분단국가가 된 것은 우리민족 내부적 요인은 아니었지요.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이 그어졌던 것이니 본래 분단은 민족 내부에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5년 후 동족간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씻을 수 없는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었고 아직도 원수지간으로 싸우고 반목하여왔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나 같은 전후 세대들은 좀 어이가 없습니다. 왜 이토록 길고 질기게 분단체제가 이어지며 끊임 없이 으르렁거려야 하는 지 답답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우리 속담처럼 싸움을 말리고 싶습니다. 이제 전쟁을 겪은 세대도 세상을 떠나가고 사회활동 일선에서 물러났고 국제적으로 냉전도 해체되었으니 이제는 좀 안 싸우고 대화와 평화교류를 할만도 한데 남북갈등은 언제까지 갈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겹습니다. 그래서 저는 SNS에서 말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간에 또 전쟁을 펼치거나 전쟁의 기미가 보이면 나는 이 한반도 땅을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라고 말해버렸습니다.

▲ <통일해원도> 채색목판화 60x100cm 1985년 김봉준 작.

30여년 동안 그린 그림들 - 동포사랑, 통일, 조국산하, 마을공동체, 가족사랑, 민주주의, 고향 등 우리네 살림 주제를 담은 그림들을 모두 쌓아 담고 이사를 먼 나라로 떠나버릴 겁니다. 거기 가서 평화미술관이나 작게 차려 놓고 미술관식당이나 해서 먹고 살겠습니다. 우리 부모세대가 식민지와 전쟁을 겪어 그 고생을 보면서 자란 우리 전후세대는 전쟁과 폭력의 대물림이 정말 싫습니다. 참말이지 국민 전체가 전쟁 폭력에 의해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합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싸움질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에 평화로운 제3지대라면 지구 어디든지 달아나고 싶어서 한 말입니다. 이제는 그 어떤 명분을 앞세워도 ‘전쟁조국’은 이미 내 조국이 아닙니다.

저라고 애국심이 없겠습니까? 애족애민의 마음으로 문화예술 하겠노라고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죽하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세계에서 이산가족을 60년동안 못 만나게 하는 국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행을 금지시키는 국가, 동포 청년들이 총부리 겨누고, 그러다가 동료에게 총질하고 산으로 도망치는 나라가 남북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도 다 가는 나라들을 동족만 못 가게 만든 참 이상한 국가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만 이상한 줄 모르고 살고 있는 여기는 분단국가입니다.

우리네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저도 무진 애를 써 온 청춘이 있었습니다. 제 그림에 통일과 평화의 주제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환갑이 다 되어도 세상은 별로 나아지는 게 없네요. 오히려 남북갈등은 물론 남남갈등까지 깊어지고 전쟁의 상처는 다른 모양으로 계속 진화하니 말입니다. 갈라서더라도 이런 식으로 적대적 갈등을 끊임 없이 재생산하는 분단체제는 평범한 삶마저 피폐하게 합니다.

▲ <모자상봉> 목판화 1981년 김봉준 작.

통일로 가는 길에는 갈등을 더는 만들지 말고 남북 양측은 동질성 회복의 노력이 끝이지 않기를 하기를 바랍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서로 같은 것은 확인하고 보존하며 살려 나가기를 바랍니다. 한 민족이기에 아직도 같은 말과 같은 글을 쓰고 있으며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은 모두 같은 원형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으니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겨레의 풍부한 민족문화를 살리고 권장하고 교류를 하면 참 좋겠습니다. 더 잊혀지기 전에 겨레문화를 보존하는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을 남북이 같이 펼치기 바랍니다. 말로는 민족문화 보존 계승이라고 하지만 삶의 현장은 물론 교육과 언론, 공중파 티브이와 시장에서 민족문화예술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혼례 장례 성장식 등 통과의례와 세시풍속 등을 보존하고 교류하는 문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 <마르지 않는 샘> 목판화 1997년작 김봉준.

갑자기 오는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통일은 작은 생활문화로부터 차츰차츰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통일그림도 그려왔습니다. 남북이 풍물 대동놀이판에서처럼 만나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교류하는 통일을 바라며 그렸습니다. 이 큰 판화는 1985년에 붓으로 그리고 나무에 팠던 목판화 <통일해원도>입니다. 90년대 초 뉴욕에서 열린 첫 남북국제영화제에서 이 그림을 포스타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포스타에 목판화 그림이 이상할 법도 한 데 남북 영화인들은 이 그림에서 겨레의 동질성을 보았기에 남북의 영화사진들을 제쳐두고 <통일해원도>를 포스타로 사용하였습니다. 일본 제일동포들이 한 1986년 통일굿 행사에서도 이 판화를 포스타로 쓴 적이 있습니다. 겨레의 동질성은 이렇게 작은 판화로도 확인됩니다.

풍물은 우리 겨레축제의 아이콘입니다. 화합과 긍정의 힘을 우리네 신명문화에서 다시 찾기를 바랍니다. 아리랑, 고구려벽화, 풍물놀이, 줄다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우리춤, 우리노래, 겨레 붓그림 붓글씨, 겨레음식, 겨레옷, 겨레역사, 겨레말, 겨레신화와 상징….. 얼마나 많은 겨레문화 상징을 공유하고 있습니까. 자기문화에서 긍정성을 못 찾는 민족은 자기 정체성을 잃고, 정체성을 잃으면 동질성도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겨레의 동질성 회복을 하려는 문화교류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남북 정부는 순수한 민간의 교류를 가로막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 비교하는 체제경쟁은 끝내고 지나친 자기 체제 자랑은 이제는 그만들 내려 놓고 서로를 자랑해 주고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의 민간이 나서서 하는 통일문화교류를 바랍니다. 남북민간인은 물론 해외동포들과 세계평화시민들이 협조하는 ‘통일시민지성’이 필요합니다. 통일론을 정부와 거대언론이 독점해선 안되고 민간의 생활에서부터, 지역 자치로부터, 시민지성으로부터 시작하도록 남북정부는 권장해야 합니다. 和而不同, 같음에서 긍정의 힘을 더 키우고 다름을 존중하는 기풍이 白花爭鳴으로,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뺄셈의 통합이 아니라 덧셈의 통일을 바랍니다. 우리의 분단이 세계사적 모순의 집약이기에 통일은 세계사적으로 통 큰 평화세상 만들기입니다.

해외에 계신 동포들은 자나깨나 통일조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 간절할 겁니다. ‘해외동포들이 오작교가 되고 남북이 만나는’ 민간통일교류부터 합시다. 어찌 보면 해외동포가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통일을 갈망합니다. 조국이 통일되어야 나라 잃고 분단의 아픔으로 떠났던 한을 풀고, 타국에서 기를 피고 살고, 동포들끼리도 너의 편 내편으로 싸우는 진영논리에서 헤어나오고, 합쳐서 더 힘 나니…. 월드 코리안에게는 이런 경사 없습니다. 이제는 통일조국이 아니면 내 조국이 아니라고 남북 모두에게 돌아선 분들도 많습니다. 민족역량이 그만큼 소진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 탓, 제국 탓도 알만큼 다 아는 사실들 그것만 강조하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통일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간문화교류에서부터 하여 겨레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통일시민지성으로 열린 통일마당이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아, 어느덧 슬픈 6.25전쟁 64주년을 맞이하네요. 분단시대 화인은 내 비록 작은 그림들이지만 여기에 마르지 않는 통일의 소망을 담아 월드 코리안에게 바칩니다.

▲ <세계평화> 채색실크스크린 판화 2002년 김봉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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