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그림편지-14] 우리네 인생살이 같은 발효음식
[김봉준 그림편지-14] 우리네 인생살이 같은 발효음식
  • 김봉준<화가, 신화미술관장>
  • 승인 2014.11.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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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 숲을 지나> 유화 15호 2012년 김봉준 작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습니다. 앞산에 자작나무도 노란 낙엽을 바람에 떨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잎은 자취도 없습니다. 아직 가을 단풍 숲도 가 보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해야 되는 가 봅니다. 가을 즐기기도 건너 뛰고 황망히 겨울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김장은 하셨나요? 저는 아직 못하였습니다. 11월 말경에 날을 잡아 놓고 김장거리를 장만하고 있습니다. 배추 고춧가루 생강 무 배 마늘 파 새우젓 멸치액젓…… . 뭐 더 살 거 없을까? 궁리합니다. 여기다 굴이나 동태도 집어넣으시던 어머니 김장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우리 어머니는 서울 서부역까지 가서 배추를 한 리어카 주문하여 만리동고개를 인부와 같이 넘어서 대흥동 로타리를 지나 신수동까지 걸어서 배추와 무를 나르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따라 나섰던 60년대 기억이 아직도 진합니다.

김치는 우리 발효음식의 꽃입니다. 여러 가지 식재료를 버무리고 절여서 발효하는 것인데 이를 겨우내 묻어두고 조금씩 꺼내어 먹었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 반찬은 물론 김치부침, 김치찌개, 김치 볶음밥, 김치만두, 김치두루치기, 김치밥 등 김치는 참 훌륭한 음식입니다. 이 중에서 기억에 가장 남는 맛은 우리 어머니의 김치밥이었습니다. 김치밥을 아시나요?

우리 어머니표 김치밥은 이랬습니다. 쌀을 씻고 김치를 장독에서 꺼내다가 잘게 썰어서 돼지고기도 넣고 쌀을 솥에 깔고 김치를 깔고 다시 쌀 깔고를 반복하며 켜켜이 재여서 한 솥이 되게 합니다. 평소 밥물보다 물을 조금 더 붓고 밥을 짓습니다. 뜸을 충분히 들인 후 밥솥을 열면 밥이 온통 벌겋습니다. 주걱으로 밥을 휘휘 저어서 밥알을 성글게 해 둡니다. 더러는 따로 밥그릇에 담아 아랫목에 쟁여 놓기도 하며 며칠이고 꺼내어 먹습니다. 찬밥으로 식혀 먹어도 아주 맛있습니다. 여기에 간장 양념을 파 마늘 송송 썰고 참기를 넣어 만들어서 김치밥에 비벼 먹으면, 음~ 그 맛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김치 만들기는 이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함께 음식 만들고 나누어 먹기 하는 두레음식차림은 이제 옛 추억이 되어가나 봅니다. 대규모 두레음식 만들기는 사라져도 우리 발효 음식문화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발효음식문화는 우리 원형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이웃이 모여 서로 궁합이 맞는 식재료를 섞고 버무려서, 액젖 같은 발효재도 넣고, 그 날씨에 맞게 적당히 음식을 발효하여 숙성시키는 발효음식 만들기 과정은 우리네 삶의 문화가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의 절정도 그렇습니다. 쓰고 달고 맵고 시고 떫고 아리다 하여도 이를 버무리고 삭혀서 딱 맞춤 한 그 맛, 그 맛을 찾으려고 참고 견디며 삽니다. 올 겨울도 김치 맛처럼 맛있는 인생 만들어 봅시다.

▲ <장독매구> 판화 15호 1998년 김봉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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