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86] 연행사(燕行使)
[아! 대한민국-86] 연행사(燕行使)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5.05.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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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조선시대 중국에 가는 사신들이 연행사이고, 그들이 기록한 기행문이 연행록(燕行錄)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연행록만해도 현재 약 600여종이나 된다. 조선 사신들은 평안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요동과 산해관을 거쳐 북경에 이르는 2,000km의 길을 걸었다. 고려말에서 조선조에 걸쳐 우리 사신이 중국에 다녀온 횟수는 13-14세기 119회, 15세기 698회, 16세기 362회, 17세기 278회, 18세기 172회, 19세기 168회 등 모두 1,797회에 이른다. 형식상 이들은 조공(朝貢)사신이었다.

2014년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각국의 정상들이 베이징에 모인 것을 놓고 일부 중국언론이 ‘만방래조(萬邦來朝-만국의 사신들이 조공을 바치러 왔다)’를 느꼈다고 표현하여, 중국의 패권의식과 중화사상을 은근히 드러낸 바 있었다. 그러나 조공은 반드시 지배·예속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대국인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하는 약소국 외교의 한 방편이기는 하였지만, 물물교역과 문명교류의 기능을 담당하는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다.

조공을 받으면 더 많은 물품을 답례로 주는 것이 관례여서 중국의 입장에서도 그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조선 건국 당시, 중국은 가능한 한 횟수를 줄이려고 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 조선에서는 사신을 따라가는 통역관인 역관(譯官)들에게 인삼 팔포(八包·여덟 꾸러미)를 매매할 권리를 주어 인삼무역을 하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임상옥(林尙沃)같은 거상이 태어날 수 있었다.

한번의 연행에는 정사, 부사, 서장관을 비롯해 군관과 역관, 하인과 말몰이꾼까지 300~600명의 대규모 행렬이 움직였다. 일행의 규모를 1회 평균 500명으로 계산할 때 700년간 거의 90만명의 인원이 왕복 5~6개월에 달하는 힘든 여정을 다녀온 셈이다. 그들은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험난한 산길을 넘고 다리조차 없는 숱한 하천길을 건너야 했다.

명청(明淸)교체기에는 육로가 막혀 바닷길을 이용해야 했는데, 병자호란 직전인 인조7년(1629년) 명나라로 가는 사신 일행이 태풍을 만나 물에 빠져 죽는 등 해로에서 약 6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육로에서도 낯선 음식과 물을 갈아 마시는 험한 여행 탓에 풍토병에 걸려 죽는 사신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쓴 연행록 가운데는 중국 관리들이 뇌물을 요구하고 텃세를 부리는 횡포에 시달리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정조 때 채제공이 쓴 연행록은 “원한을 삼키고 원통을 참는다”는 뜻으로 그 제목을 「함인록(含忍錄)」이라 했다.

이들 연행록 가운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중국과의 문명교류와 우리가 배우고 느껴야 할 내용을 담은 것이 적지 않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연행사를 통하여 서양의 문물을 처음 접했고, 천주교 또한 연행사를 통하여 한국에 전래되었다. 추사 김정희와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모두 연행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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