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3] 도시로 대학으로
[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3] 도시로 대학으로
  • 한국외국어대학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
  • 승인 2014.06.2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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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모든 민족들의 지도자로 군림해왔던 스탈린이 사망했다.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삶은 급격하게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까지 한인 이주자들을 옭아매어 왔던 거주제한은 철폐되고, 한인들은 이제 중앙아시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로 진출해 나갈 수 있게 됐다.

한인들은 이제 소련의 아무 공화국에서나 일하며 배울 수 있게 됐고, 설계연구소, 건설기관, 농업성, 카자흐스탄 어업 및 과수성, 심지어는 속해있는 공화국 공산당중앙위원회나 장차관직 등의 관직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제 한인 젊은이들도 군대에 복무할 수 있게 됐으며, 모든 한인 학생들이 최고학부와 군사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는 동등하고 폭넓은 기회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

1950~80년대에 한인들은 중아아시아 공화국들의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역시 한인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유라시아 지역 대도시에서 유학할 수 있는 배움의 길이 열린 것이었다.

정 겐나디 보리소비치 또한 스탈린 사후에 거주제한이 풀리면서 대도시로 건너가 학업을 시작하고, 성공을 거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정 겐나디 보리소비치는 1940년 카자흐스탄에서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 겐나디는 1959년에 중등교육(11년제학교)을 마치자마자 시베리아의 옴스크로 들어왔다. 약간의 의아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대학 면접관원들의 시선이 당혹스러웠지만 고향을 떠나올 때의 결심을 상기시키며 모든 걸 참아냈다.

운좋게도 정 겐나디는 옴스크시에 있는 무역전문대에 입학할 수가 있게 됐다. 공부를 하는 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 부모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무능하고 흐린 고려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정 겐나디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정 겐나디는 학우들과 교수들의 인정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무역전문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 겐나디의 이생의 시작에 불과했다. 정 겐나디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땅에서 잃어버린 부모님들의 인생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는 길은 오로지 누구나가 인정하는 위치에 서는 것, 즉 인생의 성공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옴스크 무역전문대를 졸업한 직후 우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정 겐나디는 같은 옴스크 무역전문대를 졸업한 한 지금의 아내인 고려인 여성을 알게 됐다. 결국 정 겐나디는 한민족의 가슴 속의 한을 가장 이해해 줄 고려인 여성과 결혼했고, 아들과 딸, 2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출산 후에 일을 하기를 소원하는 아내에게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의 강제이주와 중앙아시아에서의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 또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설득하며,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만 집중할 것을 설득시켰다.

겐나디는 직장생활을 하며, 한편으로는 직장에 다니면서 동시에 모스크바에 있는 무역대학에 새로 입학을 했다. 가정생활과 배움의 길을 병행해 나가야 하는 힘든 인생의 여정이었지만, 정 겐나디는 극복해 내었고, 많은 학업과 경험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큰 시야를 갖게 됐다. 모스크바 무역대학을 졸업한 정 겐나디는 한 단계 더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지위를 거치며 경력을 쌓아 나갔으며, 마침내 옴스크시에서 개인소유의 적지 않은 규모의 무역회사를 열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좌절감이 느껴질 때마다 그를 지탱시켜 준 것은 몸속에 흐르는 부모님들의 황무지 개척정신이었고, 삶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었다.

이제는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지만 정 겐나디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식지 않은 젊은 날의 열정과 미처 분출시키지 못한 그 무언가가 남아있다. 그것은 강제이주 세대의 부모를 둔 2세대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자녀는 둘이며, 아들은 옴스크 사범대학의 외국어학부를 졸업했으며, 영어와 중국어를 전공한 재원으로 현재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딸 역시 같은 학교를 졸업했으며, 영어와 독일어를 잘 구사할 줄 알고, 마찬가지로 현재 여행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정 겐나디는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자녀들을 볼 때마다 젊은 날 미친 듯이 배움의 열기를 폭발시켰던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해 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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