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50] ‘동포’ VS ‘다문화’
[삼강만평(三江漫評)-50] ‘동포’ VS ‘다문화’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7.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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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약 60만의 중국조선족을 ‘동포’에 편입시키는 자도 있고, ‘다문화’에 편입시키는 자도 있다. ‘동포’는 한국인, ‘다문화’는 외국인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은 ‘다문화’에 편입시키는데 대해 큰 반감을 품고 있다. 모 포럼에서 어느 조선족 노인이 삿대질에 ‘우리를 왜 다문화에 넣느냐’며 분노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 중 “동포인가 했는데 결국은 중국인이더라”라고 말하는 자도 적지 않다.

중국국적이니까 물론 외국인 즉 다문화가 맞지만 본문에서는 문화적 차원에서 이야기 한다. 필자는 중국조선족을 일괄적으로 ‘동포다’, ‘다문화다’라고 지칭할 수 없고 세대별, 지역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대가 위로 올라갈수록 동포이고 밑으로 내려올수록 다문화이며, 조선족 집거지역에 산 자일수록 동포이고 산재지역에 산 자일수록 다문화이다.

조선족의 중국이민은 약 186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본문에서 서술상의 편리를 위해 일한병탄 후 대량 이민이 시작된 1910년대의 이민을 1세대로 하련다. 필자 가정의 이민이 여기에 맞는 전형적인 예로 될 수 있겠다. 1918년에 조부가 3살 난 부친을 대리고 이민 왔으므로 조부는 1세, 부친은 2세, 필자는 3세, 필자의 자식은 4세, 손자는 5세인 셈이다.

2세의 부친은 광복 직후 고향의 한국교민회장이었다. 1952년 중국국적이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자기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 필자가 한족 아이에게 맞아 하소하면 부친은 “남 나라에 와 살며 맞아죽지 않으면 다행인 줄 알아라”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필자가 공청단원에 가입하여 기뻐하니 “남 나라에 와서 무슨 쓸데냐?”라고 했고 필자가 ‘문화혁명’에 바삐 돌 때 “남 나라에 와서 혁명은 무슨 놈의 혁명이냐?”라며 극력 말렸다. 2세인 부친은 정치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한국(조선)인이다. 1세는 더 말할 나위 없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3세인 필자 세대부터는 달라졌다. 필자는 종래 한국을 ‘우리나라’로 표현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당연 중국을 일컫는다. 겉치레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중국이 우리나라이지 한국이 우리나라가 아니다. 글을 쓸 때면 한국을 ‘모국’이라 칭한다. 조선족 3세는 모두 필자와 비슷한 상황, 즉 정치상 이미 자신을 중국인이라 인정했다.

그러나 문화, 감정상으로는 한국인이다. 이를테면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한국이 이기기를 바란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풍속도 한국적이다. 허나 세심히 분석하면 이 3세는 문화상으로도 꾀나 변질된 한국인이다. 필자는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필자의 특강을 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은 ‘당신은 결국은 중국인이다’라는 말로 필자를 평가한다.

4세부터는 더 많이 중국인이 되었다. 한국 문화의 핵심은 유교의 혈연문화와 위계 문화이다. 조선족은 제사가 3세부터 많이 소실됐고 4세부터는 유야무야로 됐다. 8촌이요, 10촌이요, 사돈에 8촌이요 하는 자를 거의 친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 부·부, 고·부, 남·여, 노·소, 사·생, 선배·후배 등 관계의 위계도 거의 파괴됐다.

만약 4세인 자식이 연애하는 대상자를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자. 부모는 고작해야 “너의 혼인 대상자를 부모는 동의하지 않으니 잘 생각해 보아라. 그러나 네가 대리고 살 사람이니까 최후의 결정권은 너에게 있다. 부모는 더 간섭하지 않겠다”라는 말로 끝맺어야 한다. 이민족과 결혼하는 자가 3세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지만 4세부터는 급증하고 있다.

금전관계도 조선족은 이기주의, 소유의식, 등가교환원칙 등에 철두철미한 한족을 많이 닮았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대림2동의 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쌀을 되로 팔거나 야채를 무더기·바가지로 팔지만 조선족들은 철저히 저울로 달아 판다. 월세도 그토록 많은 보증금을 받는데 대해 대단한 거부감을 가진다. 4세부터는 중국인 쪽에 많이 치우쳐 있다.

그사이 동포라고 한 데는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로 변했다. 지금 대부분 조선족이 집거지역을 떠나 내지로 진출하였는데 그들의 자식, 즉 4세, 5세는 한국말을 거의 모르며 우리민족의 기질도 거의 없다. 필자는 1999~2008년 북경에서 조선족 초등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으므로 상황을 너무 잘 안다.

여기에 지역 차별도 적당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같은 세대라고 하여도 조선족 밀집지역일수록 민족성이 강하고 산재지역일수록 약하다. 같은 세대라고 하여도 목단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흑룡강성 조선족은 다른 지역에 비해 민족성이 강하다. 이 지역의 조선족은 중국이민이 늦게(1933~43년) 행해졌기 때문이다. 이 부류의 조선족은 대부분 한국국적 가입자이다.

지금 한국에 진출하여 맹활약하고 있는 조선족은 4대, 5대가 주축이며 곧 6세가 찾아오고 있다. 이 부분의 사람은 동포라고 하기보다 다문화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며 바야흐로 완전한 다문화로 변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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