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6] 고려인 문화예술인
[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6] 고려인 문화예술인
  • 한국외국어대학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
  • 승인 2014.07.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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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의 역경을 딛고 한인들은 콜호즈를 통해서 벼농사와 목화재배, 축산 등의 농축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나갔으며, 해당 공화국의 국민경제, 나아가 전체소련경제에 기여를 했다.

특히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내에서 한인들의 노동력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나갔고, 농업분야에서의 공로로 200명(우즈베키스탄 130명) 이상의 한인들이 최고의 칭호인 소비에트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한인들의 농업분야에서의 성공은 경제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황은 한인들이 문화예술 및 학술분야 면에서도 눈부신 성과들을 이루어 내도록 하는 토대가 됐다.

1950~80년대에 한인들은 두 공화국의 정신적인 잠재력을 형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인들의 명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한인 배우 허주를 단장으로 한인극장이 활발하게 활동을 했으며, 학술원에만 1명의 준회원과 30명의 석좌, 60명의 한인 박사들이 활동을 했다.

카자흐스탄 한인들이 자국 공화국에 미친 영향 또한 적지 않다. 사회 각 분야에서 67명이 노동영웅 칭호를, 156명이 공훈 근로자의 칭호를 받았으며, 40명 이상이 석좌학위 및 교수직위를 부여받았다.

한인들의 우수한 능력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진 분야 중의 하나는 카자흐스탄의 한인 고려극장이 중심이 된 공연예술분야이다. 1932년 9월에 고려극장이 창립된 이래 고려극장 제1세대 배우단으로, 극작가 태장춘, 김해운, 연성룡, 채영 등과 배우 이경희(1919/신한촌출생), 김진, 이함덕, 이길수, 이장송, 최봉도, 박춘섭, 최길춘, 김홍남, 손병호, 전동혁, 박연진, 이 게르만, 오철암, 이봉운 등과 고려극장의 화가 박콘스탄틴(1924, 블라고슬로벤노예마을 출생) 등의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배출됐다.

특히 1955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고려극장을 이끈 조정구는 고려극장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1960년 여름부터는 엔. 오스트로프스키명칭 타쉬켄트 극장대학을 졸업한 김블라디미르, 박소피야, 송올가, 박마이야, 문알렉산드르, 임로사, 전아나톨리 등, 12명의 제2세대 젊은 배우들이 고려극장에 배치됐다.

이후 1975년에는 쿠르만가식명칭 알마타예술대학을 졸업한 진블라디미르, 최메리, 김학연, 김갈리나, 김류드밀라, 한갈리나, 박알렉산드라, 안알렉산드르, 리올레그, 허알렉산드르, 김올레그 등, 14명의 제3세대 젊은 배우들이 보충배치됐다. 1981년 현재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우즈벡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 당국으로부터 공훈예술가(채영, 태장춘, 연성룡, 강게오르기, 조정구), 인민배우(김진, 이함덕, 이장송), 공훈배우(최봉도, 이경희, 이응수, 이길수, 김호남, 박춘섭, 송올가, 박마이야, 김 블라디미르 E, 문알렉산드르, 김 블라디미르 A.) 칭호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로 우즈벡공화국(1958)과 벨로루시야공화국(1968)으로부터 영예표창장을 수여한 이 니콜라이와 해삼위(블라디보스톡) 8호모범중학교 출신의 무용가 이영순 같은 예술가들도 배출되어 공화국 전체에 명성을 떨쳤다.

이 니콜라이는 1959-63년 시기에는 외국에 나가서 활동하며 소련 한인음악가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무용가 이영순은 크즐오르다 치일리구역 <선봉> 콜호즈에서 소인예술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조선(한국)무용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의 수준 높은 무용솜씨를 보여주었다.

공연예술 분야 외에 문학분야에서도 많은 문학가와 문학학자(교수)들이 배출됐다. 김준, 우블라지미르, 김세일(소설 ‘홍범도’), 김광현, 조기천, 한진, 강태수, 리은영, 김아나톨리 등이 그들이다.

특히 소설 ‘십오만원사건’의 작가인 김준은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에 ‘선봉’ 신문에 첫작품들로 ‘국문타령’과 ‘한까이의 가을’(1928)을 발표한 이래, 반세기동안 무수히 많은 장편서사시(마흔아홉)와 단편소설(지흥련, 주옥철) 및 장편소설(십오만원사건)들을 발표해 낸 대표적인 한인문학가이다. 김세일 또한 소설 ‘홍범도’라는 대작을 내어놓았으며, 김아나톨리는 지금도 모스크바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강제이주 2세대 작가이다.

순수한 문학작가 외에 많은 학자들 또한 배출됐다. 정 안나 니콜라예브나는 한민족의 고전과 근현대문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1971년 레닌그라드 게르첸국립사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1919년 극동 자바이칼주 보다이보 금광산노동자 출신인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야쿠치야자치공화국으로 들어갔다.

2차 대전에도 참전했으며, 이후 카라간다국립사범대학에서 근무하며 조선고전 및 근현대문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보기 드문 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나아가 동양의 역사와 조선민족의 역사연구에서 눈부신 업적들과 이 분야의 학문발전에 큰 기여를 한 학자들도 배출됐다.

박 미하일 니콜라예비치는 1918년 연해주남부 하얀치헤(하연추) 빈농가정의 출신으로 1933년 부모와 함께 극동 차타시로 이주해 갔다가 중등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대학 역사학부에 입학했다. 1961년에 모스크바국립대 동양어연구소 원동 및 동남아시아지역 역사강좌 교수로 임명됐고, 1973년에는 역사강좌장으로 임명되어 조선 및 동양지역국가들의 역사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학자이다.

카자흐공화국 과학원 역사학,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상급연구원인 역사학자 김승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이다. 1915년 블라디보스톡현 네스노예촌 출신의 김승화는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 역사학부와 사마르칸트종합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1946년부터는 당국의 지시로 북한에서 10년 동안 근무했으며, 1971년 6월에 우즈벡공화국 과학원에서 ‘쏘련조선인 략사’란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소련의 한인들에 관한 주제의 수많은 논문과 학술연구물들을 통해서 소련 내의 한인연구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언급된 분야들 이외에 언론과 출판분야에서 종사하며 한인사회의 입과 귀의 역할을 대변해온 인물들도 있다. 1946년부터 1970년까지 ‘레닌기치’(선봉, 고려일보) 신문사에서 평생을 기자로 몸바쳐온 최운학과 1952년부터 1976년까지 동(同) 신문사에서 번역원, 기자, 부주필로 활동해온 염동욱이 그들이다.

1910년 조선의 부두노동자 가정출신으로 1912년 러시아에 이주해와 블라디보스톡 조선사범대학을 졸업한 최운학은 25년을 레닌기치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며 한인독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한인기자 중의 한 명이다.

염동욱 또한 1916년 연해주 부존느이구역 카사치야 파지촌 빈농가정 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소련군대에서 복무를 마친 이후에 레닌기치 신문사에 입사하여 근 30여년간을 활동하며, 레닌기치 신문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이외에 서재욱, 정상진, 송진파, 한 인노켄티, 염사일, 전동혁(기자겸 작가) 등도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다.

이상의 인물들은 1960~80년대에 중앙아시아의 한인사회를 빛낸 인물들로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훨씬 많은 인물들이 각 분야에서 배출됐고, 저마다의 위치에서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공화국 전체에서 한민족의 위상과 우수성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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